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집 길냥이들이 추운 겨울을
지내는 방법

by 달의 깃털

우리 집 길냥이들이 추운 겨울을 지내는 방법

길냥이들에게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날이 추워 물을 구하기도 힘들고, 음식물 쓰레기도 변변치 않을 것이다. 길고 추운 겨울밤은 또 얼마나 혹독한가. 그나마 우리 동네 같은 시골마을은 칼바람을 피할 공간이 많겠지만, 도시는 더욱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 집 뒤뜰의 길냥이들에게도 겨울이 잔혹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어준 스티로폼 집이 있긴 하지만, 작디작은 냥이들이 추위를 피하기에는 너무 보잘것없다.


KakaoTalk_20190222_092309743.jpg 옹기종기 모여 아침식사 중인 우리 집 길냥이들

우리 집 길냥이들은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 '숙(宿)과 식(食)'을 모두 우리 집에서 해결하는 아이들과 두 번째, 식(食)만 해결하는 아이들이다. 전자로는 태희네 육 남매와 예쁜이가 있다. 태희네 육 남매는 뒤뜰 대숲에서 태어났기에 여기가 자기들 집인 셈이다. 예쁜이는 애초에는 후자였는데, 옆 할머니네 창고에 새끼를 낳았고, 새끼들을 모두 잃은 후에 우리 집에 정착했다. 우리 집에서 밥만 먹는 아이들은 뭐, 제법 많다. 먹는 사료양을 보면 그렇다. 몇 마리인지는 나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KakaoTalk_20190213_093114635.jpg 예쁜이, 미니몽, 신비. 요즘은 날이 추워 낮에도 집안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 숙식 냥인 태희네 육 남매가 겨울을 나는 방법은 '사랑'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고? 태희네 오 남매에 은근슬쩍 끼어든 미유까지, 육 남매는 모두 한 집에서 잔다. 스티로폼 박스로 만든 집이 뒷마당에 한 두 채가 아닌데, 그 좁디좁은 집에 여섯 마리가 함께 자는 것이다. 보일러실이 제법 따뜻하므로, 간절히 거기서 자길 바랬는데 유독 저 집만 좋아한다. 걱정이 많았다. 스티로폼 집이 얼마나 따뜻하겠는가. 어차피 입구가 뻥 뚫려있어 바람을 막아주기도 힘들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좁은 집에 여섯 마리가 몸을 포개어 누워있으니 그 온기가 얼마나 대단할까. 그 따뜻한 온기와 사랑으로 태희네 육 남매는 차가운 겨울밤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KakaoTalk_20190212_170952957.jpg 의도한 건 아닌데, 부엌 창문을 열면 정확히 보이는 위치에 육 남매의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올 겨울 들어 또 한 명의 군식구(?)가 태희네 집을 침입했다. 늘 다른 스티로폼 집에서 혼자 자던 예쁜이가 어느 순간부터 육 남매 집 앞을 어슬렁 거리더니, 함께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이다. 태희네 육 남매에 예쁜이까지. 저 작은 집에 자그마치 일곱 마리 고양이가 잔다. 저기에 일곱 마리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새벽에 창문을 열어보면 입구 쪽에 있는 냥이는 집 밖으로 튕겨 나오기 일보직전일 지경인데, 좁은 집에 몸을 욱여넣고 자는 모습이 우습기도 짠하기도 하다.


KakaoTalk_20190222_092311758.jpg 예쁜이와 미유.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도, 가장 바깥쪽에서 자는 것도 예쁜이다.

태희와 예쁜이는 작년 봄에 나란히 새끼를 낳았다. 태희는 뒤뜰 대숲에, 예쁜이는 옆집 창고에. 태희네 식구와 예쁜이네 식구는 뒷마당에서 나름으로 자기네들끼리 구역을 나누어 평화롭게 공존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자 태희는 집을 떠났고(밥은 여전히 먹으러 온다), 예쁜이는 새끼를 모두 잃었다. 엄마 잃은 태희네 육 남매와 새끼 잃은 예쁜이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다가 잠자리까지 합친 셈이다. 태희네 오 남매가 엄마 잃은 낯선 아기냥 '미유'를 자연스럽게 받아준 것도 신기하고, 육 남매가 '예쁜이'에게 같은 잠자리를 허락한 것도 신기하다. 겨울밤 매서운 추위를 버텨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할지라도, 내 눈에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예뻐 보인다.


KakaoTalk_20190212_170558967.jpg 태희네 육 남매 중 혜교와 예쁜이. 부디 일곱 냥이가 사이좋게 우리 집 뒷마당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부엌 창문을 열고 아이들을 확인하는 일이다. 대개는 맨 바깥쪽에서 자는 예쁜이의 모습만 보인다. 보이진 않아도 안쪽에는 태희네 6남매가 자고 있다. 가장 먼저 기상하는 건 대체로 예쁜이고, 늘 바깥쪽에서 자는 것도 예쁜이다. 엄청 따뜻할 것으로 예상되는 맨 안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주로 암컷인 신비와 강이, 그리고 좀 더 어린 '미유'다. 참 신비하다. 좀 더 어리고 약한 아이들은 맨 안쪽에, 수컷들과 어른인 예쁜이는 추운 바깥쪽에 있다. 누가 길냥이들을 하찮은 미물이라고 하는가. 외로운 미유와 예쁜이를 기꺼이 받아주는 오 남매에게서, 추운 바깥쪽을 자처하는 예쁜이에게서, 서로의 체온을 통해 혹독한 겨울을 함께 이겨내는 모습에서 나는 사람에게서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품어주는 우리 집 길냥이들의 모습이 참 예쁘다.

추운 겨울이지만, 우리 집 숙식냥들을 매일 보는 것만으로도 늘 마음은 따뜻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길냥이 늘보와 쿵이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