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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가출사건

by 달의 깃털

하늘이가 가출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달전쯤의 일이다.


처음 뒷마당에서 하늘이를 구조해서 집으로 데려왔을 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어디서 어떻게 고생을 하고 다녔는지 몰라도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이제 살았구나 싶어서였을까.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원래부터 본인 집이었던 듯이 적응을 잘했다. 강제로(?) 납치한 뭉치가 들어온 직후부터 창문과 출입문에 관심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한마디로 나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나는 아마도 길에서 고생을 많이 한 탓이었으리라 짐작했다.


KakaoTalk_20181112_174403203.jpg 이것이 아마 가출했을 때쯤 사진이 아닐까 싶어요. 떼끼 이 녀석 어린놈이 벌써부터 가출을

마당에서 일을 할 때는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싸복이 남매는 이럴 때면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마당이 있는 집을 꿈꿨을 때부터 그렸던 그림이다. 하늘이를 들이고서도 주말에는 현관문을 열어 놓을 때가 많았다. 하늘이는 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주말이었고, 하루 종일 마당에서 일을 했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하늘이가 안 보인다. 처음에는 어느 구석에 숨었으려니 했다. 그 당시는 구석에 숨어 있는 게 일상일 때였으므로.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보이지 않자 슬금슬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숨을 만한 구석을 들여다봤다. 평소에 잘 숨던 장소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불안감이 커져간다. 오후까지는 거실에 있는 걸 분명히 보았는데 설마 하늘이가 가출을?


KakaoTalk_20181024_105943369.jpg 구석이란 구석은 죄 한 번씩 들어가 보는 것 같아요

혹시나 해서 김치냉장고까지 끄집어내며 뒤져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아. 뿔. 싸. 정녕 하늘이가 집을 나갔구나. 마당을 앞뒤로 샅샅이 훑어보고 집 근처도 돌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다. 불안한 듯 행복이가 연신 구석을 킁킁거린다. 평소에 눈치 없기로 제일가는 행복이가 웬일이지 하늘이의 부재를 알고 있는 것만 같다. 기다렸다. 어딘가에서 슬금슬금 나오겠지 싶어서. 8시가 되고 9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혹시 처음 발견했던 장작더미에 있을까, 마당 어딘가에 숨어 있을까 싶어 몇 번을 더 나가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는데 지가 어딜 가겠어' 하는 마음과 '이대로 하늘이와 영영 이별하는 거 아니야' 하는 마음이 널을 뛰었다. 아, 이 일을 어떡해야 하지.


KakaoTalk_20181024_105945548.jpg 한때는 이 자리에 숨어있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

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집 나간 고양이 찾는 법을 검색해 본다. 밖에서 개고생(?)하다 집냥이가 된 하늘이가 자발적으로 집을 탈출했을 리는 없을 듯싶었다. 우연히 나갔다가 놀라서 못 들어오고 있을 확률이 높다. 새벽 산책을 다녀온 후, 출근하기 전에 동네를 다 뒤져서라도 찾으리란 각오로 주머니에 평소 좋아하는 간식을 찔러 넣고 길을 나섰다.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조심조심 하늘이를 부르며 뒷마당으로 먼저 가봤다. 어디서 새끼 냥이 울음소리가 난다. 하늘이다. 나의 예상대로 처음 발견해서 데려왔던 장작더미 안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울고 있다(그러게 집은 왜 나간 거니 ㅠㅠ). 츄르로 유혹하는데도 겁을 잔뜩 먹어서인지 쉬이 달려들지 않는다. 정말 한 10분여는 씨름을 한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목덜미를 움켜잡고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KakaoTalk_20181112_174401542.jpg 어라~ 너희 둘 꽤 친해 보인다.

구성해 본 시나리오는 이렇다. 나는 그날따라 앞마당이 아니라 뒷마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늘이가 우연히 현관을 나왔는데 이를 보고 마당에 있던 싸복이남매가 미친 듯이 짖었을 것이다. 놀란 하늘이가 미처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숨은 것이다. 집냥이가 가출하면 크게 놀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어렵다고 들었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다르게 주인이 부른다고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집냥이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까닭일 것이다. 나는 진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가뜩이나 아직 어리고 겁이 많아 집안에서도 가끔씩 나를 보고도 도망가는 하늘이다. 한편으론 또 나가봤자 어차피 장작더미 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KakaoTalk_20181112_174402889.jpg 떡실신한 하늘이 모습이에요. 어멍은 허벅지가 좀 저려도 괜찮으니 언제까지나 우리 집에서 지금처럼만 편히 지내기를...

그래서 본의 아니게 요즘은 문단속에 열 일 중이다. 덕분에 어멍이 마당에 있을 때 자유롭게 집 안팎을 오가던 싸복이 남매의 '자유'도 이젠 끝이 났다. 어멍이 마당에 있을 땐 싸복이 남매도 마당에(집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다) 있어야만 한다. 아니면 어멍과 생이별한 상태로(?) 집 안에만 있든지. 다소 불편하지만 아직 어린 하늘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게, 뭉치처럼 외출 냥이로 지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도 그다지 창문에도 관심이 없는 걸 보면. 그래도 가끔 한 번씩 마당에 나와 넷이서 일광욕을 하는 풍경을 상상하곤 했었는데 그마저도 왠지 물 건너간 듯하다. 길에서 태어난 하늘이지만, 뭉치와 다르게 뼛속 깊이 집냥이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하늘아~ 이제 두 번 다시 가출하면 안 돼.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거 너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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