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번째 이야기
다음날이 되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성호를 긋는다(냉담한지 수십 년인데 아쉬울 땐 습관처럼 뻔뻔하게 저 짓을 한다). 태희는 그림자도 안 보이고, 새끼 중 한 마리가 대나무 숲에 숨어서 계속 울고 있다. 뭐지. 태희가 새끼 떼놓고 도망이라도 갔나. 오늘도 못 잡나 싶어, 다른 길냥이들 챙기면서 유유자적 놀고 있었는데 어느새 태희가 울던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오호라, 이때다. 재빠른 동작으로 덫을 설치한다. 어제 하루 종일 굶었으므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역시 굶주림이 무섭다. 나의 예상대로 쉽게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태희를 무사히 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태희는 병원에서 72시간을 보낸 후, 퇴원을 했다. 길냥이 TNR로 수술을 한 경우, 병원에 72시간을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새끼들은 어미 없이도 나름대로 잘 지내는 듯했다. 나는 여섯 마리 새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첫 번째는 '미니몽'. 미니몽은 턱시도 냥이다. 아마도 아빠가 뭉치 새끼인 몽이인 듯하다.(추측이긴 하지만) '몽'이가 턱시도 냥이기 때문이다. '몽이를 빼다 박았다'는 의미에서 '미니몽'이라고 지었다. 두 번째, '탄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까맣다. 그래서 '탄이'가 되었다. 세 번째, '혜교'. 유일하게 엄마인 태희를 빼다 박았다. 태희보다 예쁘다는 의미로 '혜교'다. 네 번째, '신비'. 신비는 삼색이다. 태비종과 턱시도냥 사이에서 뜬금없이 삼색이가 나오다니. 너무 놀랍다는 의미에서 '신비'로 지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는 '건이와 강이'로 지었다. 두 마리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닮았다. '테비종+블랙 냥이+치즈냥'이 섞인 오묘한 색깔인데, 진짜 못생겼다(얘들아~ 미안~). 꼭 요다처럼. 못생기게 태어난 것도 억울하니, 더욱더 건강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건이'와 '강이'로 이름 지었다.
우리 집 뒤가 바로 산이다. 산과 우리 집의 경계에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태희는 아마도 저 대나무 숲에 새끼를 낳은 듯하다. 대나무 숲 군데군데 우리 아버지가 풀 앉지 말라고 덮개를 덮어두셨는데, 항상 보면 그 덮개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숲이 워낙 빽빽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아침마다 유심히 쳐다보면 대숲 여기저기에 숨어있다. 뿐만 아니라, 옆집 할머니 밭에서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사료가 놓여있는 보일러실에서 노닐 때도 많다. 가끔씩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 앞마당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나는 졸지에 관리해야 하는 냥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옆집 할머니 눈치가 너무 보이고 (고양이 많아졌다고 엄청 구시렁거린다), 책임감에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임신하기 전에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 하는 것이 걱정이다. 잡는 과정 또한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없이 못생겨 보였던 태희의 새끼들도 자주 보다 보니 정이 담뿍 들었다. 뭐, 이젠 또 별수 없이 내 식구가 된 셈이다. 보살펴야 할 길냥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더불어 어깨도 점점 무거워지고 근심 또한 늘어간다. 휴우~ 힘들지만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니 있는 힘껏 감당해 보기로 한다. 하는데 까지, 열심히. 앞으로도 제2, 제3의 태희가 또 나타날 것이다. 이러다가 우리 집 뒤뜰은 길냥이들 천지가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이러려고 내가 마당 있는 집을 선택했나 보다. 나중일은 닥쳤을 때 생각하고, 태희도, 6마리 새끼들도 우리 집 뒷마당에서 행복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