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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희 Jan 11. 2024

내 남편

아,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

 광화문에서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아,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수려한 외모도 아니요, 사람을 홀리는 말주변도 아니요,

시골에서 김장을 하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김치통을 트렁크에 한가득 싣고 온 그를 보며,

나는 왜 그 생각을 했을까.

 

 친구와 늘 하던 통화였다.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는 언니가 소개팅을 안 하기로 했다고 흘려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주워서

"그럼 내가 할게! 나 그날 시간 돼! "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일이 되려고 하면 그렇다더니, 가을에 만난 우리는 겨울에 양가에 인사를 하고 봄에 결혼을 했다. 무엇이었을까,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킨 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가정을 이루어 인생을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속에 있는 내가 알아본 것일까. "이 사람이 내 반려자이다."라고.


 그렇게 여름 같은 봄날, 결혼을 한 두 사람은

함께 웃고, 함께 먹고, 더러는 한 달이 지나도록 말도 하지 않고, 가끔은 모진 말도 뱉어가며 어떤 날은 말보다 더한 표정으로 서로를 외면하며, 그러면서도 아이 둘을 낳고 평범하고도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냥 좀 쉬는 게 어때?"

 타 지역으로 파견을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이 남자는 말했다. 마치 "오늘 저녁은 미역국 어때?"라고 하듯

이. "파견을 가도 일을 하고 또 스트레스를 받고 할 텐데, 게다가 낯선 곳에서. 그냥 좀 쉬는 게 어때?"

 나는 "어? 그래도 돼?"라고 되물으며, 이 말이 진심인지, 한번 던져본 말인지 이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그냥 쉰다는 건 뭘까.

 매일 머리를 감고 가방을 둘러매고 버스를 타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깜빡이는 메신저를 볼 때마다 답답해하거나 한숨을 쉬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말 한마디, 글 한 자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놓친 일이 없는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자기 전에, 머리 감으면서 일 생각이 떠올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아니면 그냥 쉰다는 건 뭘까.

그냥 쉬어도 되는 걸까......


 나는 그냥 쉬기로 했다.

그냥 쉬면서 심박수가 제 자리를 잡고 깊은 호흡을 쉴 수 있도록 나는 그냥 쉬기로 마음먹었다. 사실은 수천 번 쉬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내 입으로는 하지 못한 말이었다. 아, 내가 이래서 이 남자와 결혼했구나.


나 홀로 불면의 밤을 보내며 괴로워할 때, 어떻게든 내 역할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관성에 붙들려있을 때,

내 마음을 기막히게 알아주고 표현해 준 사람. 내 남편이다.


 전기밥솥에 밥 해 먹자고 해도 솥밥을 고집하며 밥 짓기를 매일매일 하고, 쌀 한 톨 허투루 흘리지 않으며, "오천 원 벌면 오천 원만 쓰면 돼, 다 살아. 오천 원 벌어서 만 원 쓰려고 하면 힘들어지는 거야"라고 하는 남편이지만 내 생일에는 "생일선물 뭐 받고 싶어?"라고 묻는 사람.


나는 부푼 가슴으로 답한다.

"도봉산 포대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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