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 '알록이' 이야기

마지막 편 - 알록이와의 이별

by 달의 깃털

수술 후 우리 알바생의 자취방에 지친 몸을 뉘었던 알록이는 설 연휴라 고향집에 내려가야 하는 알바생 사정에 따라 설 전날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뭉치를 가족으로 맞이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우리 집도 나름 어수선한 상황이고, 싸복이 남매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중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아이를 자꾸 여기저기로 옮기는 것도 아닌 듯했다. 겨울에는 주로 거실에서 자기 때문에 마침 안방이 비어있던 터였다. 싸복이 남매와 뭉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나 않을지 한 걱정을 안은 채 그렇게 알록이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KakaoTalk_20180313_172306762.jpg 넥 카라를 썼을 땐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리가리 소파' 위에서 좀처럼 내려오질 않는다. '가리가리 소파'가 그리도 좋으냐

알록이를 다시 길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알록이가 퇴원한 이후부터 부지런히 입양 보낼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탐탁지 않았고(어찌 모르는 사람에게 보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평소 인간관계가 넓은 것도 아니니 어디 얘기해볼 사람조차 마땅치 않았다. 마침, 같이 일하는 알바생의 과 친구가 평소에 동물을 키워보고 싶었다며 관심을 보여왔다.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학생이라 했고, 주간에 안정적인 교내근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수입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아팠던 아이라는 상황 설명을 했는데도 입양하겠다는 마음이 기특하다. 보내도 되는 것일까. 또다시 내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냥 알록이를 우리 집 식구로 맞아들이는 게 나을까?


KakaoTalk_20180313_172306473.jpg 알록이는 사람 손길을 너무 좋아하는 전형적인 개냥이. 너.... 길냥이 맞냐?

함께 지내보니 알록이는 뭉치와는 전혀 다른 완전 개냥이다. 손대면 도망가는 뭉치와 달리, 사람의 손길을 너무 좋아한다. 똥오줌을 완벽히 가리는 것은 물론 순하고 착해서 딱히 손 갈 곳이 없는 아이였다.(오줌 못 가리는 뭉치랑 살다 보니 고양이가 오줌을 가리는 것이 대단한 장점으로 보인다) 보면 볼수록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마음의 갈등은 커져갔다. 그런데 뭉치를 너무 싫어한다. 심지어 싸복이 남매보다 더 싫다. 얼굴만 보면 울어재끼고 서로 하악질도 여러 차례. 게다가 우리 집에 오고 며칠 되지 않아 싸복이 남매에게 쫓기면서도 계속해서 거실 탐험을 멈추지 않았던 뭉치와 달리 안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우리 집에 적응할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라면 수술 후 회복단계에 있는 알록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았다.


KakaoTalk_20180313_172304770.jpg 이 사진은 마지막 날 우연찮게 건진 사진일 뿐. 알록이는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더 싫은 요상한(?) 고양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보내야지' 맘먹었다가, '그냥 키워야지'라고 맘 바꾸기를 수십 번. 하지만 장고 끝에 결국 보내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싸복이 남매'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알록이가 있다 보니 전처럼 싸복이 남매에게 신경을 써줄 수가 없었다. 워낙 착한 아이들인지라 그저 묵묵히 어멍을 이해해주어 더 미안했다. 알록이와 함께 있는 동안 제대로 한번 '쓰담쓰담'을 해줘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직장을 다니면서 혼자서 네 마리를 돌보는 것도 무리다. 이십여 일을 함께 보내면서 정이 들대로 든 알록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KakaoTalk_20180313_172305041.jpg 작고 귀엽고 이쁘고 사랑스러운 알록이. 그때 내가 알록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예쁜 눈망울을 다시 못 볼 뻔했다

결국 알록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 직접 만나보니 믿음이 갔고, 무엇보다 우리 알바생이랑 친하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감시(?)가 가능하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엄마의 마음이 되어 간식이며 사료며 장난감을 바리바리 싸서 알록이를 데려다주었다. '평생 책임져야 하는 맘으로 키워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꼭 나한테 데려오라고' 여러 번 신신당부를 하면서. 다행히 우리 알바생이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알록이도 동현이를 엄청 따르고, 동현이도 참 좋아한단다. 가끔 과 친구들이 놀러 가는데, 알록이가 낯을 전혀 가리지 않고 따르니 다들 예뻐한다고 한다. 잘 적응한다니 정말 다행스러웠다. 보낼 때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는데 보내고 나니 여러 가지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도 예전의 평화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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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거실에 나오지 않으려던 알록이가 떠나는 날은 종일 거실에서 맴돌았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선물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

알록이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너무 좋아하고, 노래를 불러주면 좋아했다. 케이지에 들어가는 걸 싫어해서 케이지에 넣기만 하면 울었는데, 어느 날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주었더니 신기하게도 울음을 멈추었다. 그 이후로는 자주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알록쓰 알록쓰 우리 알록쓰~ 착하고 예쁜 엄마의 고양이~' 나는 되지도 않는 멜로디에 이런 유치한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그렇게 둘이 함께 있을 때, 내가 노래를 불러주는 찰나의 순간, 우리 둘은 또 하나의 작은 우주였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그 과정에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기적이다. 과연 누가 이 아이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에 비해 값어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알록이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누구보다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이다.


KakaoTalk_20180313_172304442.jpg 뭉치는 요즈음 살쪄서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장소다. 알록이 너 대단하구나.

누군가 '직접 낳지 않았다고 해도, 작은 존재를 위해 모든 걸 내어주면 그게 바로 엄마'라고 말했다. 부족하지만, 나는 알록이의 엄마다. 앞으로는 알록이를 만나지 못할 확률이 크다. 하지만 우리가 한때 나누었던 교감은 지구별 어딘가에 에너지로 흩어져 있어 늘 함께 할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앞으로는 몸도 맘도 아프지 말고, 힘들었던 길냥이 시절은 모두 잊고 행복하기만 하면서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알록아~ 사랑한다.


KakaoTalk_20180313_172306083.jpg 알록이가 있는 동안 싸복이 남매는 저런 '개불쌍' 모드였다. '어멍~ 도대체 맨날 거서 뭐 하는 거야?"

에필로그

알바생: 선생님~ 제가 이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요. ㅠㅠ 동현오빠가요~

나:(화들짝 놀라며) 왜애? 알록이 못 키우겠데?

알바생: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우리 알록이 이름을 새로 지었대요. ㅠㅠ

나:(안심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그럴 수 있지. 바꾸고 싶을 수 있어. 근데 이름을 뭐라 지었대?

알바생: 강군이요.

나: 뭬잇? 여잔데? 강군이라고? 이런 쓱을...... 그래... 뜻이나 들어보자~

알바생: '강한 여군'의 준말이래요. ㅋㅋ



알록이면 어떻고 강군이면 어떠하리. 강한 여군으로 다시 태어난 알록아~ 그저 건강하기만 해 다오^^


KakaoTalk_20180313_172303821.jpg 동현이가 보내준 사진이에요. 잘 지내고 있다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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