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를 본 적이 있는가. 나도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언젠가 호기심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작고 나름(?) 귀여운 동물이다. 두더지는 나랑 별 상관없는 그냥 '사전적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동물인 줄 알았는데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두더지와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사 초기에 덜컥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된 딸이 안쓰러운 아버지가 집을 자주 방문하셨다. 오셔서 이것저것 손봐주시고 일도 해주시고 그러셨는데, 어느 날 말씀하신다. '집에 두더지가 있다. 약을 놓아야겠어.' 어랏, 무슨 소리, 두더지라니. 그런데 왜 꼭 두더지를 죽여야 하지. 아버지 왈. 그냥 방치하면 마당을 망친다고 했다. 나는 잠시 잠깐 '왜 두더지가 마당을 망친다는 걸까'라고 생각했으나, 곧이어 '뭐, 아버지가 알아서 하시겠지.' 하며 잊었다. 한 해가 지나고 안 그래도 다소 병약하시던 아버지는 더 이상 내 집에 올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해지셨다. 이제 우리 집을 관리하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어느 날의 일이다. 마당의 한 부분의 흙이 봉긋 솟아 있다. 어라, 한 두 군데가 아니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 번은 잔디마당이, 한 번은 텃밭이, 한 번은 화단의 흙이 봉긋 솟아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아하, 이게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구나. 이래서 마당을 망친다고 하는 거구나' 땅 속에 사는 두더지는 땅 속에 굴을 파는 게 곧 삶이다. 두더지가 깊게 굴을 파는 게 아닐 경우,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에 흙이 솟아오르게 되는 것. 애써 가꾼 텃밭이나 화단, 잔디밭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돌을 깔아놓은 자리 또한 두더지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흙이 솟아오르고 그러면 마당이 당연히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 아, 이것이 바로 두더지가 가져오는 폐해구나.
내가 애써 가꾼 정원을 망치는 두더지들 때문에 짜증이 난다. 잠시 갈등한다. 그럼 나도 아버지처럼 약을 놓아서 재들을 죽여야 하는 건가.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 집 마당은 내 땅이다. 그럼 내 땅에 사는 생명체도 내 것인가. 그건 아니지. 두더지 입장에서는? 두더지는 그냥 자기가 살던 방식대로 열심히 땅 파면서 사는 것뿐인 거다. 단지 내 정원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죽일 수는 없는 거다. 두더지도 하나의 생명체 아니던가. 함께 사는 개들은 소중하고, 다른 동물은 소중치 아니한가. 아, 어쩔 수 없다. 때론 짜증 나고, 때론 보수하는 일이 힘들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두더지도 우리 집에 사는 한 식구인 거다. 내 집에 들어온 벌레도 쉽게 죽이지 않는 것처럼(물론 나도 가끔 죽이기도 한다). 두더지도 소중한 거다. 그런 거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는다.
시골에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다. 두더지의 존재 자체를. 국립묘지 관리가 업무인 내 옛 직장동료는 내가 하는 두더지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다. 거기도 두더지 때문에 난리란다. 묘지를 망치기 때문이다.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자연에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닌데, 생태계에 있는 모든 동식물은 다 소중할 진데, 내가 가꾼 것을 망친다고 두더지를 죽여도 되는 걸까. 나 역시도 생명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마당에 난 풀을 제초제를 뿌려 죽이고, 내 집에 들어온 벌레 또한 수 틀리면(?), 죽인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생태계와 사이좋게 공존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여러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사전적으로만 알고 있던 두더지가, 이제는 나와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짜증 나지만, 시간이 지나고 또 연륜이 쌓여가면, 봉곳해진 나의 마당을 그저 한 번 쓱 밟아 누르며 평화롭게 지나가는 때도 오긴 오겠지. 그렇게 난 오늘도 마당 있는 집에서 두더지들과 함께 살아간다. 요놈의 두더지들, 제발 우리 집에만 있지 말고, 저기 뒷산으로 이사도 가고 좀 그러렴. 나도 좀 평화롭게 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