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이는 멀고도 긴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우리 집 뭉치에게는 길냥이 시절에 낳은 세 마리 새끼가 있다. 심이, 쿵이, 몽이.
그중 여아인 심이와 쿵이는 길에서 태어난 아이답게 나에 대한 경계가 심했으나, 남아인 몽이는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낯을 가리지 않았다. 첫 만남에 내 앞에서 통조림을 바로 받아먹었고, 다음번에 만났을 땐 단번에 머리를 허락했다. 이런 몽이가 나는 너무나도 신기했고 예뻤다. 몽이는 이후 부지런히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잠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잤지만 우리 집 뒤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 집 밥을 먹는 길냥이가 한둘이 아니다. 하루에 몇 번씩 얼굴을 본대도, 손을 타지 않으면 아무래도 정들기가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몽이는 참 특별했다. 볼 때마다 업어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한때 진지하게 몽이를 집안에 들이는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우리 집 작은방에 가둬 놓았을 때, 한 시간 내내 구슬프게 울어대는 몽이를 보며 깨끗하게 포기했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 적응한 아이를 집 안에 들이는 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나는 몽이가 참 애틋했다. 몽이는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에 부지런히 발도장을 찍었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을 아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밥 주러 갈 때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종종 마주쳤다. 담 밖에서도 내가 부르면 냉큼 달려왔고, 나를 보면 늘 반갑다고 배를 뒤집으며 애교를 부렸다. 개냥이도 이런 개냥이가 없었다. 마당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는 휴일이면 몇 번이고 내 곁에 나타나곤 했다. 마당일에 지친 나를 위로라도 하는 듯이. 몽이 덕에 고된 일이 고된 줄 몰랐다.
몽이는 언젠가부터는 비슷한 또래의 알콩이와 단짝이 되어 함께 다녔다. 알콩이는 어릴 때 엄마와 떨어진 후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냥이다.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고 겁이 많아 언제나 숨어 다녔다. 나는 이런 알콩이가 늘 안쓰러웠다. 외로운 알콩이가 몽이를 쫓아다니는 듯이 보였다. 성격 좋은 몽이가 알콩이를 흔쾌히 받아준 것만 같았다. 둘은 많이, 자주 함께였다. 아침에 밥 주러 나가면 뒤뜰의 냥이 천국에서 둘이 함께 놀고 있을 때도 많았다. 몽이가 보이면 어딘가에 알콩이가, 알콩이가 보이면 늘 몽이가 있었다. 둘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지켜보는 나의 기쁨은 두배가 되었다. 더 이상 알콩이는 외롭지 않아 보였다. 내 앞에서도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알몽 커플'이라고 불렀다.
이랬던 몽이가 안 보인 지 2달이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1월 27일이다. 정확히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5박 6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였기 때문이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몽이가 너무 반가워 마당에서 한참을 노닥거렸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을 줄이야. 이후 몽이가 보이지 않아 불안했지만, 며칠쯤은 안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2월 초 어느 날엔가 몽이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고, 나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몽이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온 그 날,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울면서 몽이를 찾아다녔다. 어디에도 몽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몽이와의 이별은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왔다.
처음엔 늘 함께였던 알콩이도 보이질 않았다.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왜 갑자기 두 마리가 동시에 사라진 것일까. 탈이 나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한들, 두 마리가 동시에 죽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가 될까. 누가 쥐약이라도 놓은 것일까. 사고라도 당한 것이 아닐까. 죽음을 목격한 것도 아니어서 이들의 죽음은 내게 현실이 될 수가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그렇게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시간이 흐른 후, 알콩이를 다시 만났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알콩이를 다시 만나 너무 기뻤지만, 몽이의 죽음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몽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이다. 다시 만난 알콩이는 완전히 다른 냥이가 되어있다. 나를 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간다. 멀찍이서 내 그림자만 보여도 숨는다. 매일 아침 나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알콩이다. 혹시 알몽 커플에게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그저 짐작에 짐작을 거듭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단짝 친구 몽이를 잃은 알콩이의 뒷모습이 너무도 쓸쓸하다. 겁 많고 소심한 알콩이는 이제 어찌 살아가고 있을까.
매일 보던 길냥이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그게 곧 우리의 이별이라고 늘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몽이와의 이별이 이렇게 빨리, 또 갑작스러운 방식으로 찾아오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몽이만큼은 오래오래 나와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하루 종일 마당에서 일을 하는 휴일이면 마음이 쓸쓸하고 헛헛하다. 간간히 나타나 나의 고단함을 날려주던 몽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것도, 이 글을 쓰고 나면 몽이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몽이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다. 몽이는 그저 어딘가 멀고 먼 곳으로 아주 긴 여행길을 떠난 것이 아닐까. 어느 날 불쑥 나를 다시 찾아와 배를 뒤집으며 애교를 부릴 것만 같다. 하지만 몽이를 놓아줄 때가 된 듯싶다. 나는 이제 몽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마음속에 영원히 묻으려 한다.
지금도 몽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뒷마당에서 만난 알콩이와 몽이가 내 옆에 자리 잡고 누워 잠을 청하던 어느 가을날의 오후. 나는 이 순간이 너무너무 좋아서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사랑하는 몽이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교감은 지구별 어딘가에 에너지가 되어 남아 있으리라. 무지개다리 저 너머 고양이 별에서 몽이는 지금의 내 마음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작년 가을 뭉치를 시작으로 해서 자두, 살구, 앵두, 건이, 늘보, 쿵이, 몽이까지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 곧 삶이라지만,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반복되는 이별은 겪을 때마다 여전히 아프다. 앞으로도 수많은 이별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매번 무너지겠지만, 나는 또다시 용기 내어 한 걸음 전진한다. 그렇게 길냥이들을 마음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