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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태희'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by 달의 깃털

태희는 '김태희 뺨을 칠 만큼 예쁜 테비종 고양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처음 본 것은 태희가 아직 어린 고양이었을 때다. 엄마 품 갓 떨어진 냥이답게 겁이 많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몇 번 대나무 숲에 숨어있는 걸 본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도 36계 길냥이인지라 제대로 본 적은 없다. 너무 예뻐서 눈도장을 간신히 찍은 경우랄까. 태희가 눈에 부쩍 띄기 시작한 것은 임신하면서부터다. 아침에 밥을 줄 때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배가 고팠을 것이다. 눈에 띄게 부른 배를 보고서야 암컷임을 알았다.


그때부터 더욱더 유심히 살폈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끼들 젖 뗄 때가 되면 잡아서 수술을 시켜줘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소 배가 홀쭉해졌다(새끼를 낳은 것이다). 이후로는 우리 집에 아주 눌러살다 시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딘가 다른 곳에 새끼를 낳았는 줄 알았다. 원래 우리 집에 살던 아이가 아니었고, 새끼의 흔적조차 볼 수 없었으므로.


다운로드 (1).jpg 뒤뜰의 대나무 숲은 대나무가 빽빽하고 경사가 심해 사람은 들어갈 수 없어요. 냥이들이 숨기 정말 좋은 장소죠. 숨어 있는 태희를 찾아보세요^^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무심코 창문으로 뒷마당을 봤는데, 태희 뒤를 새끼 냥이들이 따라간다. 어라~ 뭐지? 우리 집에 새끼를 낳은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놀람과 충격은 배가 되었다. 한 마리도 두 마리도 아니고 모두 여섯 마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단 한 마리만 빼고 예쁜 태희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 오 신이시여~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한다. 이 일을 어쩐다. 안쓰러움과 짠함과 놀라움이 뒤섞인다.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사그리(?) 잡아 입양 공고라도 내봐야 하나. 잡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그게 맞는 일일까. 엄마 없이 다 죽게 생긴 것도 아닌데 그건 오지랖 아닐까.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이렇게 정리했다. '젖을 뗄 정도가 되면, 태희는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준다. 이후 새끼들은 지켜보고, 계속 우리 집 뒷마당에서 산다면 암놈들은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준다' 이렇게.


KakaoTalk_20180731_155216100.jpg 젖뗄무렵부터 새끼 냥이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뒷마당과 대숲은 아예 태희네 식구들 아지트가 되었어요.

하루가 다르게 새끼들이 쑥쑥 커간다. 뒷마당이나 보일러실에서 시시때때로 여섯 마리 새끼들이 우다다다 노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다소 마음이 무거웠지만, 점차 부엌 창문으로 새끼들 노는 모양을 지켜보는 일이 즐거워졌다. 아침에 내가 사료 위에 통조림을 하나 올려주면, 태희가 한입 물어 땅에 놓고 새끼들을 소리 내어 부른다. 그러면 새끼들이 대나무 숲에 있다가 나와서 먹는다. 숨어서 그런 모습을 훔쳐보는 일이 흐뭇했다. 그러면서도 언제쯤 태희를 잡아서 병원에 데려가나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이제 좀 잡아볼까 싶을 때, 그때 마침 태희가 새끼들 젖을 물리는 광경을 보게 됐다. 뭐지. 아직도 젖을 안 뗀 건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일주일을 더 지켜보기로 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KakaoTalk_20180731_155209610.jpg 저기가 길냥이 급식대인데, 저 위에 올라가 있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태희가 보이지 않는다. 새끼들도 그림자도 안 보인다. 뭐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심장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범백이라도 걸린 걸까. 그러고 보니 뒷마당에 고양이 설사 흔적이 보이는 것도 같다. 범백은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다. 새끼 고양이는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니면 고양이 많아졌다고 구시렁거리는 옆집 할머니가 해코지라도 한 걸까. 불길한 예감이 떠나질 않는다. 사흘째 되는 날은 정말 죽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5일째 되는 날, 태희가 짠~ 하고 다시 나타났다. 뭐지. 나랑 밀당하는 건가. 나는 다시 디데이를 잡는다. 내일이다. 다시 임신하기 전에 빨리 잡자. 내일부터 시도해보자 마음을 먹는다.


KakaoTalk_20180731_155210238.jpg 나만 나타나면 쏙 숨는 터라(창문만 열어도요), 몰래몰래 사진 찍기 정말 쉽지 않았어요 ㅎㅎ

태희를 잡는 일은 쉬울 줄 알았다. 그간 몇 번의 경험으로 노하우가 쌓였고, 무엇보다도 길냥이 잡기에 있어서 만큼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뻔뻔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희의 경우 정해진 시간이면 반드시 그 자리에 있는 편이다. 사료를 싹 치우고 손타는 길냥이들을 배불리 먹인 후, 덫을 놓았다. 태희가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아뿔싸, 그때 그사이 많이 자란 태희 새끼들이 관심을 보인다. 어라, 이게 아닌데. 저러다 애먼 새끼가 들어가지 싶다. 30분 동안 사투를 벌였으나 태희는 안 잡히고, 애꿎은 새끼 냥이 한 번, 뭉치 새끼인 심이 한 번, 이렇게 덫에 걸렸다 풀려났다. 경계가 심한 태희는 주변만 맴돌 뿐 들어갈 생각이 1%도 없다. 한방에 성공할 줄 알았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일단 내일을 도모하기로 한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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