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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와의 인연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by 달의 깃털

뭉치와의 인연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뭉치도, 뭉치의 새끼인 몽이와 쿵이도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이제 뭉치의 세 마리 새끼 중 살아남은 건 심이뿐이다. 심이는 쿵이나 몽이와 달리 얼굴도 몇 번 본 적이 없다. 우리 집 밥을 먹는 건 같은데, 길냥이답게 내 그림자만 보여도 내빼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준 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랬던 심이가 믿을 수 없게도 어느 날 불쑥 우리 집 뒤뜰로 이사를 왔다. 정확하게 몽이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부터다.


KakaoTalk_20190212_170602392.jpg 30센티 코 앞에서도 도망을 가지 않다니 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아침에 길냥이들 밥 주러 보일러실에 갔는데, 냥이 한 마리가 보일러실에서 튀어나온다. 처음엔 심이인 줄 못 알아봤다. 워낙에 가까이서 자세히 얼굴 본 적이 없던 탓이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줄 때조차 하도 사납게 굴어 제대로 얼굴을 못 봤을 정도니까. 심이는 TNR로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었기 때문에 한쪽 귀가 살짝 커팅되어 있다. 귀가 커팅되어 있지 않았다면 나는 심이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어렸을 적 심이와 지금의 심이를 연결시키기가 어려웠지만, 분명 심이가 맞았다.


KakaoTalk_20190212_170558497.jpg 나를 따라오다가 내가 멈춰 서니, 흠칫 놀라 잠깐 멈춰서 있는 중이에요. 가까이 가면 하악거리고, 멀어지면 은근슬쩍 따라와요.

날이 너무 추워 우연히 보일러실에 찾아들어 왔나 싶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침마다 보일러실에서 마주친다. 신기한 건 나를 보고 꽁지를 내빼던 심이가 더 이상 아니란 사실이다. 내 손을 타는 건 아니지만 2~3미터 거리에서는 도망을 가지 않는다. 경계가 심했던 길냥이와 갑자기 친해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님을 생각할 때 묘한 일이다. 어느 날 툭 하고 나타난 데다가 이제는 예전보다 낯을 가리지 않는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심지어는 한 술 더 떠 은근슬쩍 나를 따라다니기까지 한다. 나를 따라 앞마당까지 진출한 적도 있다. 이게 무슨 조화 속일까.


KakaoTalk_20190212_170601355.jpg 저를 따라 앞마당까지 따라 나왔어요. 그래 놓고 쳐다보니 딴짓 중입니다. ㅎㅎ

저게 1월의 일이다. 이제 심이는 완전히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겼음이 분명해졌다. 추운 날은 보일러실에서 자고, 조금 따뜻한 날엔 스티로폼 집에서 잔다. 내가 주는 통조림도 곧잘 먹고, 한낮에도 우리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심이는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우리 집 숙식 길냥이로 터를 잡은 것이다.


뭉치도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뭉치의 아이들(쿵이, 몽이)도 엄마를 따라갔다. 이제 남은 건 심이와, 쿵이의 새끼인 우리 하늘이 뿐이다. 공교롭게도 심이가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긴 때는, 몽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이다. 심이는 왜 갑자기 우리 집으로 터를 옮겼을까? 길냥이가 쉽게 거처를 옮기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신비한 일이다. 세상을 떠난 몽이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것은 아닐까. 혹 뭉치가 몽이를 잃고 슬퍼하는 나를 걱정해서 심이를 우리 집으로 보낸 건 아닐까. 뭉치와 삼 남매 그리고 뭉치의 손자인 하늘이와 나의 특별한 인연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 사이의 이 인연이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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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좌) 하늘이(우) 얘들은 서로 이모조카 사이인데 둘이 은근슬쩍 닮았죠^^



심이는 보면 볼수록 우리 하늘이를 많이 닮았다. 둘이 이모와 조카사이므로, 하늘이가 심이를 닮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늘이를 잘 먹여 통통하게 살을 찌우면, 혹은 뻥튀기 기계에 넣고 돌린다면(?) 심이가 될 것만 같다. 길냥이들은 제 에미조차 닮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생각하면 그 또한 신비한 일이다. 부디 심이만은 쿵이나 몽이보다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언제까지나 나와 얼굴을 마주치며, 오랜 시간 특별한 인연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몽이가 내 곁을 떠났고, 심이가 내 곁으로 왔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고, 나와 뭉치와의 인연은 이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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