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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희 Jan 11. 2024

마흔다섯, 이해와 화해

엄마는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과거와 화해하게 되었다.

 산악회 버스를 탄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산을 타는 건 쉽지 않지만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3,4초 정도의 망설임뒤에는 항상 "등산이에요. 산 타는 거 좋아해요."라고 말하곤 한다.

워낙 운동신경이라는 게 없지만 진득하게 산마루에 올랐다 내려오는 날들이 삼 년 정도 된 것 같다.


 나는 왜 산을 오를까.

특별히 산을 잘 타지도 않고 산에 오를 때마다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산을 탄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왔나?'라고 되뇌지만, 정상에 올라 탁 트인 조망을 바라볼 때 산은 나에게 말한다.

 "영희야. 살아가느라 애 많이 썼다. 여기서 조금 쉬고 가렴."

 산은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서 온몸을 스치는 바람으로,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청아한 새소리로, 달큼한 흙내음으로 내 오감을 그렇게 위무해 준다.


 그날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기간동안 하던 일을 멈춘 후, 첫 산행날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안내산악회에 가입하고 이른 아침 산악회 버스를 탔다.  

산악회 버스는 도착과 출발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이 늦으면 대중교통으로 갈아타는 걸 감수해야 하고.

설산은 자꾸만 내 체력을 바닥으로 바닥으로 당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발 한발 내미는 걸 놓지 않았고 어느새 나는 함백산과 태백산의 눈바람을 맞으며 설산 깊숙한 곳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산은 나에게 겨울로 덮여 새하얘진 그의 세계를 보여주며 "영희야, 오르느라 애썼다. 일 하느라 애썼다. 사느라 애썼다."라고 내 지난 삶을 토닥여주었다.


 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산을 타고 내려와 집으로 가는 길. 엄마에게 문자를 했다.

"엄마, 나 산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

조금 있으니 아빠가 전화를 하신다.

"아빠, 나 버스라서 전화받기 힘들어요. 나 태백산 왔다가 지금 집에 가요."

그냥 집 근처 산이라고 할 걸 그랬나. 잠시 망설였지만, 무슨 일인지 내 머릿속에 복잡하게 살지 말자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나는 지금 나의 상황을 담백하게 전했다.

그다음 예상지점은 아빠의 답문. 거기가 어디라고 추운 날 아는 사람도 없는 버스를 타고 갔느냐.로 시작하는.


드디어 답문이 왔다.

"우리 딸, 태백산까지 가고 정말 대단하다. 조심히 와."

 나는 싱긋이 웃었다.


 우리 집안은 관성이 지배하는 집안이다. 예상치 못하는 상황은 그러한 변수는 우리 가족에게는 낯선 것, 불편한 것이다. 회사에 있어야 할 내가 일을 쉬는 것도, 게다가 태백에 가 있는 것도 그것도 낯선 산악회 버스를 타고.

 그런 순간마다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궤도가 무너지는 그 작은 틈새를 염려로 채웠다. 나는 그 염려와 싸워야 했고 결국 내 뜻대로 된다고 해도 그건 의문 투성이었다. "이 선택이 선일까, 옳은 것일까." 나는 죄책감 가득한 이 물음과도 나는 싸워야 했으니.

 그건 부모님 뿐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내 아이들이 궤도를 바꾸려고 할 때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그 끝에는 염려와 불안이 있었다. 아이들도 느꼈으리라, 내가 그러했듯이.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실제로는 '이 추운 날 무슨 태백산이냐고' 그렇게 한소리를 하셨다 한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에게 '영희하고 싶은 대로 하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둬라'라고 하셨고, 아빠는 나에게 그렇게 문자를 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이 말이 뭐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울었다. 엉엉 울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 말은 산이 나에게 줬던 그 어떤 위무보다도 큰 어루만짐이었다.

비로소 나를 파고드는 죄책감과 결별하는 느낌이었다.

 일이 주는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쉬어가는 선택을 한 나와, 돈을 벌지 못하는 기간에 대한 불안함과 초조함이 휩쓸던 순간들과, 일을 붙들고 있는 동료들과 비교하는 나와, 너무 피곤했던 날 아이들이 안아달라고 해도 엄마 좀 쉬게 나가라고 말하던 나를 한심하게 보던 나와 결별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엄마와 화해한 것일까?

엄마는 내가 많이 지쳐있었던 걸 이해하는 것 같다.

"너도 한 번은 쉬어야지. 일하다가 안 하고 너무 퍼져있으면 금세 저녁이 되니, 그것만 조심하자."

엄마는 나를 이해했고, 아빠는 나를 이해하고자 했고, 그 순간 비로소 나는 과거의 나와 화해하게 되었다. 내 심연을 찾아가, 무릎을 올리고 고개를 처박고 있는 작은 아이를 안아주던 순간이었다.

나는 이 순간과 이 감정을 온전히 느끼려 한다. 귀한 이 순간을.


소중한 사람이 전하는 한마디 말.

닫힌 문은 이해라는 열쇠로만 열 수 있었다. 나를 이해한 건 엄마였지만 그래서 나도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항상. 부모님의 염려가 원인이 아니었다. 실은 나 스스로 틈새를 이기지 못한 불안 때문이었다.

나는 비로소 불안을 걷어내고 틈새를 바라본다.


 결국 궤도는 이어진다. 그렇게 살아간다. 궤도가 무너지는 순간 내가 할 일은 염려가 아니라 궤도를 잘 정비하는 일이다. 삶이 이어질 수 있게.

 그리고 지지하는 일이다. 나의 남편을, 나의 아이들을. 무엇보다 나를.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삶을 이어가고 기쁨을 누리도록. 충만히 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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