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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들을 위한 월동준비

냥이 천국 오픈

by 달의 깃털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올 것이다. 길냥이들에겐 잔인한 계절이다.


한 겨울에는 물이 얼어 물먹기도 쉽지 않고, 칼바람에 따습게 몸 누일 공간을 찾기도 힘들다. 겨울은 길냥이들에게 잔인한 계절이다.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길냥이들은 다들 지난겨울을 무사히 보냈다. 때론 우리 집 보일러실에서, 또 보이지 않는 자기들만의 은신처에서 길고 긴 겨울밤을 났을 것이다. 월동준비 겸 겸사겸사 뒤뜰의 고양이들 안식처를 조금 더 손보기로 했다. 스티로폼 박스로 고양이집을 좀 더 만들어 주고, 보일러 실도 더 따뜻하게, 길냥이 급식대도 말끔하게 손을 보기로.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웠고 필요한 물품을 미리미리 구입했다. 평소에 동물에 관심이 많은 친한 알바생들을 꼬드겨(좋은 일 하는 거야 하는 사탕발림으로) 일정을 잡았다.


KakaoTalk_20181018_165225502.jpg 열심히 고양이집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인터넷을 뒤져 최적의(?) 고양이집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ㅎㅎ

가장 걱정이 앞서는 건 태희네 대가족이었다. 태희는 우리 집 뒤뜰의 대숲에서 새끼를 낳았다. 나의 추정대로라면 따뜻한 5월에 태어나 지금까지 노숙 중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태희와 5남매는 어디서 긴 밤을 보내나 싶어 늘 걱정이었다. 대숲 입구에 오래전 들어가면 좋고 아님 말고 싶은 마음으로 그냥 놓아둔 고양이 집이 있었다. 날이 부쩍 추워진 어느 날 아침 길냥이들 밥 주러 가는 길이었다. 그 집에서 냥이가 튀어나온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그 좁은 집에서 이젠 다 나왔겠지 싶었는데, 뒤이어 넷, 다섯, 여섯 마리, 그러니까 태희네 6남매가 하나씩 튀어나온 것이었다. 저렇게 좁은 집에? 자그마치 여섯 마리가? 내 예상대로 지금까지는 노숙을 한 모양이다. 날이 추워지니 그 좁은 고양이집에 여섯 남매가 함께 몸을 뉘었던 것이다.


KakaoTalk_20181018_165224742.jpg 제가 좀 손이 커요. 넉넉하게 한 12개는 만든 것 같아요 ㅎㅎ

KakaoTalk_20181018_165220219.jpg 급식대 주변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네요.

길냥이 급식대를 손봤어요. 겨울이면 물이 늘 얼어 안타까웠거든요. 밥 먹을 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얼기설기 지붕도 만들어 보았고요. 최대한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도록 해 보았어요. 저 지붕에는 가끔 태희네 5남매가 올라타고 놀아요. 비가림 용도로 설치한 건데 얼떨결에 놀이터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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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을 곳을 좋아하는 냥이들을 위해 저렇게 선반을 설치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네요. 태희네 남매들이 좀 더 크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의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KakaoTalk_20181018_165222502.jpg 태희네 5남매 중 '탄이'가 특히 저 위를 좋아해서 자주 올라간답니다.

이건 원래부터 있었던 고양이 집이에요. 붉은 천막 안 깊은 곳에 고양이 집이 한채 있죠. 뭉치가 길냥이 시절 자던 곳이기도 하고요. 천막 위를 좀 더 푹신푹신하게 만들어 주었고요. 그늘막도 설치해 보았어요. 근처에 고양이 집도 몇 채 놓았고요. 예쁜이냥 3남매가 저 위에 올라가는 걸 좋아해서 저렇게 만들어 주고 싶었거든요. 안타깝게도 더 이상 저 위에서 낮잠 자는 자두, 살구, 앵두 삼 남매는 볼 수 없지만 대신 '탄이'가 올라가 있네요. 태희네 5남매가 이 위에서 노는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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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보일러 실이예요. 맨 안쪽에도 길냥이들을 위한 밥그릇이 놓여 있는데요. 길냥이들 출입을 위해 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에 아주 추운 한겨울에는 저기도 물이 얼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참에 중간에 이불을 걸었어요(저거 작년에 산 새 이불이에요 ㅠㅠ). 안쪽에 집도 만들어 두었고요. 아주 추운 날에는 보일러실이 엄청 따뜻하거든요. 이불 한 장 걸었을 뿐인데 훨씬 따뜻해졌어요. 이제는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겠죠.


KakaoTalk_20181018_165221437.jpg 태희네 5남매 집합 완료!!!

두둥~ 대미는 태희네 식구들이 몸을 우겨자던 고양이 집의 변신이에요. 좀 더 넓은(다섯이 자기 충분한) 사이즈의 스티로폼 집입니다. 저의 예상대로 이 집을 아주 좋아해서 매일 여기서 함께 잔답니다. 나름 비를 피하기 위한 가림막도 설치를 했고요. 난간 비슷하게 만들어주었더니 저기 올라가 있는 것도 좋아해요. 재미난 건, 의도한 건 아닌데 마침 저 집의 위치가 딱 부엌 창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위치라는 거죠.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창을 열고 동태를(?) 살필 수 있어 좋아요. 한결 친해진 느낌이에요. 새벽에 동이 트면 창문을 열고 태희네 5남매를 불러본답니다. 저날 마침 다섯 마리가 모두 다 저러고 저를 빤히 쳐다보더라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길냥이들 돌보는 일이 힘들 때가 많죠. 특히 이번처럼 많은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걸 보았을 때는요. 그 모든 시름과 안타까움을 한순간에 날려 보내는 게 저런 순간들이에요. 5남매가 어찌나 예쁘던지요. 그저 우리 집 뒤뜰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이좋게 살기를 바랄 뿐이에요.


다소 거창하지만 저는 우리 집 뒷마당을 앞으로 '냥이 천국'이라고 부를 예정이에요. 어떤 분께서 댓글로 '여기가 냥이 천국이네요~'라고 해주신 말씀에서 힌트를 얻었지요. 뒷마당에는 자두, 살구, 건이가 묻혀 있기도 하지요. 슬프지만 앞으로도 또 다른 길냥이들이 무덤이 될 테고요. 여러 가지 의미로 길냥이들의 천국이 되겠지요.


그저 우리 동네 길냥이들에게는 쉬어가는 휴식처가, 뒷마당의 길냥이들에게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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