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으로 전락한(?) 싸복이 남매, 반등의 기회를 노리다.
싸복이(싸이+행복이) 남매는 내 브런치의 엄연한 '주인공'이다.
싸복이 남매가 아니었다면 내 브런치는 일찌감치 글감이 떨어져 금세 문을 닫았을 것이다. 탁월한 지분을 자랑하며 '주연'으로서 위용을 떨치던 싸복이 남매는, 어째 최근 들어 새롭게 부상한 뉴페이스 냥이 하늘이와, 뒷마당 길냥이들의 떼거지 양적 공세에 밀려 조연으로 전락한 모양새가 되었다. 오호통재라, 싸복이 남매는 아무 생각이 없겠으나, 싸복이 남매의 팬들에게는 다소 섭섭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무슨 에피소드를 좀 만들어 내야 어떻게 다시 주인공이 되어볼까 싶은데, 요즈음은 완전히 '말 잘 듣는 순한 댕댕이 콘셉트'가 되어 그저 일상이 평화롭고 또 평화로우니 우리 집 길냥이들이 쭉쭉 치고 나가는 이 판세를 뒤집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랬던 싸복이 남매 아니, 싸이가 최근 들어 아주 작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다. 하늘이의 '어시스트'를 받아, 싸이가 한 건 해 낸 것이다. 오호, 우리 싸이가 이렇게 치고 올라오며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인 것인가.
며칠 전의 일이다. 언제나처럼 거실에서 싸복이남매와 하늘이, 나 이렇게 네 식구가 잠이 들었다. 일어날 시각이 되었다. 습관처럼 눈을 뜨자마자, 싸이를 불렀다. 행복이와 하늘이는 대개 나와 한 침대에서 자지만, 싸이는 따로 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싸이를 두세 번 불렀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뭐지? 어멍이 일어나는 기척만 들려도 쪼르르 달려오는 게 싸이인데. 세 번, 네 번 불러도 대답이 없자 드는 불길한 생각. '설마..... 싸이가 죽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어멍의 부름에 아무 답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고양이의 한 맺힌듯한(?) 울음소리. 뭐지? 저거 하늘이 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하늘이도 없네? 그런데 왜 이렇게 멀리서 들리는 거지?
이래저래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을 휘 둘러본다. 싸이도 하늘이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진 건가 싶어 어리둥절할 무렵, 가만히 보니 안방 문이 잠겨있다. '어랏, 항상 잘 때 안방 문을 열어놓고 자는데, 이상하네.' 안방 문을 여니 놀라서 안 그래도 큰 눈이 배가 커진 싸이와, 하늘이가 뛰쳐나온다. 싸이는 흥분해서 완전히 난리가 났다.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어멍 어멍~ 나 밤새도록 안방에 갇혀 있었어. 나 얼마나 놀랐다고.' 안쓰러우면서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야 이넘의 쉐이야~ 목청은 폼이야~ 너 댕댕이야. 댕댕이. 이럴 때 짖으라고 니가 댕댕이인 거야~' 문이 닫혀서 갇혀 있었으면 열어달라고 짖으면 될 일을 도대체 싸이는 언제부터 거기 갇혀있었던 걸까.
추정에 상상을 더해 구성해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원체 게으른 데다가 몸이 무거워 한 곳에 누우면 좀처럼 이동하지 않는 행복이와 달리, 싸이는 대개 7~8번쯤은 자리를 옮기면 잔다(왜 그러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떨 땐(특히 어멍이 부스럭거려 자는데 심히 거슬리거나, 하늘이가 야심한 시각에 놀자고 달려들 때), 그러니까 이 꼴 저 꼴 보기 싫을 때는 혼자서 안방 침대에 들어가서 자기도 한다. 아마 이날도 그랬으리라. 하늘이는 제쳐져 있는 안방 문과 벽 사이에 숨어 노는 걸 좋아한다. 거기서 놀다가 본인도 모르게 문을 닫았을 것이다. 3킬로도 안 되는 하늘이가 문을 꼭 닫기는 불가능했을 듯싶다. 잠에서 깬 싸이가 밖으로 나오려다, 문이 닫힌 걸 발견했고, 어찌 열고 나가보려고 몸부림치다가 오히려 문을 꼭 닫은 것이 아닌가 싶다.
담 밖 저 아래 자동차가 드나드는 것까지 상관하며 짖어대고, 이사온지 육 년이 지나도록 이웃을 보고 짖어 대 때때로 나를 민망하게 만드는 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전혀 짖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멍 손에 든 걸 먹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이번처럼 문이 닫혀 갇힌 순간에도.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도 그저 현관문 앞에 조용히 앉아 눈으로 레이저만 쏘고 앉아 있으니, 바쁜 데다 둔한 어멍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눈치채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싸이를 볼 때마다 괜스레 나는 미안해진다. 보챌 줄 모르는 싸이가 안쓰러워서.
아주 잠깐이었지만, 싸이가 죽은 줄 알고 정말 십년감수했다.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하룻밤 사이에 상태가 확 나빠지며 무지개다리를 건넌 적이 있어, 그 후로는 강아지들의 기척이 들리지 않으면 몹시 불안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아기 시절, 집에 도착했는데 싸이만 나를 반겨주고 행복이는 보이지 않아, '아.. 우리 행복이가 죽었나' 하고 식겁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옷장 깊숙한 곳에서 숙면을 하는 행복이를 발견하고, 혼자서 빵 터졌다. 행복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잠들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늘 숙면하니, 참 보면 볼수록 싸이하고는 많이 다르다.
행복아~ 근데 잠만 자지 말고 너도 어떻게 한 건 좀 올려봐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언제 다시 주연이 되겠어?
어떻게 우리 하늘이의 '어시스트'를 또 기대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