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처음 만난 세계

by 달의 깃털

두더지를 본 적이 있는가. 나도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언젠가 호기심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작고 나름(?) 귀여운 동물이다. 두더지는 나랑 별 상관없는 그냥 '사전적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동물인 줄 알았는데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두더지와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사 초기에 덜컥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된 딸이 안쓰러운 아버지가 집을 자주 방문하셨다. 오셔서 이것저것 손봐주시고 일도 해주시고 그러셨는데, 어느 날 말씀하신다. '집에 두더지가 있다. 약을 놓아야겠어.' 어랏, 무슨 소리, 두더지라니. 그런데 왜 꼭 두더지를 죽여야 하지. 아버지 왈. 그냥 방치하면 마당을 망친다고 했다. 나는 잠시 잠깐 '왜 두더지가 마당을 망친다는 걸까'라고 생각했으나, 곧이어 '뭐, 아버지가 알아서 하시겠지.' 하며 잊었다. 한 해가 지나고 안 그래도 다소 병약하시던 아버지는 더 이상 내 집에 올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해지셨다. 이제 우리 집을 관리하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어느 날의 일이다. 마당의 한 부분의 흙이 봉긋 솟아 있다. 어라, 한 두 군데가 아니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 번은 잔디마당이, 한 번은 텃밭이, 한 번은 화단의 흙이 봉긋 솟아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아하, 이게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구나. 이래서 마당을 망친다고 하는 거구나' 땅 속에 사는 두더지는 땅 속에 굴을 파는 게 곧 삶이다. 두더지가 깊게 굴을 파는 게 아닐 경우,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에 흙이 솟아오르게 되는 것. 애써 가꾼 텃밭이나 화단, 잔디밭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돌을 깔아놓은 자리 또한 두더지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흙이 솟아오르고 그러면 마당이 당연히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 아, 이것이 바로 두더지가 가져오는 폐해구나.


KakaoTalk_20170414_104740850.jpg 흙이 돌 위로 솟은 부분이 두더지가 지나간 흔적이다.

내가 애써 가꾼 정원을 망치는 두더지들 때문에 짜증이 난다. 잠시 갈등한다. 그럼 나도 아버지처럼 약을 놓아서 재들을 죽여야 하는 건가.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 집 마당은 내 땅이다. 그럼 내 땅에 사는 생명체도 내 것인가. 그건 아니지. 두더지 입장에서는? 두더지는 그냥 자기가 살던 방식대로 열심히 땅 파면서 사는 것뿐인 거다. 단지 내 정원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죽일 수는 없는 거다. 두더지도 하나의 생명체 아니던가. 함께 사는 개들은 소중하고, 다른 동물은 소중치 아니한가. 아, 어쩔 수 없다. 때론 짜증 나고, 때론 보수하는 일이 힘들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두더지도 우리 집에 사는 한 식구인 거다. 내 집에 들어온 벌레도 쉽게 죽이지 않는 것처럼(물론 나도 가끔 죽이기도 한다). 두더지도 소중한 거다. 그런 거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는다.


시골에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다. 두더지의 존재 자체를. 국립묘지 관리가 업무인 내 옛 직장동료는 내가 하는 두더지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다. 거기도 두더지 때문에 난리란다. 묘지를 망치기 때문이다.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자연에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닌데, 생태계에 있는 모든 동식물은 다 소중할 진데, 내가 가꾼 것을 망친다고 두더지를 죽여도 되는 걸까. 나 역시도 생명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마당에 난 풀을 제초제를 뿌려 죽이고, 내 집에 들어온 벌레 또한 수 틀리면(?), 죽인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생태계와 사이좋게 공존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여러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사전적으로만 알고 있던 두더지가, 이제는 나와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짜증 나지만, 시간이 지나고 또 연륜이 쌓여가면, 봉곳해진 나의 마당을 그저 한 번 쓱 밟아 누르며 평화롭게 지나가는 때도 오긴 오겠지. 그렇게 난 오늘도 마당 있는 집에서 두더지들과 함께 살아간다. 요놈의 두더지들, 제발 우리 집에만 있지 말고, 저기 뒷산으로 이사도 가고 좀 그러렴. 나도 좀 평화롭게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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