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제2차 가출사건
작년 초겨울에 하늘이가 가출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또다시 하늘이가 가출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업어왔을 때 쥐콩만했던 하늘이는 이제 1년 차 냥이가 다 되어간다. 키도 컸고 몸무게도 늘었고, 그와 함께 호기심도 늘었다. 아기 냥이일 땐 창문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엔가부터 창문 밖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실외 배변을 하는 싸복이 남매 때문에 종종 현관문이나 창문을 여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하늘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이러다 또 뛰쳐나가겠구나 싶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두어 번은 실제로 데크까지 나가기도 했다. 물론 재빨리 다시 잡아 들여오는 것으로 빠르게 사태가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사실 하늘이의 2차 가출사건은 나의 탓이 크다. 외출 냥이 뭉치와 함께한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는, 마당에서 노니는 냥이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마당에서 유유자적하는 뭉치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행복했다. 마당에서 싸복이 남매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뻤던가. 하늘이가 좀 더 커서 지금보다 겁이 없어지면, 마당에 나와 싸복이남매와 함께 어울렸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당에 몇 번 내보내 보고, 적응하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뭉치는 밖에 나갔다가도 어김없이 집을 찾아왔으니, 우리 하늘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저런 기대는 실현이 불가능한 몹시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늘이는 뼛속부터 우리 뭉치와는 다른 '길냥이 출신(?) 오리지널 집냥이' 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때는 아직 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삼월 어느 날 휴일, 어느 때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 산책 준비 중이었다. 그때 마침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는 싸복이 남매 때문에 창문을 열었는데 잠시 방심한 틈을 타 하늘이가 도주했다. 당연히 얼른 주워(?) 오기 위해 하늘이 뒤를 따랐는데, 아뿔싸. 어느새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빽빽한 대나무 숲으로 도주했다. 사위가 아직 어두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일단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책을 다녀오고, 아침해가 뜬 후 다시 하늘이를 잡으러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슬슬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스치자, 나는 미친년처럼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운다고 해결이 되겠나,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이 근 방에서 나고 자랐으니 결코 멀리 가진 않았을 것이다. 겁이 오지게 많으니(집에서도 틈만 나면 구석에 숨는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차든 그림자만 보이면 숨었을 테니 결코 험한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번 1차 가출사건 때에도 결국은 맨 처음 구조했던 장작더미에서 찾지 않았던가. 그래, 시간이 지나면 장작더미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자, 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점심을 먹고 나가보니, 나의 예상대로 장작더미에 숨어있다. 간식으로 꼬셔보았지만, 잔뜩 겁을 먹어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뿐더러, 간식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설상가상, 이번에는 절대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들어가 있어 강제로도 꺼낼 수가 없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장작더미에서 몰아내 잡는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결과는 대 실패. 오히려 애만 더 놀라 멀찌감치 도망가는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이후 동네를 몇 바퀴 돌며, 하늘이를 찾아냈는데, 멀리서도 나를 보더니 그대로 줄행랑이다. 아뿔싸.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 인터넷을 차분히 검색해 보았다. 집냥이가 가출했을 경우, 대개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 집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큰소리로 부르거나, 심하게 자극해서도 안되고, 최대한 천천히 집사를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심기일전한 나는, 언젠가는 다시 뒷마당으로 돌아오겠거니 하고 틈틈이 내다보며 차분히 하늘이를 기다렸다. 드디어, 밤 9시 야심한 시각, 뒷마당에 나가보니 하늘이가 있다. 나는 집안에서 하늘이를 부르듯 조용히 이름을 부르며 아주 천천히 하늘이가 걸음을 옮기는 데로 따라다녔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다가가니 주저주저하다가 드디어 머리를 만지는 걸 허락한다. 때는 이때다 싶어 최대한 날쌘 동작으로 목덜미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 물론 잡은 후 목덜미를 흔들며 '너 이 쉐이~ 누가 자꾸 가출하래~(버럭)' 하며 나답게 신경질을 부려줬음은 당연하다.
2차 가출 사건 이후, 나는 아예 창문을 열어 싸복이 남매를 내보내지 않는다. 이중으로 된 현관으로만 아이들을 내보낸다. 덕분에 번거로움은 배가 되었지만, 소중한 하늘이를 잃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는가. 하늘이는 뭉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고양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며, 앞으로도 절대 마당에서 노니는 하늘이를 기대하지 않을 예정이다. 대개의 집냥이가 집을 나간 후, 제 발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집사의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이번 참에 확실히 깨달았다. 더불어 외출 냥이 뭉치는 어쩌면 유일무이한 냥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새삼스럽게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노니는 삶을 살았던 뭉치가 참 멋졌다는 생각이 든다. 뭉치는 하늘 아래 유일한 매력적인 냥이 었음을, 뭉치의 짧은 삶이 모험과 낭만으로 가득 찬 것이었음을, 그렇게 특별한 고양이와 함께했던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음을,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하늘아~ 이제 가출은 그만 하자~ 너는 '오리지널 집냥이'임이 틀림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