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도 더 된 이야기
"아들아,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 뭐 주면 좋겠어?"
"우유병이요."
"그것 말고는?"
"그럼 됐어요."
거기다 대고 "토미카(장난감자동차) 어때?"라고 하는 나.
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기록을 했기에 기억을 하지 안 그랬으면 벌써 잊혔을 그런 사소한 이야기이다.
첫째가 네 살 무렵,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그 해 12월,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줄까 싶어 아들에게 살며시 물어봤다. 생각지도 못한 "우유병"이라는 말에 먼저 든 생각은 '아니지 그건 아니지. 그것 말고는 필요 없다는 아들에게 미리 생각해 둔 "토미카 어때?"라고 말하는 나.
나는 왜 "토미카 어때?"라고 했을까? 그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를 왜 사라고 했을까?
내 아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유행한다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보고 싶었던 걸까?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아들이 토미카를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먼저 이야기하는 그런 센스 있는 엄마이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 아들은 "와~! 산타할아버지(우리 엄마) 최고!"라고 말하겠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토미카를 가지고 싶었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냥 우유병을 사줬으면 어땠을까? 우유병이어도 되는 것 아닌가? 갑자기 나타난 동생은 우유병이 저렇게 많은데, 엄마가 꼭 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먹여주는데. 그걸 보는 네 살 아이 생각은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하고
나는 왜 "그것 말고는?"이라고 했을까?
나는 왜 지금에야 다 지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십 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때때로 아들은 우유병을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고(물론 이제 진짜 우유병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때마다 "토미카 어때? 토미카가 더 낫지 않아?"라고 말한다.(물론 이제 토미카 따위가 아니다.)
아들은 이제 갖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글쎄요?"라고 한다.
나는 찾아내려고 한다. 그것이 토미카이길 바라면서.
만약 그때
우유병을 사줬다면
갖고 싶은 우유병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며 컸을 텐데.
모양은, 색깔은 어떤지 재질은 뭐가 좋은 지...... 그보다 더 많은 걸 이야기하며 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 엄마는 우유병을 이야기하면 토미카 어떠냐고 물어보는 사람'이라는 기억은 없었을 텐데.
나는 어쩌자고 "토미카 어때?"라고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