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희 Mar 25. 2024

집에 대하여, 혹은 방에 대하여

 

기억 속의 첫 집은

도시가 가까운 시골의 셋방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빠에게서 나던 희미한 막걸리 냄새도 기억이 난다. 엄마는 뜨개질을 해서 노란 모자도 만들어주고, 하늘색 조끼도 만들어 주었는데 그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온 동네를, 들판을, 산을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일곱 살이었나

이사를 했다. 도시로

주택가 방 세 칸짜리 우리 집으로 이사를 하고, 아랫방에는 한 가 족이 세를 들어사는 집이었다. 그 집을 사고한동안 아빠는 월급날마다 봉투를 들고 고모집으로 갔다. 이렇게 돈을 주고 나면 남는 돈이 있냐고 하던 고모의 말이 기억난다.


국민학교 오 학년

한 동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집에 소파라는 걸 놓고 싱크대라는 게 생겼다.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하하하, 이거 비닐소파야.” 그래도 좋았다. 그 친구랑은 졸업할 때까지 잘 지냈다.


서울로 가게 된 나는

양평에 사는 사촌오빠네 집 다섯 살짜리 조카 방에서 지냈다. 아침에 통일호 기차를 타고 학교를 갔다  기차에서 베이시스 음악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방값을 받을 수 없다던 오빠 언니에게 아빠는 쌀 한 가마니를 보냈다. 사촌 시누이와 같이 살겠다고 먼저 말한 언니에게 가슴깊이 감사하다. 후에 첫 월급을 타고 언니 줄 선물을 고르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일 년을 살고

나는 학교 앞 고시원으로 이사를 했다.

스무 명이 사는 고시원에 화장실은 하나, 샤워실도 하나였다.  짐 한 박스를 실어주던 사촌오빠는 조그만 방을 보고 말을 못 했다. 오빠의 눈빛이 흔들렸던 기억이 있다. 나는 웃었다. 괜찮다고. 의외로 나는 창문하나 없는 그 고시원에서 잘 지냈다. 친구와 옆 방 언니와, 창문 있는 방 언니와, 티브이 있는 방 언니와 재미있게 지낸 기억이 있다. 샤워실에서 샤워하다 넘어져 귀 앞이 찢어져 병원에 간 기억도 있다


육 개월 후에

과 친구가 아파트에 혼자 사는데 같이 살자고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얼마를 낼 거냐고 물었다. 나는 고시원에서 낸 돈과 같은 돈을 내고 그 집에 살았다. 편하고도 불편했다.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나는 그만 불편하기로 했다.


봄이 되어

학교 앞 셰어 하우스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생과 살았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내 책상을 샀다. 불편하고도 편했다. 친동생처럼 싸우고도 잘 지냈다. 가끔 밤에 불을 끄고 둘이서 춤을 추기도 했다. 학교를 다녀오니 집에 도둑이 든 적도 있었다. 사람이 없을 때 도둑이 들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졸업을 하기 전에 둘 다 그 집에서 나왔다.


산 꼭대기 반지하 방을 구했다.

학교랑 멀리 떨어진 동네의 반지하 방이었다. 책상 앞 창문을 열면 강아지가 나를 쳐다보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밤에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옆 집에는 미친 여자가 강아지 다섯 마리를 풀어헤쳐놓고 키우던 집, 나는 그 집에서 취업을 준비했고 졸업을 했다.


내 집이 없는 서러움은 컸다.

그런데 또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재미있는 일은 항상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방이 아니라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방세걱정을 하지 않고,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장학금을 위해 기를 쓰지 않아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그 삶이 참 부러웠다.


그즈음 신도시에 있는 마트를 간 적이 있었다.

저녁 무렵이었다. 카트를 끌고 오는 사람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카트를 끌고 물건을 사고 마트 뒤 집으로 가는 사람들, 그곳은 공기도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어제

남편과 같이 산책하듯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우리 집에 들어왔다.

저녁이었고 봄이 오는 공기는 포근했다.


이십 대의 영희를 이곳에 데려오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쉬기 전의 내가 나에게 너 지금 뭐 하냐 물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