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지막 이야기
다음날 11시에 출근을 하고, 오후에도 조퇴 후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야 아이들을 잡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월요일 오후와 저녁 시간에 알콩이, 예쁜이, 심이가 잡혔다. 모두 목줄을 풀어줄 수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자칫하다 손을 물리는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심이는 정말 사나웠다(과연 나의 꼴통 냥이, 뭉치의 새끼다웠다). 문제는 태희다. 누구보다 목줄이 가장 조이는 건 태희이기 때문이다. 오늘 태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두면 건강까지 크게 위협이 될 텐데. 암컷인 강이와 신비 또한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저래 다시 고민은 깊어져 갔다.
덫에 쉽게 들어가지 않아 고민하는 나에게 의사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계속해서 굶기면 결국 들어간다고. 며칠 밥 못 먹는다고 죽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 뭉치가 헤어볼이 걸려 밥을 먹지 못하다가 수술을 받고 죽었다. 실제로 고양이는, 2~3일만 밥을 못 먹어도 황달이 올 수 있다고 들었다. 뭉치의 죽음이 큰 충격이었던 나는 너무너무 불안했다. 일요일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있는데 괜찮을까. 이러다가 아이들을 뭉치처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강이와 신비를 잡기 위해 케이지에 가두어 놓은 다른 아이들은 괜찮을까. 내 집밥을 먹는 길냥이들이 이 추운 날 배를 곯고 있다는 것 역시 너무 안쓰러운 일이다. 그래도 버텨보자. 다른 방법이 없다. 나는 스스로를 계속 다독여야만 했다.
월요일 저녁 늦은 시간, 흘깃 내다보니 강이가 덫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덧문이 내려오질 않았다. 덫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 너무너무 안타까웠다. 확인해 보니 통조림을 많이 먹지는 못했다. 발견하길 다행이다. 배고픈 강이가 어쩌면 다시 덫에 접근할 수도 있다. 한 시간 후쯤 나가보니 나의 예상대로 강이가 덫에 들어가 있다. 이제 신비와 태희만 남았다. 12시까지 기다리다 잠을 청했다(평소에 9시에 자는 나에게는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누군가 덫에 걸려있기를 기도하며 새벽 4시에 나가보았지만 아무 변화가 없다. 절망적이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침 8시경 태희가 드디어 덫에 걸렸다. 가까이서 보니 목줄은 심각했다. 목을 꽉 조이고 있었던 것. 사투 끝에 태희 목줄을 풀어주었다. 이제 정말 신비를 잡는 일만 남았다. 점심때 일부러 집에 들렀다. 신비가 덫에 들어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역시 덫은 비어있다. 이제는 정말 포기해야 되나 보다 싶은 마음으로 직장으로 돌아가기 직전, 드디어 신비의 뒤꽁무니를 보았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눈치다. 왠지 예감이 좋다. 밖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다면, 덫에 들어갈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일하는 내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퇴근했을 때 덫에 신비가 걸려있게 해 주세요. 제발요~' 냉담 수십 년 차인 나는 얍삽하게도 이럴 때만 하느님을 찾는다. 하느님은 역시 호인이다. 이런 나의 기도를 제법 잘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가 보니, 신비가 덫에 들어가 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끝났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이 기뻤다. 원하는 대로 모두 다 되었다. 동시에 긴장도 확 풀렸다. 나는 사실 서서히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포기하고 훗날을 기약하고 싶기도 했다. 포기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 버틴 보람이 있었다. 그 길로 보일러실에 갇혀있던 아이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드디어 밥을 다시 세팅했다.
얘들아~ 어서 와 밥 먹어라. 그동안 배 많이 고팠지~
신비는 수술을 잘 마쳤다.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간 후, 우리 집 뒷마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하다. 한동안 아이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상, 덫에 걸려 병원에 갔다 오면 당분간은 얼굴 보기가 힘들다. 뭐, 대개는 다들 배가 고파, 채 며칠이 가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태희네 육 남매는 여전히 잘 지낸다. 이제 정말 한시름 놓았다. 길냥이는 평균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지만, 부디 우리 집 뒷마당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신비, 강이, 혜교, 탄이, 미니몽, 미유, 육 남매야~
내가 월세는 안 받을 테니, 어디 가지 말고 그냥 우리 집 뒷마당에서 평생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