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알록이와의 첫 번째 만남:
늦여름 어느 날, 싸복이 남매와 함께 산책 중이었다. 산책 말미, 고양이만 보면 쫓아가는 게 일인 싸이가 하얀색 아기 고양이를 쫒아갔다. 그때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난 어미 고양이. 와우~ 어찌나 무섭게 하악질을 해대던지 나와 싸복이 남매는 우스운 모양새로 꽁지 빠지게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미 고양이가 바로 알록이다.
알록이와의 두 번째 만남:
우리 집 뒤꼍에서 밥 먹는 길냥이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하지만 내 눈에 띄는 경우는 드물다. 자고로 길냥이는 생존을 위해 사람과 마주치기 무섭게 줄행랑치는 것이 본능이어야 한다. 우리 집 뒤뜰에 대나무 숲이 있는데 길냥이들이 거기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은신처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 대나무 숲에서 알록이를 보았다. 이것이 두 번째 만남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 고양이와 함께였다. 길냥이들이 두 마리가 함께 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니 아마 없을 것이다. 함께 다니는 것이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고, 고양이가 개처럼 사회성이 뛰어난 동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마리가 함께라니. 신기한 마음에 눈도장을 확 찍었다. 알록달록한 놈 한 마리, 하얀 놈 한 마리. 두 마리가 2종 한 세트로 늘 함께였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마주쳤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금은 우리 집 냥이가 된 길냥이 뭉치에게 주려고 통조림을 따는데, 그때 어디선가 알록이가 나타나 내 손의 통조림을 향해 돌진하는 것 아닌가. 허걱. 무슨 길냥이가 이리도 조심성이 없을까. 길냥이는 사람을 경계해야 명줄이 긴 법이거늘 어째 이런 일이. 뭉치는 애초에 집냥이 었던 것이 틀림없으므로 당연하다 싶었는데, 알록이는 요리 살피고 조리 살펴봐도 길냥이로 태어난 아이인 것 같은데 말이다. 걱정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 내친김에 머리에 손을 대보았다. 어라, 피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다른 '하얀 놈 한 마리'는 알록이의 새끼였다. 아직 어린 새끼와 함께 다녔던 것. 새끼는 알록이와 달리 경계가 심해 자세히 볼 수가 없어 어른 고양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얘네들은 알록이와 알콩이(당연히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모녀로 불리게 되었다. 알록달록해서 '알록이', 알록이 새끼라서 '알콩이'. 그 후로 알록이와 알콩이 모녀는 우리 집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알록이는 대 놓고 나만 보면 통조림을 내놓으라 하고, 알콩이는 겁이 많고 경계가 심해 저기 멀리서 눈치만 슬금슬금 본다.
그. 런. 데. 친해지고 나니 알록이 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알콩이도 아직 새끼인데 또 임신했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고민만 하는 사이 시간이 흘러갔다. 임신이라면 새끼가 나오고도 남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배는 여전히 불룩하다. 자세히 보니 한쪽만 튀어나온 것도 같다. 이건 뭐지. 혹이라도 난 건가. 암인가. 아픈 애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갔다. 보면 볼수록 배가 심상치 않다.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중성화 수술도 시켜줄 겸 병원을 데려갈 것인가, 모르는 척할 것인가.
삼색이(흰색, 갈색, 검은색이 섞인 고양이)는 암컷일 확률이 90% 넘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알콩이도 암컷이다. 두 마리 다 수술시켜 주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렇다고 모르는 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어린 알콩이도 임신을 할 것이다. 둘 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짧은 생을 마감하겠지. 이제 곧 겨울인데, 기껏 수술시켜줬는데 얼어 죽으면 어쩌지. 알록이는 잡을 수 있다 해도, 얼굴도 보기 힘든 알콩이는 어찌 잡을 것인가. 내면에서 2개의 목소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심했다. 그래, '한 겨울 동장군도 견뎌내면 그때 수술을 해주자'라고.
얼마 전에 강력한 한파가 지나갔다. 이러다 우리 집 길냥이들 다 얼어 죽겠다 싶을 만큼 이번 겨울 추위는 유난했다. 그런데 모두 다 무사했다. 늘보, 찐빵이, 알록이 알콩이, 테디, 반점이. 내가 이름 지어준 모든 냥이들이. 이런 추위에도 살아남았는데 쉽게 죽진 않겠구나 싶었다. 행동으로 옮길 때가 온 것이다. 알록이는 잡기가 수월할 듯 해, 알콩이를 먼저 목표로 삼았다. 사실 얼마 전 알콩이는 엄마 알록이에게 버림받았다(길냥이는 때가 되면 어린 새끼를 내친다고 한다. 혼자 살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후 알록이는 며칠에 한 번씩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알콩이는 우리 집에 터를 잡은 듯했다.
매일 아침밥 주러 갈 때 보면, 알콩이가 몰래 대숲에 숨어서 나를 보고 운다. 낯을 그렇게 가리면서도 어떤 날은 사료를 저장하는 보일러실 문 앞에 따라와서 울기도 한다. 밥 달라는 얘기다. 아직 어린데, 엄마 없는 길 생활이 어떨지 측은한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사람 손을 타지 않으니 내가 도와줄 방법이 많지 않다. 수술이라도 시켜주기 위해 알콩이를 잡으려고 약 2주의 기간 동안 이 방법 저 방법 써 봤지만 경계가 심하고 겁이 많아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갔다. 알콩이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아, 어쩌지 방법이 없을까 싶었을 때, 며칠 만에 알록이와 마주쳤다.
-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