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 '알록이' 이야기

두 번째

by 달의 깃털

꿩 대신 닭이라고, 알콩이 잡기에 지친 나는 일단 알록이 부터 병원에 데려가기로 한다. 처음부터 경계심이 없었던 알록이를 케이지에 넣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게 알록이를 데리고 병원엘 갔다.


병원에서 알록이의 배가 한쪽만 나온 것은 탈장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고 했다. 중성화 수술과 동시에 진행하기로 하고 다음 날 다시 데리러 오기로 했다. 이튿날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잠깐 앉아보라고 하신다. 스쳐가는 불길한 생각. 혹시 알록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막상 배를 열어보니 탈장이 다가 아니었던 거다. 뱃속이 염증으로 가득 차 있고 거기다 커다란 헤어볼이 장에 걸려있어서 너무너무 위험한 수술이었단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당분간 입원을 시키고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보다 더 나빠도 사는 경우도 있지만, 이보다 덜 나빠도 죽는 경우도 있다고도 했다. 아, 정신이 아득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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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후 알록이 모습. 넥카라가 싫어도 너무 싫다. 수술자국을 보면 제법 큰 수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종합하자면, 며칠만 더 늦게 데려왔어도 알록이는 죽었을 거라는 거다. 뱃속에 염증이 가득한 상태로 살아 있다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인데, 속이 불편하니 풀을 너무 많이 주워 먹어 생긴 커다란 헤어볼이 장에 걸려 있어 수 일내로 죽었을 거라는 거다. 소름이 쫘악 끼쳤다. 내가 봄까지 주저주저했더라면 알록이는 더 이상 이 세상 고양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날 아침에 오랜만에 알록이와 마주친 건 운명이었던 것일까. 나는 왜 갑자기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겠다 맘먹은 것일까. 알록이와 나의 묘연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술비에 입원비까지.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돈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기도했다. 알록이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기를. 지금 여기서 죽는 다면 너무나도 허망한 일 아닌가. 알록이가 살려고, 살고 싶어 나에게 작은 손을 내민 것 같았다. 이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5일을 입원해있던 알록이는 건강하게 퇴원을 했다. 어려운 수술을 강한 생명력으로 이겨낸 것이다. 알록이의 상태를 보러 간 나에게 쌤이 말한다. '알록이는 너무 착하고 순하다. 어디 입양할 곳을 알아보면 안 되겠느냐. 어디 가서라도 예쁨 받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고. 그런 이야기도 하셨다. 낯을 가리지 않는 것이 집냥이였던 것도 같다고. 누가 키우다 버린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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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이가 잠깐 직장에 놀러왔어요. 알바생들이 너무너무 예뻐하네요. 알록이는 낯을 전혀 가리지 않아요.

수술 후 다시 길로 돌려보낼 예정이던 나는 다시 새로운 근심에 빠졌다. 게다가 큰 수술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열흘 정도는 지켜봐야 된다고 했다. 잠깐이야 내가 돌봐도 되지만 그 이후에는 어디로 보낼 것인가. 큰 수술을 한 아이를 길로 다시 돌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싸복이 남매와 뭉치가 있고, 셋이서 평화를 유지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또 한 생명을 거둔다는 게 쉽게 결정할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식으로 계속 인정에 이끌려 동물을 들이다간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섰다. 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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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이를 잠시 봐주었던 우리 알바생에게 이쁨받고 있는 알록이. 워낙 얌전해서 가방에도 잘 들어가 있었답니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던 나의 자취하는 알바생이 일단은 알록이를 돌보아 주었다. 알바생이 고향에 가 있는 설 연휴부터 우리 집에서 지내는 중이다. 그리고 드디어 엊그제 실밥을 푸르고 넥 카라에서 벗어났다. 며칠 동안 지켜본 알록이는 완전 개냥이다. 낯도 전혀 가리지 않고 사람을 좋아한다. '네가 진정 길냥이 었냐' 싶을 정도로 애교도 많다. 며칠 동안 알록이와 눈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고, 작은 손을 어루만졌다. 생각하면 할수록 알록이와 나의 묘연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는 어쩌면 전생에 특별한 인연이었을까. 나는 왜 알록이를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걸까. 삶이 고단했을 알록이가 내민 작디작은 손을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었을까. 앞으로 알록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나는 알록이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가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만난 이유가 분명히 있으리라.


KakaoTalk_20180220_171314596.jpg 드디어 넥 카라를 풀고 집에 왔어요. 우리 집 안방을 떡 하니 차지하고 피곤한지 졸고 있네요.

알록아~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 너를 응원해~ 힘든 시간은 다 잊고 앞으로는 꽃길만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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