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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네 육 남매 중성화 수술기

그 두 번째: 길냥이 샛별이 이야기

by 달의 깃털

태희네 육 남매 중성화 수술기: 두 번째-길냥이 샛별이 이야기

1월 6일이 되었다. 밥을 주지 않았다. 아침부터 모여 덫을 세팅했다.


밥 주는 시간을 아는 길냥이 들이 이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모여든다. 그래서 쉽게 덫에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첫 포획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첫 타자로 탄이, 혜교, 미유가 동시에 잡혔다. 탄이와 혜교는 수컷이다. 혜교는 엄마 태희를 닮아 미모가 출중해 태희보다 예쁘다는 의미로 '혜교'라 이름 붙였는데, 민망하게도 나중에 남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와중에 암컷인 줄 알았던 뉴페이스 미유가 알고 보니 수컷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시간이 경과한 후 나와보니 미니몽이 덫에 걸렸다. 어라, 그런데 다른 덫에 처음 보는 냥이가 들어가 있다.


KakaoTalk_20190114_100335042.jpg 엄마 태희를 닮아 한 미모 하는 혜교(남자라는 건 안 비밀)가 간만에 사진이 제대로 나왔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예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아이다. 얼핏 보면 미니몽과 비슷하다. 그 당시에도 뉴페이스인 줄 알았다가 '설마 미니몽이겠지'로 결론 내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하필 또 암컷이다. 암컷인 줄 알았던 미유가 수컷이었고(돈이 굳었고), 어차피 내 집에 드나들 아이이므로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 이후에 잡히는 냥이가 없다. 근처를 배회하고는 있는데 누구도 쉽게 덫에 들어가지 않는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플랜 B를 가동하기로 했다. 어차피 태희네 6남매는 모두 한 집에서 잔다. 밤에만 아니라 요즘은 날씨가 추워 낮에도 집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집에 있을 때 빠르게 접근해 생포하는 것이 플랜 B다. 부엌 창문에서 집에 있는지 없는지 감시가 가능해 세워본 계획인데 실제 시도해본 결과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결국 나중에는 끈을 잡아당기면 입구가 봉쇄되는 장비를 얼기설기로 만들어 보기도 했으나, 강이와 신비(육 남매 중 암컷)는 너무 경계가 심해 결국에는 아예 집에 들어가지도 않는 결과만 초래했다. 추운 겨울 날씨에 아이들만 고생시킨 꼴이 됐다. 다음날을 기약하기로 하고 플랜 B를 접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탄이, 미니몽, 혜교, 미유, 뉴페이스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예방접종을 마친 수컷 4마리는 일단 강이와 신비를 잡을 때까지 케이지에 가두어 두기로 했다. 뉴페이스를 맡기고 돌아온 후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참인데, 수술 자국이 있다면서, 혹시 예전에 내가 수술시켜준 애가 아니냐고 물으신다. 황당하게 그지없었다. 내 손으로 수술시켜준 아이를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귀가 커팅되어 있지도 않았다.(TNR수술이 아니라는 이야기)


결론은 하나, 집냥이 었던 아이라는 이야기다. 오후에 병원에 갔다. 의사샘 왈~ 언젠가 자신이 수술한 아이라는 거다.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수술방식을 볼 때 그렇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자궁도 이미 없다고 했다. 선생님도 나도 정말 어이가 없었다. '혹시 잃어버린 아이가 아닐까요' 하는 나의 물음에,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신고를 받은 적이 없단다. 이 병원에서 수술한 아이를 잃어버렸다면 병원에 연락이 왔을 거라면서. 믿기 힘들지만 누군가가 우리 동네까지 와서 고양이를 버리고 간 것이다.


KakaoTalk_20190114_100133393.jpg 좌가 미니몽, 우가 신비. 샛별이의 사진은 없다. 샛별이는 미니몽을 아주 많이 닮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손이 분노로 떨렸다. 사람들이 어째 그리 무책임하고 잔인할까. 함께 살던 동물을 버리는 이야기야 매체를 통해 수없이 보고 들은 이야기다.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겪고 보니 분노는 배가 되었다. 하염없이 이 아이가 불쌍했다. 이 아이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그리고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아이러니하게 다시 의지를 불태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이들 밥을 굶기는 것이 마음이 아프고, 케이지에 갇혀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사실 나는 이제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독하게 마음을 다시 먹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최선임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원하는 대로 될 거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KakaoTalk_20190111_110845822.jpg 혜교, 탄이가 코를 박고 밥을 먹고 있다. 미유, 미니몽, 알콩이의 모습도 보인다.

맘이 좋은 의사쌤이 '차마 수술비는 못 받겠다'며 마취 비용만 받는 친절을 보여주셨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뉴페이스 냥이에게는 '샛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며칠 전에 새벽 산책길에, 난생처음으로 샛별을 보았다. 달 옆에 반짝이던 샛별이 어찌나 예쁜지 나는 오랫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인간에게 잔인하게 버림받은 이 아이에게 최고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샛별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소중하고 또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다. 그렇게 이 아이는 '샛별이'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 집에 발을 붙이고, 오랜 시간 동안 나와 얼굴을 익히며 살아가길 바라본다. 샛별아~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가워~


- 3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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