훈자로 가는 길
#쉽지 않다. 훈자 가는 길
라호르에는 훈자로 가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다시 라왈핀디에 들려 훈자행 NATCO 버스를 탔다.
(외국인의 경우 훈자행 버스 티켓은 무조건 나라에서 운영하는 NATCO에서만 살 수 있다. 이 정보를 모르고 훈자를 가지 못해 한 달 넘게 카라치만 여행하신 한국인 부부를 공항에서 만난 적이 있다.)
라왈핀디->훈자 버스는 기본 25시간 정도 걸린다는 악명은 익히 다른 한국 여행자들의 리뷰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지난한 시간을 버틸 준비를 단단히 했다.
자주 듣는 여러 음악들을 오프라인 저장을 해놓고, 알라딘으로 미리 읽어 둘 전자책들을 다운로드하였다. 그리고 지난 인도 여행에서의 교훈을 통해 장거리 버스 여행을 위한 마스크와 귀마개도 잊지 않았다. (델리에서 마날리로 향하는 버스를 탔었는데, 비포장 도로를 가다 보니 아이들이 멀미를 하기 시작했고 버스는 창문이 없었다….)
훈자행 버스는 NATCO에서 운영하는 버스다 보니 낡은 대형버스만이 존재했고 사무실에서만 주야장천 앉아있었던 나의 연약한 허리는 그렇게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경유하면서 아작이 났다.
문제는 허리만이 아니었다. 때마침 생리 둘째 날이었다.
생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이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적을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자꾸 터부시 되는 생리에 대해서 ’지극히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왜 감춰야 하나 ‘라는 생각과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내가 내 몸에 대한 한계지점을 느끼고 좌절을 느꼈던 일화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었다.
훈자를 가는 버스 안.
버스를 탄지 12시간이 지났을 무렵 해가 져도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나아갔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좁고 불편한 버스 안에서 나를 제일 곤욕스럽게 하는 건, 생리였다. 12시간 동안 버스는 휴게소를 단 한번 들렸고, 생리 둘째 날인 나는 생리대가 피를 더 이상 흡수하지 못하고 새로 산 밝은 옷에 묻어 나오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고 좌불안석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첫 번째 휴게소를 들린 지 4시간이 지났을 무렵, 버스기사는 버스를 관리소 앞에 멈춘 뒤 탑승객들의 서류를 검사받기 위해 기다리기 시작했다. 네 시간이 넘도록 생리대를 갈지 못해 불안한 나는 일단 버스 밖으로 나왔다. 허허벌판 어두운 도로 위엔 소변을 보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들로 가득했고 근처에 화장실이라곤 없었다.
그 와중에도 계속 피가 나오고 있는 상황인 나는 너무 막막했다.
혼자서 구석으로 가서 생리대를 홀로 갈자니 남자들의 시선과 안전이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생리대를 안 갈기에는 이미 4시간을 넘게 차고 있던 생리대가 피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차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생리혈을 계속 내놓는 내 몸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왜 여자로 태어나서 이런 수치심과 어쩌지도 못하는 무기력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여성이기에 더욱이 파키스탄은 가지 말아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와, 나에게 가해졌던 캣콜링 등이 겹쳐지면서 속상한 마음은 더 증폭되었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버스에 타고 있던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엄마분께 생리대를 갈아야 하는데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건넸고, 그분은 우산을 들고 나와서 구석진 곳에서 생리대를 가는 나를 가려주셨다.
용기를 내지 않고 생리대를 갈지 않았다면 큰일 날뻔했을 정도로 이미 패드는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버스로 다시 돌아가면서 나를 우산으로 가려주신 파키스탄 현지인분께 감사한 감정이 들면서도 나에게 ‘생리’는 늘 언제나 수치심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별 고생을 다하고 18시간 정도 달리니 점점 그리웠던 바위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들이 모인 거대한 산과, 산 아래쪽에 보이는 봄의 초록, 그리고 물이 지나간 흔적이 깊이 새겨진 바위들.
7년 전 라다크에서 한 번에 눈으로 담을 수 없던 히말라야의 웅장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그동안 유한한 인간인 나만 많이 바뀌고 더 늙은 모습으로 다시 카슈미르에 왔다.
이상하게도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너무 마음이 가난할 때는 자꾸 카슈미르의 큰 산들이 그립곤 했다.
그럴 때마다 라다크에서 보낸 한 달 동안의 추억을 꺼내어 야금야금 7년 동안 먹고살았으니, 이번 훈자에서 보낸 기억도 또 7년을 버티는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고 척박하지만 푸근한 카슈미르.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