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가득한 4월의 정원

by 달의 깃털

시인 엘리엇이 말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나는 왜 시인이 이런 말을 했는지 공감한다. 아마도 4월이 눈이 시리고 부시도록 아름다운 계절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 집 마당 역시 4월이 가장 아름답다. 온갖 꽃들이 만개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4월이 오면 나는 조금씩 마음이 설렌다. 꽃으로 가득한 나의 마당을 만나는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짧은 찰나의 순간, 곧 시들어 버리고 말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오랜 시간 눈 속에 맘 속에 담아 놓고 싶다. 시인의 말대로 4월은 역시 아름답도록 '잔인한 달'이다.


KakaoTalk_20170418_095850409.jpg 앵두나무 꽃과 개나리, 조팝나무 꽃. 우리 집 마당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삼십 대 이후 언젠가부터 꽃이나 나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눈에 담는 꽃이나 나무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이 꽃은 이름이 무얼까.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자세히 보면 모두가 다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졌다. 그 당시 한 몇 년 동안 식물도감 여러 권을 옆에 끼고 살았다. 산책하다가 꽃이나 나무를 만나면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도감에서 열심히 찾아 이름을 알아냈다. 사진을 보고 도감에서 식물을 찾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긴가민가 싶을 때도 많고, 인내심을 가지고 도감을 여러 권 뒤져야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끝내 도감에서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이 작업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특히 꽃 이름 같은 경우에는 그 이름이 붙은 배경 설명까지 알 수 있는데, 이름 붙인 배경이 재미있는 꽃명이 많다. 지금 기억나는 건 '며느리 밑 씻개'라는 꽃이다. 줄기에 따끔따끔한 잔털이 붙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저걸로 밑을 씻는다고 상상해 보시라. 우훗.


KakaoTalk_20170418_100138258.jpg 올해는 몇 해전부터 심고 싶었던 수선화를 심었다.

정말 수많은 꽃들과 나무의 이름을 외웠지만, 저것도 한때인지라, 지금은 많이 잊었다. 그래도 범인(?)들 보다는 제법 꽃과 나무에 대해 알고 있는 편이라 할 수 있겠지만. 꽃과 나무이름을 외우며 늘 꿈을 꿨다.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이 나무를 심어야지. 이 꽃을 가꿔야지 하면서. 마당 있는 내 집에 살게 된 지 4년 차, 꼭 상상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꽃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만들어졌다. 나의 꽃마당은 지금도 조금씩 진화 중이다. 아직도 채우지 못한 빈 화단이 남아 있고, 화단의 식물을 재배치하는 것이 또 나름 재미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무슨 꽃씨를 뿌려볼까. 어떻게 꾸며볼까 여전히 요리조리 궁리 중이다.


우리 집에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은 바로 '앵두꽃'이다. 앵두나무는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는데, 앵두꽃이 그리 예쁜지 이 집에 살고 나서 알았다. 앵두꽃이 피면 이제 날씨가 따뜻해질 거라는 이야기다. 그다음엔 개나리가 피고, 그다음엔 조팝꽃이 만개한다. 이때쯤이면 나무에 연두색 새잎이 조금씩 돋아나고 잔디도 푸릇푸릇해지기 시작한다. 앵두꽃이 시들 무렵 묘한 분홍빛의 꽃잔디와 꽃사과나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오월이 되면 철쭉꽃이 필 것이다. 유월이면 황금 조팝나무에 보라색 꽃이 핀다. 작년에 심었던 채송화와 설악초도 여름이면 다시 만개해 초가을까지 그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다. 가을꽃을 보려고 능소화를 심었는데 작년에는 꽃을 보지 못했다. 올해는 아름답게 늘어진 능소화를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칠 후에는 천일홍과 과꽃 씨앗을 뿌려보려 한다. 잘 자라서 예쁜 꽃을 보게 됐으면 좋겠다.


KakaoTalk_20170418_095716264.jpg 꽃사과나무에 꽃망울이 맺혔다. 친구가 선물한 우체통과 제법 어울린다.

수선화나 튤립을 꼭 심고 싶었는데, 올해 드디어 수선화를 새로 심었다. 내년에는 튤립을 사서 심어봐야지. 그뿐이랴,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틈새를 비집고 꽃을 피우는데, 꽃이 피기 전에는 잡초 취급을 받다가, 운 좋게 살아남아 꽃을 피우면 그 모습 또한 아름답다. 개망초꽃, 아기똥풀, 꽃마리, 개부랄꽃(?) - 이름이 좀 거시기 하지만 작고 파랗고 아주 예쁜 꽃이다 - 민들레, 냉이꽃, 삼색제비꽃 등도 우리 집 마당의 빈 틈새를 채운다. 이름 모를 잡초들과 함께.


KakaoTalk_20170418_095653551.jpg 밖에서 바라본 우리 집 마당, 우리 집은 이 동네에서 '예쁘게 가꾼 집'으로 나름 소문난 집이다.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화단을 가꾼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땅을 갈아줘야 하고, 싹이 잘 틔는지 관심을 가져줘야 하고, 물도 줘야 하고, 잡초에게 밀리지 않도록 잡초도 부지런히 뽑아줘야 한다. 특히나 우리 집은 강아지들이 있다. 두툼하고 무거운 행복이의 네발과 육중한 몸으로부터 새싹들을 지키기 위해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싸복이 남매의 발에 짓밟히면서도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우리 집 꽃들이 기특하다.


좋아하는 꽃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나의 로망이던 '구절초, 샤스타데이지, 자운영, 쑥부쟁이' 등등은 모두 다 발아에 실패했다. 대충 뿌려도 싹이 잘 나는 꽃씨도 많은데, 위의 것들은 발아가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려 한다. 덩굴장미가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것도 보고 싶고, 가을꽃도 더 심고 싶다. 올해도 꽃씨를 한 껏 주문했다. 꽃 욕심이 끝이 없다. 봄부터 가을까지, 사월부터 시월까지는 꽃으로 가득한 정원을 만들고 싶다.


꽃을 가꿀 수 있는 '마당'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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