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수호신,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by 달의 깃털

우리 집에 반한 이유가 참으로 많은데,

그중 한 가지가 집 뒤쪽에 위치한 산에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다.


우리 집은 동네 맨 안쪽,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산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렇게 뒷집이 없고 바로 산이라는 것도 내가 이 집에 반한 이유 중에 하나다. 심심하면 강아지들 데리고 산에 오르기도 쉽고 산에는 나무가 많으니 그것 또한 좋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특히 집 뒤에 바로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우리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 아름드리나무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간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낙엽. 그리고 은행. 이것이 문제였던 것. 늦가을이 되고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잎사귀로 우리 집은 뒤덮이게 된다. 이 낙엽을 일일이 줍고 쓸고 태우고 하는 것이 별 것 아닌 듯해도 은근히 힘든 일이다. 안 주우면 안 되냐고. 그럼 마당은 온통 낙엽으로 뒤덮일 텐데. 물기를 머금어 축축해질 테고 마당은 엉망이 될 것이다. 늦가을이 되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내가 하는 일은 낙엽을 줍는 일. 그나마 은행나무잎은 한순간에 후드득 떨어져 버리는데, 느티나무잎은 조금씩 조금씩 아주 겨울이 다 되도록 느리적거리며 떨어지는 데 정말 짜증이 날 지경이다. 이젠 낙엽 좀 그만 쓸고(줍고) 싶다 할 때까지 줄기차게 떨어진다.


게다가 은행나무는 낙엽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 수많은 은행이 다 우리 집으로 떨어진다. 나는 이사 온 첫 해, 뒤뜰에서 '투투 둑, 투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그것은 바로 은행이 떨어지는 소리. 아름드리 은행나무이기 때문에 양이 만만치 않아 그걸 일일이 치우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느티나무엔 새둥지가 세 개나 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낙엽이 지붕에도 소복이 쌓인다. 당연히 치워줘야 한다. 치우지 않으면 배수구멍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배수구멍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붕에 올라가는 것이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데 있다. 일 단계, 사다리를 지붕에 걸쳐야 하므로 최대한 크기를 늘려야 한다. 온갖 잡일로 단련되어있어도 여자인 나한테는 일단 이것이 힘에 부친다. 사다리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이제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야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한테는 여기부터가 더 힘든 과정이다. 정말 한 걸음만 더 떼면 지붕 위에 손이 닿을 텐데 그 한걸음 떼는 것이 너무 무섭다. 사다리가 뒤로 넘어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년 포기하지 않고 나 혼자 저 일을 해냈다. 기특하지 아니한가 말이다.


20170405_184507.jpg 구슬땀 흘려 수확한 은행은 아직까지도 나의 밥상에 오른다.

하지만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말이면 낙엽을 모아 태우곤 하는데, 낙엽 타는 냄새가 너무 좋다. 냄새가 옷에 배어 집 안에서도 은은하게 낙엽 타는 냄새가 나는데 이 또한 나를 행복하게 한다. 또 나는 해마다 떨어지는 은행중 일부를 내 손으로 손질해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오랫동안 밥에 넣어 먹는다. 은행을 주워 발라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저것이 얼마나 손이 가는 일인지. 은행을 일일이 발라내고, 물에 깨끗이 씻고, 씻은 은행을 바짝 말려서, 망치로 일일이 껍질을 벗겨야 하는 일인 것이다. 지인들이 가끔 나를 보고 말한다. 그 귀찮은 걸 왜 하고 있냐고. 가끔 나도 생각한다. 시장에 가면 싸게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그냥 그 과정 자체가 좋다. 내 집 마당에서 은행을 줍고, 그 은행을 내 손으로 먹거리로 탈바꿈시켜 식탁에 올리는 과정이, 힘들긴 해도 재밌고 즐거운 것이다.


우리는 아름드리나무를 아름답게 바라본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냥 나무를 보는 것 만으로 좋으니까 말이다. 아름드리나무를 보면서 내가 저 낙엽을 다 주워야 되는데 하는 상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 집의 수호신 아름드리나무를 보며, '올해도 내가 또 저 낙엽을 다 치워야지' 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한다. 나무가 그냥 순수한 나무로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낙엽'에서 가을의 '낭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연상한다. 가끔 이런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강아지들과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다. 수면바지에 겨울용 고무 슬리퍼. 딱 시골 여자스러운 복장이다.

그래도 나는 우리 집의 수호신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좋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나는 그냥 마당 있는 시골집에 살 팔자인 거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마당 있는 집이 좋으니까 말이다. 은행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고 투덜대면서도 그걸 손질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주말이면 가끔씩 강아지들과 마당에 앉아 망중한을 즐긴다. 아파트에 살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시간들이다. 그때 그 순간이 참 행복하다. 고된 노동으로 몸은 힘들고 나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 때론 버겁긴 해도, 저 5분의 행복이 이 생활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마당이 있어 좋다. 나는 내 집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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