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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네 육 남매 중성화 수술을
마치면서

by 달의 깃털

태희네 육 남매 중성화 수술을 마치면서

계획한 대로 강이와 신비의 중성화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남자아이들도 모두 예방접종을 했으므로, 적어도 전염병에 걸려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아들을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지 못한 게 맘에 걸리지만, 내 소임은 여기까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사실 강이와 신비도, 예쁜이나 태희처럼 의사쌤께 잘 이야기하면 '길냥이 TNR'을 통해 무료로 수술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태희네 육 남매는 우리 집 뒷마당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싸복이 남매나 뭉치, 하늘이처럼 내 새끼나 매한가지다. 내 새끼들 중성화 비용을 내가 대는 것이 맞지 않나 싶었다. 또 TNR로 수술하면 귀를 커팅하게 되는데(중성화 수술을 한 길냥이라는 표식이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적어도 태희네 육 남매만큼은 멀쩡한 귀를 가지고 평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2934_1.jpg 태희네 육 남매 꼬물이적 사진. 이 시절 몰래 숨어 부엌 창문으로 얘네들 훔쳐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어랏! 한넘이 빠졌네~

뒷마당에 처음으로 사료를 내어 놓았을 때, 일이 이렇게 까지 커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밥을 주기 시작한 지 2년도 채 안 된 것 같은데, 그 2년 사이에 정말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솔직하게 말해서, 늘 고민이 많고, 그만큼 후회도 많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게 됐을까. 이러다가 우리 집이 길냥이들로 가득 차게 되는 것 아닐까.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얘네들 수술만 안 시켜줬어도, 벌써 김치냉장고를 바꿨을 텐데.' 생각하며 때때로 손익계산을 한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어쩌면 나는 '좋은 사람 코스프레' 라도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2859_1.jpg 한 넘은 여기 있었고만 ㅎㅎ

강이와 신비, 그리고 새로 나타난 샛별이까지 중성화 수술을 시켜준 건 전적으로 좋은 마음만은 아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뒷마당에 새끼를 낳을 것이 뻔하다. 그러면 그 새끼들도 결국 내 차지다. 암컷들을 부지런히 수술시켜 주지 않으면, 우리 집 뒷마당은 길냥이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지금도 아이들이 먹는 사료양이 결코 적지 않다. 앞으로도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일은 없어 보인다. 시작이 어찌 되었든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할 수도 없다. 그만두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고 스스로 시작한 일이니 힘들어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뒷수습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2964.jpg 엄마냥 태희와 무지개다리를 건넌 건이까지 육 남매의 완전체 모습

살아있는 성녀라 불리는 '마더 테레사 수녀'가 그 먼 곳 인도까지 봉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 멀리까지 올 필요 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세요~'라고. 오랜 시간 동안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 언젠가 내가 다른 이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게 된다면, 그 대상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내 눈에 띈 것이 우리 동네 길냥이들이었다. 길냥이들을 돌보며 소중한 인연, 우리 뭉치와 하늘이를 만났고, 많은 일들을 거치며 여기까지 이르렀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다. 작고 연약한 존재에게 내가 가진 것을 아주 조금 내어주는 일, 그게 아마도 마당 있는 집에 사는 내 소명이 아닌가 싶다. 시계를 돌려 길냥이 밥을 처음 주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3249.jpg 탄이, 건이와 혜교. 꼬물이 시절의 모습이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올해는 어떤 새로운 냥이를 만나게 될까. 한쪽 가슴에 부담감을, 남은 한쪽엔 설렘을 가져본다. 나는 또 그렇게 새로운 묘연(猫緣)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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