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생일 잡채

내 잔치의 완성은 상차림인 것을

by 선지혜



난 특별한 날, 꼭 상차림을 해야 한다.


친정 엄마는

한 번도 식구들의 생일상을 거른 적이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갓 지은 흰쌀밥에 푹 고아낸 미역국.


바쁜 아침엔 엄마의 성화가 귀찮기도 했지만

엄마의 그 고집이,

나에게 따뜻하게 남아서일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생일이 되면 미역국 하나로는 성에 안 찬다.

잡채, 불고기, 동태 전…

줄줄이 차려 내야 마음이 놓이고

남편은 번거롭게 뭘 하냐지만, 난 그게 좋다.


내 잔치의 완성은 상차림인 것을.




남편의 생일 전 날, 아이들과 장을 보러 갔다.

내일 아빠 생신상 차릴 거야~

엄마는 고기 좀 볼게, 사고 싶은 거 둘러봐~“

아이들은 제각각 흩어지고


난 고기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래도 생일인데, 한우 사야겠지. 와 비싸네..‘


천방지축 작은애는 과자를 한 아름 들고 오고

난 고기 앞에서 몇 번을 고민했다.


그때, 20인분 당면을 들고 나타난 큰아이.

엄마! 잡채 해야지!”

어.. 이번엔 잡채를 뺄까 했는데, 해야겠다.

고기를 더 샀다.




잡채를 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수없이 주방을 들락거린다.

고기 볶으면 한 입,

당근 볶으면 또 한 입,

시금치 무칠 땐 입맛을 다시며 이미 대기 중이다.


간이 딱 좋다는 작은애 말에 “네가 해 볼래? ”

잡채 버무리기를 권유해 봤다.


작은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중에 부인한테 사랑받으려면,

요리도 잘해야 돼~

그러려면 지금부터 연습해야 된다구.“

“아니야. 잡채 말고, 다른 거 다 잘할 수 있어.”


보다 못한 큰애가 나섰다.


큰 볼을 꺼내, 준비된 재료들을 모두 털어 넣었다.

우수수 쏟아지는 당근, 고기, 시금치…

줄줄이 집어먹느라 바쁘다. 먹으랬냐?


당면을 삶아 볼에 넣으니

엄청난 양에 큰애가 기겁을 한다.

헐, 엄마. 이게 맞아?”

항상 이만큼 했는데 뭘! 이거 금방 먹어!

네가 거의 다 먹잖아 “

아니야! 아빠가 더 많이 먹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당면 위로

간장과 설탕을 콸콸 쏟아부었다.

엄마, 잠깐. 이게 맞는 거야?”

맞다니까~ 일단 버무려.”


아이는 슬라임 만지듯

조물조물 잡채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아. 좀, 팍팍! 그래서 간이 베갰어?

아래위로 뒤집어 가면서. 오케이? “


입이 대빨 나왔다.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를

주무르기를 하더니 이제 먹어보겠단다.

아직 당면이 허연데?


먹어봐도 돼? 이제 됐어?”

열 번은 물어본 것 같다.


적당히 간이 밴 잡채에 참기름 휘휘 두르니

고소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꼬르륵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지금이야! 어서”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움큼 입에 넣었다.

얼굴에, 팔뚝에 참기름 칠 갑 팔 갑 소녀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맛있다! 오. 맛있어! 엄마 짱이야!”




큰 접시 가득 덜어 놓은 간 보기 잡채가

금세, 싹 비워졌다.

거봐! 얘들아, 이거 내일이면 없어~”

그러네? 엄마. 얼마 안 되네? “

아이들이 배시시 웃는다.


“아이구~ 먹보들! 지난번엔 좀 남더니.

다음엔 30인분 해야 되나 봐! “



맛보기로 반이나 해치운, 남편의 생일 잡채.

내일 생일상에, 메뉴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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