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를 묻은 다음날이었다. 새벽에 싸복이 남매와 산책을 나가는데, 내 차 옆에 고양이가 죽어있다.
어두워 잘 보지 못했지만 태희네 새끼냥 중 한 마리인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확인해 보니 태희 새끼냥 중 '건이'다. 건이는 아직 몸이 채 굳지 않았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건이는 또 왜 죽은 것일까. 나의 우려대로 우리 집 새끼냥들이 모두 전염병에 걸린 것일까. 사실 태희 냥 새끼 '신비'도 며칠 전부터 기침을 하고 눈에 눈곱이 낀 것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 우리 집은 줄초상을 치르게 되는 걸까. 아, 나쁜 일은 왜 이렇게 연이어서 오는 것일까. 신은 왜 이렇게 나에게 잔인하기만 한 것일까. 건이는 살구와 자두 곁에 묻어 주었다. 나는 죽은 후에야 비로소 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었다.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저 맥없이 우리 집 길냥이 새끼들이 죽어나가는 꼴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 건가. 어떡해야 하는 것일까. 마침 병원에 갈 일이 있어 의사샘에게 물어보니 범백은 기침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침을 하고 눈곱이 끼었다면 '허피스'일 확률이 높다고. 위험한 병이냐고 물었더니, 잘 먹으면 괜찮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비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아니라 허피스에 걸린 게 아닐까. 신비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더 나빠져가는 듯했다. 신비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아이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매일매일 내 눈에 띄었다. 차라리 살구와 앵두처럼 짧은 순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모른 척하겠다는 결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저 멀리로 사라져 갔다. 출근해서도 계속해서 신비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어떻게든 잡아서 병원에 데려가자 싶었다. 다음날, 나는 말도 안 되게(?) 신비를 뜰채로 잡았다. 다섯 마리가 함께 모여 있는데 덫을 놓는 것은 어리석게 느껴졌다. 도대체 누가 들어갈지 알고. 차라리 아침에 고양이집에서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뜰채로 잡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그래도 실제로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길냥이 잡는 데 도튼 여인네답게 신비를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능숙하게(?)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 간 신비는 너무도 사납게 굴어 눈에는 약을 넣어보지도 못하고 항생제 주사 한 방 맞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손에는 다른 남매들과 함께 먹이기 위한 항생제 한 통을 들고.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태희네 식구들을 주시하고 또 주시했다. 자세히 보니 태희네 새끼냥 중 남아인 '탄이, 혜교, 미니몽'은 멀쩡하고, 여아인 '신비'가 상태가 가장 좋지 않으며, '강이' 역시 기침을 하고 있었다. 항생제가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통조림에 부지런히 항생제를 섞어 먹였다. 통조림을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 답게 다행스럽게 쓴 약이 들어가 있는 통조림도 제법 잘 먹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며칠이 흘렀다. 쉽게 차도를 보이지 않던 신비가 많이 나아졌고, 강이도 기침을 그쳤다. 다른 아이들도 다 무사하다.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내 짐작대로 예쁜이네 삼 남매를 죽음으로 몰아간 전염병은 걸리지 않은 듯하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고양이 감기라고 불리는 허피스에 걸렸을 것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집 길냥이들을 잃고 싶지 않다.
5월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태희 냥 새끼들은 이제 5개월령이 되었다. 제일 덩치가 큰 탄이의 경우 이젠 제법 성인 고양이 태가 나기도 한다. 건이는 6남매 중에 가작 작았던 아이다. 건이가 왜 무지개다리를 건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일 작고 약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제일 작아, 예쁘지 않아 가장 안쓰러웠던 아이가 건이다. 특히 가장 낯을 가리지 않아 내가 가까이 있어도 도망가지 않아 정이 제법 들었다. 건이가 무지개다리 너머에서는 훨훨 날아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제법 크다 보니 이제 엄마냥 태희는 뒤꽁무니도 보기 힘들다. 아이들을 독립시킨 모양새다. 이제 5남매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집 안에 있는 아이들처럼 케어해줄 순 없다고 해도, 예쁜이네 3남매를 잃은 지금 남은 5남매에게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 떠나간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남은 아이들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의젓한 어른 냥이가 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나고 죽는 건 신의 영역이다. 앞으로도 우리 집 뒷마당의 길냥이 중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떠나간 자리가 너무 크고, 또 이별은 언제나 가슴 아프지만,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남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또 하루가 흘러가고, 일상이 쌓여간다. 아마도, 이게 내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