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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예쁜이' 이야기

by 달의 깃털

'예쁜이'란 이름은 일종의 역설이자 반어법이다.


길냥이들에게 조차 외모 잣대를 갖다 대는 게 참 슬픈 일이지만, 예쁜이는 정말이지 너무너무 예쁘지 않았다. 예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비호감이라고나 할까.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무섭게(?) 생겼나 싶어 충격적이었다. 저 얼굴을 하고 어디 가서도 환영은 못 받겠구나 싶어 안쓰러움이 더했다. 대나무 숲에 숨어서 처량 맞게 울고 있는 걸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경계가 심한 오리지널 길냥이다. 그저 막연하게, 눈에는 안 띄어도 쟤도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구나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싸이가 격렬하게 짖어댄다. 나는 이제 싸이가 짖는 소리만 들어도 저게 사람보고 짖는 건지 고양이 보고 짖는 건지 구분을 한다. 틀림없이 고양이가 나타난 거다.


KakaoTalk_20180814_102638597.jpg 처음 발견한 살구의 모습이에요. 저 당시는 이건 또 뭔가 싶어 멘붕이었는데 ㅠㅠ 그 와중에도 어찌나 예쁘던지요.

가 보니 2개월도 안 되어 보이는 새끼 냥이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 싸이를 보고 겁에 질려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다. 불쌍해 다가가니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하악질은 장난이 아니다. 어디 다쳤나. 왜 도망가지 않을까. 사람 손이 닿으면 엄마가 돌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2미터쯤 뒤에 예쁜이가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기 냥이가 예쁜이 새끼인 줄은 짐작도 못했다. 전혀 예쁜이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 예쁜이가 암컷이었으며 우리 집 근처 어딘가에다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KakaoTalk_20180814_102633523.jpg 예쁜이는 정말 무섭게 생겼는데ㅠㅠ 근데 자꾸 보니까 정들어서 이젠 심지어 진짜 예뻐 보여요 ㅎㅎ

태희가 여섯 마리 새끼를 낳은 현실에 아직 채 적응도 못했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신이시여~ 저에게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건가요.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태희 새끼는 여섯 마리였지만, 예쁜이 새끼는 단 세 마리라는 것. 또 엄마를 닮지 않고 세 마리 모두가 너무너무 예쁘게 생겼다는 것. 며칠 지켜보면서 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저렇게 예쁜데 입양 공고를 올려보면 누가 입양하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한 번 시도해 볼까. 솔직히 너무 예뻐 냉큼 주워오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싸복이 남매와 뭉치를 생각해야 한다. 혼자서 셋을 돌보는 것도 쉽지 않다. 독하게 더 이상은 입양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KakaoTalk_20180814_102637262.jpg 입양 보내려고 잡아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람 손타면 어미가 모른척한대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미가 잘 보살피고 있어요.

고민의 고민 끝에 사진을 찍어 입양 공고를 올렸다. 결과는 대 실패,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구조되어 입양을 기다리는 길냥이 새끼가 얼마나 많은지. 딱 한 사람 문의가 왔지만 도중에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는 감감무소식. 찔러보는 사람 하나 없었다. 대개 길냥이들은 봄에 새끼를 많이 낳는다. 요맘때가 아기 고양이 러시인 셈이다. 그렇다고 주변에 고양이를 키울만한 사람도 없다.(인간관계도 얄팍하다) 그저 또 우리 집 마당 냥이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별수 있겠나. 터 잡은 길냥이를 어떻게 쫓아 보낼 수도 없고, 내가 밥을 주니 길냥이가 꼬이는 것은 당연지사 일 터. 암컷인 줄 미리 알았다면 수술이라도 시켜줄 텐데. 배가 불러서나, 애를 놓고서야 내 눈앞에 나타나니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다.


모든 걸 포기한 나는 세 마리 아기 냥이의 이름을 지어본다. 자두, 앵두, 살구, 이렇게. 이러다 길냥이 작명가 될 판이다. 한 마리는 삼색이, 두 마리는 예쁜이와 같은 하얀 바탕에 검은 반점이다. 삼색이는 살구, 똑 닮은 나머지 두 마리는 자두와 앵두다. 뭐, 여름에 태어났으니 여름과일 이름을 붙여봤다. 음식 이름을 붙이면 오래 산다고 했으니까.


KakaoTalk_20180814_102635205.jpg 넌 자두냐? 앵두냐? 둘이 쌍둥이처럼 닮았는데 등에 까만 반점이 더 많은 아깽이가 자두랍니다. ㅎㅎ

예쁜이는 옆집 할머니 밭에 있는 창고에 새끼를 낳았다. 우리 집 보일러실에서 사료를 먹을 수 있으니 할머니 밭과 보일러실을 오가며 지내는 중이었던 것. 흩어지는 정신을 부여잡아본다. 일단, 예쁜이를 수술시켜 줘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살피며 잡을 시기를 노려본다. 때가 왔다. 이제 제법 아기 냥이들이 냥이 꼴이 난다. 게다가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니 36계 길냥이 예쁜이와도 나름 낯을 익혔다.(손을 타진 않아도 나만의 생각이지만 만나면 어색하지 않은 정도) 다행히도 아침마다 면전에서 몽이와 알콩이에게 통조림을 주었더니, 통조림 맛을 알아 내가 있는데도 과감히 통조림에 코를 박는다. 오호, 예감이 좋다. 왠지 이번에도 손 안 대고 코 풀듯 쉽게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KakaoTalk_20180814_102634758.jpg 태희 새끼들이랑 다르게 도망가긴 하는데, 적극적으로 숨지는 않아요. 좀 더 지켜보면 친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볼랍니다.

이젠 뱀에 물렸던 싸이도 괜찮아지고 나도 제 컨디션을 찾았다. 오늘이다. 한 번 덫을 놓아볼까나. 예쁜이가 관심을 보인다. 역시, 쉽게 들어갈 생각은 없다. 나는 이제 배짱이 두둑인지라(온 우주가 쉽게 잡을 수 있게 도와줄 거니까), 잠시 지켜보다 집안으로 들어가 출근 준비를 한다. 10분 후 나와보니, 예쁜이 새끼 앵두가 들어가 있다. 실패. 다시 덫을 세팅한 후 집안일을 보다 10분 후 또 나와본다. 이번에는 자두가 들어가 있다. 두 번째 실패. 오늘은 늦었으니 그만 접을까 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기로 한다. 또 10분 후 나와보니, 오~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 예쁜이가 들어가 있다. 이쯤 되면 나는 신의 손이 아닌가 싶다.


"통덫으로 길냥이 잡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KakaoTalk_20180814_102637766.jpg 예쁜이와 앵두. 앵두~ 너 딱 걸렸어? 아줌마 밥을 먹으면 좀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 보아 ㅋㅋ

예쁜이는 지금 병원에 있다. 언제나처럼 해피엔딩이다. 당분간은 - 태희와 예쁜이 새끼들이 크기 전까지는 - 길냥이들을 잡아야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겨울이 되면 새끼들 중에 암컷은 사그리(?) 잡아 수술시켜줄 예정이다. 저 많은 아이들을 어찌 잡나 싶지만, 뭐, 그때는 그때만의 방법이 생기겠지. 태희 가족들과 예쁜이 가족들이 전혀 충돌 없이 - 나름대로 구역을 나누어 - 평화롭게 뒷마당에서 공존 중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새끼 냥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즐겁다. 생명은 참으로 신비하다. 마음 한편이 늘 무겁지만, 얘네들의 눈을 쳐다보고 있으면 모든 시름이 저 멀리로 날아간다. 내가 길냥이들 밥을 주는 이상, 언제 어느 때 어느 길냥이가 또 우리 집에 새끼를 낳을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길냥이가 늘어날까 봐 겁이 더럭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감당해 보는 수밖에.


KakaoTalk_20180814_102637077.jpg 예쁜이와 자두. 몽이가 먹고 남긴 통조림 먹는 중이어요.

오늘은 오늘 해결해야 할 일들만 걱정하고 앞으로의 일은 그때그때 고민하기로 해 본다. 오늘만큼은, 병원에 예쁜이를 맡기고 돌아온 내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렇게 하루하루 오늘만 살자.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자두, 앵두, 살구야. 3일만 기다리렴. 엄마가 금방 집으로 돌아올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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