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파키스탄 여행(5)

훈자 여행을 시작합니다

by Paratha

#안녕 훈자

25시간 동안 등조절이 어려운 좌석에 앉아 꼬불꼬불 산길을 거쳐왔더니

낡은 엉덩이와 허리가 쑤셨고 생리 둘째 날로 인해 생리통마저 심했던 나는 4만 원 이하인 숙소에 머물려했던 결심을 쉽게 꺾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만난 수연님이 추천해 주신 힐탑호텔이 너무 솔깃했다. 그래… 컨디션이 좋아야 어디라도 다니지 라는 생각에 7만 원이 넘는 힐탑호텔을 예약했다.

좋은 숙소는 딱 두 가지가 충족되면 된다. 핫샤워와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

하지만 훈자에서 이 두 개를 충족하려면 기본적으로 4만 원 이상은 태워야 했다. 거기에 난방까지 원하려면 7만 원 정도는 해야 한다.

힐탑호텔은 이 모든 걸 충족하면서도 뷰까지 좋은 곳이었다. (광고 아님)

힐탑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은 나는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하지 않고 그가 부르는 액수에 흔쾌히 오케이 했다.

얼마였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가 부른 액수에 내가 알겠다고 하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그는 호텔에 도착해서도 나의 무거운 배낭을 손수 들어서 호텔 로비까지 가져다주었다.

인도를 자꾸 비교하면 안 되지만(인도는 인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곳)

인도라면 택시기사가 바가지요금을 씌우고도 팁을 요구하는 게 부지기수인데,

너무 염치를 아는 훈자 기사님은 나에게 돈을 받고 나서도 미안해했다. 그게 훈자의 첫인상이었다.


힐탑호텔 룸 베란다에서 보이는 절경
도착하자마자 룸서비스로 주문한 차이니즈 푸드. 닭도리탕과 매우 유사했다.


#오라 물갈이여

훈자로 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계속 맨손으로 기름진 파라타를 먹었더니

훈자에 도착할 즈음 속이 조금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에 온 지 7일 차 정도 되었으니 물갈이 타임이 올만했다.

나름 자신만만하게 스멕타와 장염약과 보온백을 가져왔으니 두렵지 않았다. 이게 경력직의 여유인가 보다.

10대 후반부터 프로 장염러였는데, 나는 아프더라도 먹고 싶은 건 다 먹으면서 장을 강하게 키우는 스타일이라 물갈이 약을 먹는 와중에 현지 과일들도 뱃속으로 넣었다.

당근으로 싸게 산 보온백이 톡톡히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아픈 와중에 베란다에 보이는 절경을 구경하자니 그냥 절로 기분이 좋았다.

(이후 두 달 넘게 고생을 했다 호호)


#이어져있는 우리

카리마바드에 도착한 다음날, 우연히 뵈었던 한국 중년 부부와 함께 발팃포트(Baltit Fort)-알팃포트(Altit Fort)-이글네스트를 보러 가기로 했다.

발티포트는 내가 묵고 있었던 힐탑호텔과 매우 가까워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보았는데,

이 지역이 고도가 2300m가 넘다 보니 언덕을 걸을 때에는 헉헉대기 일쑤였다. 햇살도 상당히 강해서 선글라스를 자주 끼게 되었다.

발티포트 입구에 다 달았을 때 생각보다 놀랐던 점은 아시아 관광객이 많았다는 점이다.

태국이나 중국, 인도네시아와 같이 다른 아시아에서 온 중년 어르신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효도관광 같은 느낌이랄까. 한국에서는 파키스탄이 여행지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파키스탄 관광 상품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지만 타국에서는 파키스탄에 많이 여행을 오는구나 싶었다.

태국에서 온 분들과는 블랙핑크 리사이야기를 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케이팝으로 스몰톡을 하는 세상이 되다니… 김구선생님, 김대중 선생님 보고 계시나요 (펄럭)

발티포트와 알티포트를 처음 봤을 때에는 북인도 레(Leh)에 있는 레 펠리스와 정말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 명소 모두 잘 찍은 사진이 없어서 게티 이미지를 빌려왔다. 위 두장은 왼쪽부터 발티포트, 알티포트. 아래 사진은 레 펠리스)

흰색 벽에 네모난 셰입과 간간히 나무가 들어간 텍스쳐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까운 지역에 위치했기에 알게 모르게 고유한 문화를 공유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욱 신기했던 건 고구려 무덤에서 보이는 모줄임천장 양식과 유사한 천장이 이 건축물들 안에도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모줄임천장 양식으로 보이는 발팃포트 천장(왼쪽), 고구려 모줄임천장 양식(오른쪽)

이게 나의 가설인지, 아니면 실제로 모줄임천장과 포트 천장의 연결고리가 있는지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이탈리아 건축양식이 중앙아시아로, 그게 또 중국에서 고구려까지 전해졌다는 자료를 찾았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8558​)

인스타도, 비행기도 없던 시절 서양에서부터 사람들이 교역을 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낀 양식이 옆으로 옆으로 공명하면,

그 양식이 중앙아시아를 넘어 고구려에 도달해 모줄임천장 이 만들어졌겠지.

우리는 옛날부터 이렇게 연결되었다는 생각에 새삼 가슴이 찡했다. 그러면서 세상은 큰 그물이고, 그 안에 나는 작은 구슬이라는 <인다라의 구슬>이 생각났다.

한편으로 이렇게 인류애가 샘솟다가도 함께 동행했던 중년 부부께서

계엄을 일으킨 내란범을 지지하시는 것만 같은 말씀을 자꾸 하셔서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만 아저씨가 너무 다른 정치색깔로 막역했던 수십년지기 친구를 잃었다고 속상해하시는 마음을 비쳐 보이시는데

‘저도 그분과 같은 마음이에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게 마음이 식다가도,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나눠주시며 덕담을 해주시는 아저씨를 보면

세상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만은 없다는 걸 자꾸 느끼게 된다. 세상은 역시 복잡해.


#킴과 나히와의 조우

파키스탄 여행을 가겠다는 선포를 가족에게 하고 난 뒤, 제일 먼저 찾아봤던 건 동행이었다.

주위 친구들도, 인도 파키스탄 여행 카페에도, 파키스탄 여행 오픈톡에도 ‘저랑 같이 가실 분!!!’을 외쳤지만 반응은 시원하게 제로였다.

동행을 구했던 이유는 치안과 관련한 안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돈 때문이었다.

훈자에서는 뚜벅이로 혼자 여행을 가기가 어려운 게 카리마바드를 중심으로 파수나 페어리메도우와 같은 근처 다른 명소들을 다니려면

지프나, 상대적으로 비싼 숙소를 구해야 하는데 그럴 때 3~4명 정도 함께 다녀야 돈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카리마바드에 막상 머물면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엄청 고민이 되던 차,

파키스탄 여행 오픈채팅방에서 현재 카리마바드에 있다는 나히와 연락이 닿았고 나히는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만난 킴을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운 좋게 한국 여성 셋이 모이게 되었다.

나히와 킴은 모두 14년이 넘도록 각자 세계 여행 중인 멋진 여행가였다.

나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가 일정 금액을 모으면 다시 세계여행을 하는 프로 여행가였고,

킴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공부도 하면서 협업을 하기도 하는 또 다른 지구별 여행가였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공간만큼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나는 내 사무실에 주어진 책상만큼의, 남한만큼의 생각밖에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가끔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나는 중국으로, 시카고로 가서 일할 거야 하면서

세계 곳곳을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역시 사실상 섬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너무 막혀있나?’라는 생각을 가끔 했었는데,

두 여행가를 보면서 그 감정을 또 느꼈다.

나히는 훈자를 거쳐 인도로 갈 생각이었고, 킴은 훈자를 거쳐 이탈리아를 갈 계획이었다.

나히와 킴이 들려주는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지역들을 들으면서 본인의 삶을 계속해서 개척해 나가는 두 사람의 에너지가 멋졌고

용기와 추진력이 있다면 나도 남한을 넘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도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훈자에 머무는 동안 다시 각자의 길을 향해 걸어가기 전까지 멋진 두 여성과 지금, 여기에서 재밌는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