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정원의 실체를 파헤쳐본다(2017.4.20)
집에 관심이 많은 나는, 어디를 가든 집을 유난히 살펴본다.
서울 살 때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남들 사는 모양새를 꼼꼼히 살펴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이기도 했다. 가끔 넓고 푸른 잔디정원을 가진 집을 만날 때가 있다. 예전엔 그런 집을 만나면 생각했다. '아, 참 이쁘다.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제는 그런 집을 만나면 생각한다. '아, 저 집주인은 참 고생이 많겠다.' 잔디정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혹독한 주인의 노동이 밑바탕임을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집을 보면 마당에 멋없이 콘크리트를 쳐놓은 집들이 제법 많다. 나는 예전에 그런 집들을 보며 생각하곤 했다. '왜 저렇게 멋없게 마당을 가꾸었지.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마당이 있는 집에 채 6개월도 살아보기 전에, 나는 왜 대부분 시골집들이 마당에 콘크리트를 쳤는지 백 퍼센트 이해하게 됐다. 그게 제일 쉬운 마당 관리방법이기 때문이다. 농사짓느라 바쁜 시골 사람들이 마당에 풀을 뽑고 잔디를 관리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보기엔 흉해도 제일 편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 집을 만났을 때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건 잔디가 깔려있다는 점이었다. 강아지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나의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시골 농가에는 잔디가 깔려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다. '시골 동네에서 잔디 깔린 집을 발견하다니, 내가 수고롭게 안 깔아도 되잖아, 이건 대박이군' 이런 정도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육 개월이 지나지 않아 처절하게 깨달았다. 잔디마당을 관리하는 것이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우선, 나는 잔디가 자라는지 몰랐다.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늘 그 크기인 줄 알았던 것. 잔디는 자란다. 그래서 깎아야 한다. 자라게 두면 되지 않느냐고? 그럼 수풀처럼 우거져 지저분해진다. 한여름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하룻밤 자고 나면 그새 자라 있다. 많이 자랄 땐 매주 깎아줘야 한다. 그래서 조용한 시골마을인 우리 동네의 유일한 소음은 바로 아침나절에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다. 이건 어느 시골 동네나 다 마찬가지. 집집마다 해뜨기 전 선선할 때 풀 깎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처음엔 잔디 가위를 이용했다. 예초기는 비쌌고 또 여자가 다루기엔 위험하기 때문이다. 가위로 잔디 깎다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뻔했다. 잔디 가위는 예초기가 닿기 힘든 부분에나 쓰라고 나온 것이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그다음에 구입한 것은 수동 예초기였다. 자동 예초기가 안된다면 수동이라면 내가 할 수 있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아, 그것은 극한의 노동이었다. 우리 집 잔디를 다 베려면 한 2시간쯤이 걸렸는데, 2시간 잔디를 깎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그렇게 두 해를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빠에게 SOS를 쳤다. 예초기를 가져왔고, 아빠에게 사용법을 익혔다. '여자라고 예초기 쓰지 말란 법이 어디있어. 까지거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후들후들 떨면서 처음으로 예초기를 돌리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다음날 양팔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힘들었지만 그런대로 할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마당에 돌과 장독 뚜껑이 깔린 부분이 문제였다. 딱딱한 것에 예초기 날이 부딪히는 것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예초기를 쓸 때마다 다치지 않으려고 너무 긴장하다 보니 온 몸이 경직되기 일쑤였다.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 정원을 나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과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마당의 구조를 조금 바꿔보자.
마당에 잔디정원을 절반 정도로 확 줄였다. 정원석과 장독 뚜껑이 깔린 부분에는 예초기를 쓸 일이 없도록 잔디를 뽑고 돌을 깔았다. 잔디를 뜯고 돌을 까느라 아주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물론 혼자 힘으로 한 것은 아니다. 때론 절친한 동생들을 일당으로 회유해 부려먹기도 했고, 그 당시 남자 친구를 활용(?) 하기도 했다. 저렇게 잔디마당을 반으로 줄어놓으니 예초기를 돌린대도 단시간에 작업이 끝날 수 있다. 예초기 날에 부딪칠 수 있는 부분은 방부목으로 만든 경계 울타리뿐이므로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기념으로 큰 맘먹고 부탄가스로 사용할 수 있는 예초기를 구입했다. 오일용 보다 힘이 떨어지긴 하지만, 많이 쓰지 않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가끔 혼자서 마당을 쳐다보면 맘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어디 하나 내 공(功)이 안 들어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남 보기엔 허접하다 해도, 내가 손수 힘들여 가꾼 마당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우스갯소리 하나. 이사 온 첫해, 다리가 불편하신 옆 옆집 할머니가 우리 집 마당까지 산책을 나오시곤 했다. 나를 보시며 늘 '아이고, 여자 혼자서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 하시던 할머니. 그 해 여름 내가 1톤 자갈을 4박 5일 동안 혼자 까는 걸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그래, 넌 혼자 살아도 되겠다.'
요리조리 구상하고, 구상한 대로 마당을 가꾸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는 일인지, 내가 이런 일을 좋아하는지, 나도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보고 알았다. 마당 있는 집에 살지 않았다면, 내가 가진 커다란 적성 한 가지를 모르고 죽을 뻔했다. 그냥 죽었으면 억울하지 않았겠나. 용기를 낸 스스로가 기특하다. 또한 예초기를 사용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여자가 예초기를 돌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옆 옆집 할머니 품평대로 혼자 살 자격이 충분하지 아니한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