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텃밭 농사꾼 5년차

by 달의 깃털

언젠가부터 내가 보는 식물의 이름이 궁금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텃밭 농사를 짓고 싶어 졌다. 산책을 나가면 꽃과 나무에 눈이 갔고, 골목골목을 탐험할 땐 남의 집 텃밭도 중요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마당 있는 내 집을 가진 지 4년 차, 텃밭농사는 전세 살 때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5년 차가 되어간다. 올해는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텃밭농사 '폐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장고 끝에 그냥 짓기로 했다. 대신 규모를 좀 줄여서. 몸이야 편하겠지만, 서운함이 더 클 것 같아서다. 아, 나는 타고난 텃밭 농사꾼인 거다.


밭을 곱게 갈고, 강아지똥을 삭혀 거름으로 주었다. 씨 뿌릴 준비를 마친 나의 텃밭

마당 있는 전셋집에 살게 된 첫 해, 안 그래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나는 텃밭농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어느 날 주인 내외가 와서 '시골에 살면 텃밭을 가꿔야지' 하며 땅을 갈아 주셨다(그 당시 집을 지으시느라 인부를 쓰고 계셨는데, 그분이 밭을 갈아주셨다).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돌을 고르고 고랑을 만들고 씨를 뿌렸다. 며칠 지나니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으라며 저 위에 공터를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어 주신다. 나는 사실 고구마까지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주인 내외에게 배운 대로 둔턱을 만들어 고구마 모종을 사다 심는다. 콩도 약을 묻혀(안 그러면 새가 먹는단다) 정성껏 심어 본다. 시간이 지나니 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신기하다. 그런데 풀이 너무 많이 앉는다. 풀반 상추반이다. 아, 풀 뽑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때서야 깨닫는다. 사람들이 왜 밭에다가 까만 비닐을 씌우는지.


나는 사실 '채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텃밭에서 내가 키워낸 작물은 모두 다 너무 맛있다. 처음 키워보는 상추가 밥상에 오르는 것이 왜 그리 신기하던지. 아침에 밭에서 따온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고, 아욱이나 깻잎으로 장아찌를 담그고, 토마토를 키워 주스를 만들어 먹고, 풋고추를 밥상에 올린다. 그뿐이랴. 가지를 볶아먹고 가지 전도 부쳐먹고 부추 겉절이도 무쳐먹고 앵두를 따서 앵두청을 만들어 먹는다. 내가 키운 것으로 내 밥상을 채우는 일이 이리 신나고 재미난 일인지 농사를 지어보고 알았다. 직장 다니면서 텃밭 가꾸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침저녁 깨알같이 시간을 쪼개어 텃밭을 살펴야 한다. 하지만 힘든 것 이상으로 보람이 있다. 내 밥상을 내가 채운다는 보람. 열매를 맺어가는 작물을 보는 즐거움.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은 후에 나의 텃밭

텃밭 농사꾼 5년 차, 나는 이제 서서히 '아마추어'티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거름은 사서 쓰지 않고 주로 싸복이 남매의 똥을 발효시켜 이용한다. 밭을 갈면서 거름을 뿌려주고 약 보름 정도 지난 후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밭 사이 고랑에 풀 뽑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나름대로 꾀를 내어 사진처럼 텃밭을 완성했다. 상추 같은 잎채소는 씨를 뿌리고, 고추나 가지 토마토는 모종을 사서 심는다. 모종을 심을 때는 반드시 검은 비닐을 덮어준다. 풀이 앉지 않도록. 부추는 한 번 씨를 뿌려놓으면 계속해서 자란다. 신기하고 흐뭇한 작물이다. 고추는 벌레가 잘 꼬이므로, 약을 치기 싫은 나는 풋고추일 때 따먹는다. 깻잎도 벌레가 잘 꼬이는데, 역시 약은 치지 않는다. 내가 먹을 건데 구멍이 좀 뚫려 있음 어떠한가. 상추류 채소나 토마토, 가지, 부추, 파는 벌레가 잘 꼬이지 않아, 초보 농사꾼에게는 제격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에게서 제법 '프로농사꾼'의 향기가 느껴진다.


시골사람들은 여름 걷이가 끝나면 가을배추와 무를 심고, 배추 걷이가 끝나면, 마늘과 양파를 심는다. 마늘과 양파는 겨울을 지나 늦봄에 수확한다. 이것이 텃밭농사의 정석이다. 앞으로의 나의 목표는 가을배추와 무까지 도전을 해 보는 것. 여름농사만으로도 벅찬 나는 아직 도전을 못 해봤다. 더 나이가 들면 내가 키운 배추와 무로 김치도 담가보고 싶다. 그게 내 꿈이고 목표다. 참 소박하지 않은가.


아욱싹이 제법 자랐다. 올여름에도 아욱장아찌를 담궈먹어야 겠다.

사실 김치도 사 먹는 것이, 야채도 사 먹는 것이 더 비용절감 일 수도 있다. 텃밭 농사에 들어가는 나의 육체노동까지 돈으로 환산한다면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무엇가를 키우는 보람과, 내 밥상을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먹거리로 채우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작년 여름에 엄마가 집에 오신 일이 있다. 나는 직접 키운 부추로 겉절이를, 아욱으로 전과 된장국을, 고추를 따서 밥상을 차려 내었다. 어머니는 연신 맛있다고 하셨고, 함께 먹는 나도 무척 행복했다. 나눠 먹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 나눠먹을 친구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뿐.


'슬로우 푸드'란 말이 있다. 음식을 먹는 것 이상으로, 음식이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나의 밥상으로 오르게 되는가가 중요 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아쉬운 풍토지만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진 않다. 자연에서 난 것들을 가지고 정성껏 요리를 준비하고 즐겁게 먹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앞으로는 음식이 상에 오르는 그 과정 자체를 천천히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꽃으로 가득한 4월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