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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pr 22. 2019

길냥이를 싫어하는 이웃에
대처하는 자세

길냥이를 싫어하는 이웃에 대처하는 자세

언제부터 내가 길냥이들 밥을 주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한 마리 두 마리 돌보는 길냥이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길냥이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건 이웃집 할머니였다. 할머니네 밭이 우리 집 뒤뜰과 면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길냥이들이 할머니네 밭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졌다. 안 그래도 평소에 편하고 좋은 이웃사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더욱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그저 할머니만 나타나면 죄라도 지은 사람인 양 열심히 피해 다녔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일뿐이었다.



예쁜이와 태희네 육 남매 중 혜교, 미니몽, 신비. 우리 집 간판(?) 숙식 길냥이 식구들.

하지만 마당에 나와 있다 보면 안 마주칠 도리가 없다. 언젠가부터 종종 마주칠 때마다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신다. 처음엔 그래도 우호적인 편이었다. '나도 고양이를 좋아한다. 불쌍한 동물 밥 주는 건 좋은 일 아니겠냐.' 웬일인가 싶었지만 한시름 놓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지나고 고양이가 많아지자 슬금슬금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고양이가 너무 많아졌느니, 밭에다 자꾸 똥을 싸서 미치겠느니, 땅을 파헤쳐서 농사를 망치느니 하면서 말이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때때로 적당히 들어주고, 적당히 무시하며 그냥 버티는 수밖에.


뒤뜰에 있던 텃밭은 우리 집 길냥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열심히 그물로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하신다. 심장이 내려앉는다. 더 이상 고양이가 밭에 들어오는 꼴을 못 보겠다는 제스처인 것이다. 나는 불안해진다. 그런다고 고양이가 밭에 못 들어가진 않을 텐데. 고양이는 유연한 데다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아주 귀신같이 드나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자 아닌 게 아니라 저렇게 울타리를 치는데도 어느 구멍으로 들어오는지 모르겠다며, 계속 볼멘소리를 하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 왈~ 저기 예전 이장님네 집에 고양이가 너무 많아 시청에다 신고를 했는데, 시청에서 나와서 고양이를 싹 잡아갔단다. 


우리 집 길냥이 중 가장 어린 미유. 제법 컸어요. 이젠 은근슬쩍 저를 잘 따라다녀요~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맨 처음 든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우리 몽이도 거기에 휩쓸려 잡혀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몽이가 안 보였을 때 왜 진작에 보호소를 알아볼 생각은 못했을까. 몽이는 안락사를 당한 걸까. 우리 몽이 가여워서 어쩌지. 할머니가 진짜 신고를 하는 건 아닐까. 사정이라도 해야 하나. 나는 우리 길냥이들을 지켜야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을 잃고 싶지 않다. 그날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 집 숙식 냥이들을 할머니 밭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뒤뜰에 야구연습장처럼 초대형 그물이라도 둘러야 할까. 돈이 얼마나 들까. 아니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 할머니한테 용돈이라도 드려볼까. 몇 날 며칠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상품권을 사들고 할머니를 찾아갔다.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판다고. 가만히 손 놓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보기보다 만드는데 시간이 엄청 많이 들어감 ㅠㅠ)

'길냥이들 때문에 폐를 끼치니 너무 죄송하다. 죄송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나도 이리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불쌍한 아이들을 이제와 굶길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사정을 조금만 봐주시라. 제발 상품권을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맘이 편하다.'며 구구절절 읍소와 사정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도 조금은 이해를 해주시며, 상품권은 절대 이웃 간에 받을 수 없다며 거절을 하신다. 속상해서 하소연하는 거니, 이해해 달라는 말을 덧붙이시며. 시청에서 잡아가면 어디 좋은데로 입양 가는 줄 알고 계신 할머니께, 일정 시일이 지나면 안락사시킨다고 말씀을 드렸다. 중성화 수술을 계속 시켜주고 있으니,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도 했다. 그날 이후 할머니와 나는 우리 집 숙식 냥이들이 밭에 못 들어가기 위해 서로 노력 중이다.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계속해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나가고 있다. 


기어오르기 좋은 나무 울타리에 일일이 강력본드로 붙여 못을 세웠다.

뒤뜰에 모래를 좀 쌓아놓으면 냥이들이 할머니 밭에 똥을 안 싸지 않겠나 하는 제안에 당장 모래를 사다 날랐다. 우리 집 나무 담장을 타고 오른다는 말에 담장에 못을 전부 둘러쳤다. 뿐만 아니라 울타리가 없는 곳엔 틈틈이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고양이들이 넘어갈 수 없게 하고 있는 중이다. 안 그래도 마당일이 많아 허리가 휘는 나는, 할머니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일거리가 쭉쭉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좀 안 넘어가려나 싶으면, 할머니가 또 넘어왔다면 한 마디 하시고. 그러면 나도 뭔가 성의를 보이고, 그래도 넘어가고, 이런 식의 무한반복이다. 길냥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기 위해,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고생, 나는 나대로 참 고생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다. 


초대형 고양이 모래 화장실. 다행히도 곧잘 여기서 응가를 하는 듯하다.

냥이들이 밭농사를 해쳐야 뭐 얼마나 해칠까 싶은 마음에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면 안 될까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내 맘 같기를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할머니 가치관에서는 어쩌면 동물보다 사람이 우선인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시골에서 길냥이 돌보기도 이리 마음이 편치 않은데, 팍팍한 도시에서는 어떨까 싶다. 그래도 할머니는 해코지는 하지 않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 마음이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건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버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게 삶인 걸,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다. 


대나무 울타리에 비닐도 둘러야 하고(이래야 고양이가 못 오른단다 ㅠㅠ), 여기저기 빈 구멍이 없는지 더 손을 봐야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저 우리 집 밥을 먹는 모든 길냥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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