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하얗다. 오랜만에 만나는 눈 풍경이다.
오늘 새벽에도 싸복이 남매와 산책을 나섰다. 융통성 없는 데다가 부지런 하기까지 한 어멍에게 예외란 없는 법이니까. 눈이 많이 쌓였다고, 찬 바람이 매섭다고 산책을 거를 수는 없다. 게다가 아무 흔적도 묻지 않은 소복한 하얀 눈을 밟는 것은, 특별한 기쁨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아, 어서 우리 발자국을 남겨야지.
그런데 이미 하얀 눈 위에는 발자국이 수북하다. 자세히 보니, 약속이나 한 듯 다 우리 집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 길냥이들 발자국이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운데도, 하나둘씩 우리 집 뒤뜰로 밥을 먹으러 왔던가보다. 그뿐 아니다. 산책 중에도 수많은 고양이 발자국을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 눈발자국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눈밭을 헤치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길냥이들을 떠올렸다.
모두들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을 피할 곳은 있는 걸까. 먹을 것을, 마실 물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산책 내내 발이 시린 지 가끔씩 멈춰서는 싸복이 남매를 보며 또 생각한다. 이렇게 눈이 쌓인 날엔, 길냥이들은 얼마나 발이 시릴까. 그런데도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배가 고파서 눈밭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뜰 냥이들과 자주 만나 얼굴을 아는 우리 동네 길냥이들만 먹는다고 보기에는 사료 소비량이 지나치게 많다. 아마도 얼굴도 모르는 우리 동네 수많은 길냥이들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오늘 새벽, 우리 집으로 향하는 수많은 고양이 눈발자국을 보며 반가웠다. 얼굴도 모르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길냥이 친구를 새롭게 만난 것 같은 마음이었다. 고맙게도 이렇게 추운 날씨를 뚫고 내 집에 밥을 먹으러 와주었구나.
싸복이 남매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우리 하늘이는 보일러만 틀면 귀신같이 알고 바닥에 배를 붙인다. 따뜻한 방바닥에 눕는 걸 참 좋아한다. 그런 하늘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고양이가 저렇게 따뜻한 걸 좋아하는데, 길냥이들은 이 추운 겨울 한 번이라도 따뜻한 온기를 느껴볼 수나 있을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애달프고 시리다.
발이 너무 시려서 일까. 아침밥 주는 시간이면 귀신같이 내려와, 내가 주는 통조림을 받아먹는 신비가, 오늘은 내려올 생각이 없다. 집 밖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대숲 안의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다. 항생제를 거르면 안 되는데, 방법이 없다. 어떻게 서라도 먹여별 요량으로 시간을 끌다가, 오늘 지각할 뻔했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 겨울은 유난하게 춥다. 참, 길냥이들에게는 힘든 나날들이다.
하얀 눈 위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을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내가 되었다. 아마도, 내가 고양이 눈발자국을 알아보기 훨씬 이전부터 길냥이들은 겨울이면 눈밭을 헤매고 다녔겠지. 이렇게 캣맘이 되어가나 보다. 지금쯤 길 위의 수많은 고양이들은, 추운 겨울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마음으로 늘 기도한다.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