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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이스 길냥이, 미유 이야기

by 달의 깃털

뭉치부터 자두, 살구, 앵두, 건이까지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이후 나에게 우리 집 길냥이들과의 다가올 이별은 눈 앞의 현실이 되었다.


매일 얼굴도장을 찍던 냥이 중에 하루 이틀 안 보이는 녀석이 있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길냥이들의 인생길처럼 매일매일이 살얼음 같은 긴장의 연속이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 집 뒷마당은 평화롭다. 태희네 5남매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중이며(이젠 제법 어른 티가 난다), 알콩이, 몽이, 노랑이, 예쁜이, 태희도 모두 건강하다.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다른 길냥이들도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한 이주쯤 전이었을까. 태희네 5남매 속에 못 보던 얼굴 하나가 끼어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태희네 남매인 것처럼 어울리고 있지만, 눈썰미 좋은 나는 단번에 '뉴페이스'라는 걸 알아챘다. 오 남매보다 등치가 조금 작은 걸로 봐선 한 6개월령의 냥이 같다.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지나자, 우리 집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쟤는 누굴까. 어디서 온 것일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리 집 하늘이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나. 아니면 땅에서 솟기라도 한 것일까.


KakaoTalk_20181211_113909578.jpg '미유'는 이름처럼 아름다워요. 그저 안쓰럽고 또 안쓰럽죠.

나는 조심스레 하늘이의 남매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어린 냥이가 어디 먼 동네에서 우리 집까지 찾아왔을 리 만무하거니와, 하늘이에게 다른 남매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고, 몸집 크기가 대략 하늘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끼워맞추자면, 콧등에 난 점이 하늘이와 조금 닮은 것도 같고. 하늘이가 먹이를 찾아 우리 집을 찾아온 것처럼 얘도 그렇게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지 싶다. 나는 '뉴페이스' 냥이에게 '미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름다울 미, 어릴 유' 어리고 아름다운 고양이라는 의미로. 얼굴도 동글, 몸도 동글동글한 것이 마치 어딘가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처럼 예쁘고 귀엽기 때문이다.


KakaoTalk_20181211_113908958.jpg 몽이, 알콩이, 그리고 그 뒤에 미유. 족보를 따지자면 몽이와 미유는 외삼촌과 조카 사이.

만약 내 손을 탔다면,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면 나는 또 주저 없이 미유를 집에 들였을 것이다. 하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유는 사람 손을 탈 생각은 없다. 단지, 처음에 하늘이가 그랬던 것처럼 꽁지도 보이지 않도록 숨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제법 찍을 수 있었다. 태희네 오 남매가 나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으니(이젠 제법 나를 알아본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익숙해진 듯도 하다. 나는 미유가 많이 안쓰러웠다. 엄마인 쿵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듯한데, 엄마 없는 길 생활이 어땠을지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뒷마당에 완전히 터를 잡은 태희네 오 남매가 텃세를 부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KakaoTalk_20181211_113910091.jpg 미유, 그리고 왼쪽에는 태희네 오 남매 중 강이의 모습.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있는 주말, 미유가 태희네 오 남매가 함께 사는 집에서 같이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보고 또 봐도 미유가 맞다. 미유는 이제 마치 처음부터 한 뱃속에서 난 형제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오 남매와 함께 자고 어울린다. 아침에 밥 주러 가면 오 남매가 하나둘씩 집에서 뛰어나온다(오 남매는 한 집에서 같이 잔다). 지켜보면 미유는 그때까지 집안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름 막둥이라고 아침잠이 많아 게으름 부리는 중인가 싶어 참으로 귀엽다. 태희네 오 남매는 옹기종기 찰싹 붙어 잠을 잔다. 추워 보이는 집에서 한 겨울을 어찌 날까 싶어 걱정이 많은데, 늘 지들끼리 겹쳐서 자는 모양새를 보면 제법 따뜻하지 싶어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이젠 미유까지, 함께 자는 그 모습이 언제 봐도 예쁘다.


KakaoTalk_20181211_113911843.jpg 보고 또 봐도 동글동글한 미유가 참 예쁘다.

길냥이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있어서 텃세를 부리거나 싸우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잠자리까지 미유에게 내어 준 오 남매의 모습이 참으로 신비하다. 어쩌면 죽은 남매 건이 대신 미유를 받아준 것이 아닐까. 태희네 오 남매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시 육 남매가 되었다. 누군가 떠난 빈자리가 이렇게 채워졌다. 미유는 이렇게 우리 집 길냥이가 되었다. 엄마 잃고 혼자 떠돌던 미유는 이제 오 남매를 만나 조금은 덜 외로울 수 있을까. 태희네 오 남매 아니 육 남매는 언제까지 우리 집 뒷마당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올 겨울에 얘들을 무사히 잘 잡아 중성화 수술에 성공할 수 있을까. 누가 또 아프지나 않을까. 우리 집 뒷마당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뒷마당의 태희네 육 남매를 지켜보는 것이 큰 기쁨이자, 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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