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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ug 02. 2019

하늘이와 어멍의 수난 일기

그 첫 번째 이야기

지난봄에 하늘이가 두 번째 가출을 한 일이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또다시 가출을 하면 잡기가 힘들겠구나.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단속을 철저하게 해야지.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하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자나 깨나 문조심을 외치며, 문단속을 철저히 하던 나는 시간이 흐르자 다소 경계심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아파트와 달리 현관문을 열 일이 비일비재한 데다가, 하늘이는 뭉치와 달리 현관문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출근을 준비하던 중, 아주 잠깐, 눈 깜빡할 사이, 그냥 평소대로 마당으로 나가기 위해 달려가던 행복이에게 놀란 하늘이가 그 길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후 상황은 더 나쁘게 전개되었다. 안 그래도 놀란 하늘이를 싸복이 남매가 미친 듯이 쫓아 어떻게 손써볼 틈도 없이 그 길로 뒷산으로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다.


하늘이는 태어난 지 이제 1년 2개월(추정), 어른 냥이가 되었다. 

그래도 저 때까지는 금방 잡아서 데리고 들어올 수 있을 줄 알았다. 두 번이나 가출한 하늘이를 데리고 온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집 근처를 배회하는 하늘이를 발견했지만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고양이는 워낙에 섬세하고 예민한지라 집 밖이란 낯선 상황에 처하면 다른 인격체의(?) 냥이가 된다. 집을 나간 고양이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하늘이는 가뜩이나 겁이 많아, 낯선 사람이 오면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을 정도이니 경계가 더 심할 수밖에. 나를 알아보긴 해도 절대로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첫날은 밤이 늦어 포기하고 집에 들어왔다. 이 근처에서 나고 자란 아이이니, 어디 멀리 가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째, 목요일 저녁,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어떻게든 검거(?) 해 보려 했으나 역시 실패. 이때부터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걱정이 커져 결국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6일 동안 속 끓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하늘이가 가끔(?)씩 얄밉다 ㅎㅎ

걱정하실 분들을 생각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요일에 집을 나간 하늘이는 화요일 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 6일간이 나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들이었다. 초반에는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하루 종일 동네를 배회하며 개(?) 고생을 했다. 모기에 수십 방을 뜯겨가면서 끈질기게 기다리고, 덫을 놓아보고, 하늘이 검거를 쉽게 하기 위해 다른 길냥이들을 가둬보기도 했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맘고생 몸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속은 점점 타들어갔고,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실수한 스스로를 계속해서 자책했고, 순간순간 올라오는 하늘이에 대한 배신감과도 싸워야 했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나를 몰라본단 말인가 하는 배신감.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목덜미를 3번이나 잡았는데 전부 다 놓쳤다. 한 번씩 놓칠 때마다 하늘이의 경계는 더욱더 심해져갔고, 급기야 나는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오늘 아침 사진입니다. '내가 언제 집을 나갔었나' 싶은 표정이네요 ㅋㅋ

일요일 아침이었다. 옆집 창고에 숨어있을 때, 내가 부르면 어김없이 (나를 피하는 와중에도 어이없게) '야옹야옹' 대답을 해주던 하늘이의 목소리가 유난히 힘이 없다. 그 전날 잡았다 놓쳤을 때, 경기 일으킬 정도로 놀랐기에 갑자기 걱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고양이는 너무 예민해서 경기를 일으키면 죽기도 한다던데. 불길한 생각은 한 번 시작되니 점차 커져갔다. '하늘이가 죽었구나' 에까지 생각이 미치자(지금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이지만) 나는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 하늘이가 죽은 것 같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기도 힘든데, 그 당시엔 제법 심각했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하늘이를 내 손으로 죽인 거야' 하며 얼마나 울고 짰던지.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얼마나 기도를 했던지. 쌍꺼풀이 없어지도록 하루 종일 울었는데 다크서클이 안 그래도 턱밑까지 내려온 저 때 내 모습이 참으로 흉했을 성싶다.


옆집 창고에서 나와 밀당 or 대치중인 하늘 씨. 이때만 해도 초반이라 사진 찍을 정신이 있었던 가 봅니다.

저렇게 대성통곡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창고를 들락날락했고, 다행히도 저녁시간에 뒷마당 대숲으로 유유히 걸어가는 하늘이를 발견했다. 그때의 심정이란. 하늘을 날 듯이 기뻤지만, 시간이 지나자 '살아만 있게 해 달라'는 마음은 저기 어딘가로 사라지고 또다시 얼른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 2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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