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꾸러기 길냥이, 노랑이 이야기
길냥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가끔 싸움을 한다.
아마도 길냥이들은 영역이 곧 생존권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싸우는 듯하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본 우리 집 길냥이들은 대체적으로 평화롭다. 다른 냥이들을 위해 기꺼이 먹을 것을 양보하는 모습도 보았고, 우리 집에서 태어난 태희네 육 남매는 다른 냥이들에게 같은 잠자리를 기꺼이 내어주기도 한다. 제법 많은 길냥이들이 우리 집 밥을 먹고 있는데, 서로 크게 싸우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우리 집 뒤뜰은 진정한 냥이 천국인 셈이다. 아니, 셈이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우리 집에도 언젠가부터 질서를 해치는 길냥이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노랑이'. 노랑이의 존재를 알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언젠가부터 가끔씩 고양이 곡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저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발정 난 소리는 아닌 게 분명했다. 몇 번이고 반복되니 사태를 파악하게 됐다. 이것은 두 마리의 길냥이가 서로 싸우는 소리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주먹을 날리기 직전의 예비단계라고나 할까. 아니면 주먹질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 서로 기싸움을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집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싸워도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뒷마당에서 싸울 적에는 그 소리가 심히 귓가를 파고든다.
곡소리가(?) 들려 나가 보면 대개 늘보와 노랑이다. 이렇게 노랑이의 존재를 알게 됐다. '노랑이'는 다소 성의 없이 급조해 지어진 이름인 셈이다. 늘보가 성품이 유순한 것을 생각하면 싸움을 거는 쪽은 노랑이 임이 분명해 보였다. 노랑이가 늘보 하고만 싸우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수컷 냥이들을 모두 적으로 취급한다. 언젠가 한 번은 나와 함께 있는 몽이를(수컷임) 격렬하게 공격해서 나를 기함하게 한 적도 있다. 뿐 아니라, 우리 집 밥을 먹는 반점이, 그레이하고도 매번 싸운다. 역시 둘 다 수컷이다.
엊그제도 곡소리가 나서 확인해보니, 밥그릇 앞에서 금성이(역시 수컷)를 노려보고 있었다. 늘보, 몽이, 반점이, 그레이, 금성이 모두 다른 냥이들과 싸우는 걸 본 적은 없으니, 노랑이가 타고난 싸움꾼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암컷들과, 태희네 육 남매 중 수컷들에게는 싸움을 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여성과 어린이는 보호하는 건가. 노랑이는 나름 신사도(?)를 갖춘 고양이인 건가. 노랑이 너란 고양이, 정말이지 속을 알 수가 없구나.
늘보가 살아있을 적에는 특히 늘보와 자주 다투었다. 때때로 오밤중에 둘이 함께 곡소리를 내, 나와 싸복이 남매의 단잠을 깨우기도 했다. 싸울 때 내는 소리는 너무도 요상해서(?) 싸복이 남매를 흥분시키고, 내 귓속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저 싸움은 창문을 열고 소리 지르는 것으로는 도통 말릴 수가 없어서, 비몽사몽 잠에 취한 채로 입으로는 욕을 주절거리며 뒤뜰로 나가 싸움을 말리는 수밖에 없다. 뜯어말린대 봤자, 가서 내 존재를 각인시키며, '이 눔의 쉐이들아~ 그만 쫌 해~ 잠 좀 자자고~' 하며 쫓아내는 것이 다지만.
늘보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완전히 노랑이의 시대가 도래했다. 가끔 주말 낮에 지켜보면, 수컷 고양이가 어디선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경계를 하며 곡소리를 낸다. 급식대 앞에 턱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누가 밥을 채가나 지키고 있는 것도 같다. 저렇게 기세 등등한 노랑이도 나랑 마주치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하고, 기가 죽어서 슬금슬금 피하는데, 참으로 그 모양새가 우습다. 내가 볼 때마다 '너 이 눔의 쉐끼~ 사료는 내 돈으로 산 거거든~' 하며 꼭 유치하게 한 소리를 하는데 노랑이가 내 말을 알아듣는 것만 같다. 늘 저렇게 불쌍한 표정이니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도 없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이젠 정도 제법 들었다. 단지, 배고파서 우리 집을 찾았다가 쫓겨가는 다른 냥이들이 안쓰러울 뿐.
욕심꾸러기 노랑아~ 나눠먹는 밥이 더 맛있단다~ 다른 길냥이들에게 조금만 너그러워지면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