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방법이 없겠구나 싶었던 '알콩이 잡는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때는 어느 주말, 작년 여름에 베어내어 쌓아 놓았던 사철나무 가지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보일러실 2m쯤 앞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그때 알콩이가 나타나 슬쩍 보일러실 근처에 자리를 잡는다. 아는 척하면 도망갈 것이 뻔하므로 나는 짐짓 못 본 척,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이렇게 서로 익숙해지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싶은 마음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나를 지켜보던 알콩이가 보일러실로 쏙 들어간다. 때마침 길냥이 급식대에 사료가 떨어져 보일러실 안에 있는 사료를 먹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지금 재빨리 보일러실 문을 닫으면 알콩이를 잡을 수 있다'.
그동안 알콩이를 잡기 위해 별짓을 다해 보았다. 통덫도 설치해 보고 낚시용 그물을 구입하기도 했다.(TV에서 본 것처럼 휙 낚아채 보려고) 다 소용없었다. 워낙 예민하고 주의 깊은 데다가 소심한 녀석이라 통덫은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고, 낚시용 그물은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였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커 보인 것은 보일러실에 들어갔을 때 문을 잠그는 것. 이 마저도 3m 거리에서 나는 발소리를 듣고도 매번 도망치는 통에 계속 실패했다. 알콩이 중성화 수술은 물 건너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 눈앞에서 보일러실로 들어가다니. 하느님이 나를 도와주시는구나. 이후에는 일사 철리로 진행됐다. 보일러실에 갇힌 알콩이를 잡는 것 또한 운이 크게 따랐다. 겁에 질려 소리도 못 내고 숨어있던 알콩이는 내가 다가가자 숨을 곳을 찾다가 열려있는 케이지로 쏙 들어가 버렸던 것. 내 입장에서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격이었다. 막상 보일러실에 가두긴 했어도, 어떻게 케이지에 넣을지 걱정이 한가득 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잡힌 알콩이는 하룻밤을 우리 집 안방에서 묵었다. 알콩이는 역시 겪고 본 대로 '사람을 무서워하는' 전형적인 길냥이다. 하루 밤 동안 거의 꼼짝하지 않고 구석에 숨어 있었다. 두려움에 질린 것이 확연히 보여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한편, 사람 손을 전혀 타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뭉치나 알록이 같이 사람 손을 타는 아이였다면 내적 갈등으로 괴로웠을 것이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고,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고, 퇴원 후 다시 길로 돌려보냈다. 그 와중에 우리 알바생 자취방에 있던 엄마 알록이에게 데려가기도 했다. 알콩이는 알록이를 알아보고 소리 내어 우는데, 알록이는 알콩이를 보고 까칠하게 군다. 아직 엄마 곁을 떠날 준비가 안 된 알콩이가 많이 안쓰러웠다. 알콩이는 몇 개월 전에 엄마 알록이에게 내쳐졌는데, 매일 아침 내가 사료를 줄 때 대나무 숲에 자리 잡고 나를 지켜본다. 다른 길냥이들은 언제 사료를 먹는 건지 통 내 눈에 띄지 않을 때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알콩이는 매일 아침마다 나를 기다린다.
그렇게 알콩이를 뒷마당에 다시 풀어주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 하니 도망을 간다. 다음 날 아침, 대나무 숲에서 알콩이가 보이지 않는다. 겁먹고 도망갔나 싶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그다음 날도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둘 것을 괜히 알콩이 위한답시고 수술을 했나 후회가 슬금슬금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게 과연 내가 잘한 일일까 싶기도 했고. 삼일 째 되는 날, 드디어 알콩이가 짠 하고 나타났다. 역시 대나무 숲에 숨어서 나를 지켜본다. 눈물이 찔금 나왔다. 다시 만난 알콩이가 너무도 반가워서.
길냥이들에게 마음을 주면서 정한 나름의 원칙이 하나 있다. 내 손을 타는 아이들에게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겠다는 것. 우리 집 밥을 먹는 길냥이 들이 한두 마리가 아닌데, 그 많은 아이들을 일일이 잡아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내게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온 아이들에게만 손을 내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알콩이는 예외였다. 알콩이는 전혀 내 손을 타지 않는 오리지널 길냥이지만 내게 의미가 달랐다. 어릴 때부터 쭉 보았고, 엄마로부터 내쳐지는 것도 보았다. 어디 따뜻한 곳에 있다가 밥 먹으러 나와도 되건만, 이렇게 추운 겨울날에도 대나무 숲에서 웅크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많이 안쓰럽다. 이래저래 알콩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잡기 힘들 거라는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굳이 알콩이를 잡아서 수술시켜 준 까닭이다.
매일 아침 알콩이를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간다. 숨어있는 알콩이와 숨바꼭질하듯이 만나는 1분여 짧은 시간이 알콩이와 나 사이에 쌓여간다. 우리는 나름 특별한 묘연이다.
알콩아~ 우리 오랜 시간 함께하자~ 능숙한 길냥이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