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마당의 허와 실, 두 번째 이야기

by 달의 깃털

고2 때까지 마당 있는 집에 살았다. 대지가 백 평이었으니 건평을 빼고 마당이 70평은 됐을 것이다. 회양목으로 둘러쳐진 커다란 꽃밭이 있었고, 시골에서는 그 당시 부의 상징(?) 보도블록이 깔린 집이었다. 뒤꼍 장독대에는 대추나무가 심어져 있는 작은 밭이 있었고 거기에는 딸기를 심었던 기억이 난다. 꽃밭에도 장독대에도 분명히 풀이 앉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부모님이 풀 뽑는 걸 보았던 기억은 없다. 시골에서 자고 나랐지만, 풀을 뽑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 큰 맘먹고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어차피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렇다면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단독으로 가보자 하게 된 것. 집주인 내외가 바로 50m 아래에 살고 있었던 것이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는 큰 이유였다. 그 집은 마당이 200평은 됐다. 잔디는 심었지만, 아직 채 마당을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주인아주머니가 풀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봄이 오니 마당에 풀이 많이 앉았다. 제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냉이였다. 내 집 마당에서 냉이를 캐서 무쳐먹고 국을 끓여 먹다니. 나는 처음 겪어보는 시골살이가 신기했다. 좀 있으니 쑥이 지천으로 나기 시작한다. 심심하면 쑥을 뜯어 전을 부쳐먹고, 쑥버무리를 해 먹었다. 아주머니가 도와주셔서 난생처음 텃밭을 가꾸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마당 있는 집' 살이는 참으로 재미있었다.


151.jpg 산 밑에 자리 잡은 나의 첫 번째 '마당 있는 집'

즐거움도 잠시, 5월이 되니 아주머니가 같이 꽃씨를 뿌렸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나는 기꺼이 그러고마 한다. 주말마다 꽃씨 심으랴, 잔디에 앉은 풀 뽑으랴 아주 허리가 휘던 나날이었다. 6월이 되었다. 아, 풀이 텃밭이고 마당이고 잔디 위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라기 시작한다. 아, 정말 풀 뽑다가 죽을 것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신기한 건 추석이 다가오자 풀 자라는 속도가 늦춰지더니, 추석이 지나고 나자 풀도 잘 앉지 않고 잔디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것. 참으로 신비한 자연의 이치다.


집에 물난리가 나서 7개월 정도 살고 저 집을 떠났는데, 주인집 내외와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져 나는 지금도 가끔 저 집에 놀러 가곤 한다. 그때마다 아주머니가 이야기하신다. 그 이후에 이사 온 사람들은, 나처럼 풀을 열심히 뽑은 사람이 없다고. 너 정말 부지런했다고. 아마도 7개월밖에 살지 않은 나를 예쁘게 봐주시는 이유 이리라.


KakaoTalk_20170313_141803934.jpg 자세히 보면 겨우내 죽은 잔디 위로 풀이 올라오고 있다. 봄이 오면 잔디는 금세 살아난다.

요즘 나는 우리 집 잔디마당에 아주 대놓고 제초제를 뿌린다. 멀쩡한 땅에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 양심에 걸리기는 하지만 도저히 직장 다니면서 잔디밭에 잡풀까지 뽑을 재간이 없다. 잔디 위에 풀이 엄청 앉는데, 잔디와 엉켜 일일이 뽑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할 일이 태산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그냥 깔끔하게 제초제를 뿌린다. 엊그제도 조금 일찌감치 제초제를 뿌렸다. 잔디밭에 제법 잡풀이 얹히기도 했지만 모처럼 시간이 나는 길에 빨리 해치우자 해서 제초제를 뿌리는 작업을 한 것. 수술 후 기력이 딸려 20l 통을 들기도 버거웠던 나는 저 통을 질질 끌고 다니며 제초제를 뿌렸다.


KakaoTalk_20170313_141758821.jpg 이젠 혼자서 제초제 뿌리는 것도 식은 죽 먹기.

열심히 제초제를 뿌리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마침 겨우내 땅에 묻어놓았던 무를 캐고 계신 모양이었다. 나를 부르시더니, 요렇게 이쁜 무를 건네주신다. 이럴 때 시골살이의 정겨움이 느껴진다. 사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어서, 집집마다 문턱이 낮은 시골살이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별 거 아닌 것도 나누어 먹는 인정은 참으로 흐뭇하다. 주말에 무생채를 담갔다. 안 그래도 김장김치가 곰팡이가 피어, 김치가 아쉬웠던 터였는데. 나도 한껏 담은 무생채를 우리 자취생 알바에게 나누어준다. 할머니가 베푼 인심이 나비효과를 타고 우리 알바생에게까지 전해진 셈이다.


KakaoTalk_20170313_141758263.jpg 겨우내 땅 속에 묻혀 있다 햇볕을 본 무, 참으로 달고 맛있었다.

이제는 정말 봄이다. 잔디마당에 냉이가 앉고, 화단의 꽃나무에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다. 주말 한낮에 강아지들과 마당에 앉아 있으면, 바람 사이로 봄이 오고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봄이 온다는 것은 마당에서 할 일이 많아진다는 이야기. 올봄에는 최소한의 것들만 하기도 마음먹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등골이 휜다 해도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꽃 핀 마당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풀 뽑느라 제초제 뿌리느라 허리가 휘면서도 내가 마당 있는 집을 고집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잔디가 새파래지고 앵두나무와 조팝나무에 꽃이 피고 꽃잔디가 바깥마당을 덮는 봄 풍경이, 나는 오늘도 몹시 기다려진다.


그렇게 벌써 맘에 봄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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