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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l 30. 2019

어멍 바보 행복이

지난 5월 초 연휴 때 이야기다. 


아버지가 팔순이어서, 알바생을 집에 불러다 놓고 2박 3일 가족여행을 갔다. 2박째 되는 밤에 알바생에게 연락이 왔다. 하늘이가 설사를 한다는 거다. 시간이 갈수록 하늘이의 증상이 더 심해졌고, 급기야는 기생충(으로 보이는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알바는 놀라 울기 직전이 되었고, 역시 놀란 나는 일정을 취소하고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하늘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뱃속에 기생충이(?) 너무 많아 생긴 장염으로 진단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이는 약을 먹고 곧 괜찮아졌고, 시간이 흐르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됐다. 


하늘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오늘 글의 주인공은 행복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손님이 온다고 해서 '손님맞이용' 리본을 달아보았다. 참... 안 어울린다. ㅋㅋ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늦게 잤지만 평소처럼 일어나 집안일을 했다. 알바 옵션에 포함되어 있던 '길냥이, 강아지 밥 주기+청소기 돌리기'를 내가 이미 다 했다는 걸 들은 알바가 미안했는지, 싸복이 남매 산책을 시켜주고 퇴근하겠다고 한다. 크게 놀란 데다 새벽 한 시가 넘어 잠들었고 여행의 피로도 겹친 나는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렇게 알바가 싸복이 남매를 데리고 나간 지 한 1분여나 지났을까.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뭐지? 


'선생님~ 행복이가 꿈쩍도 안 해요. 산책은 물 건너간 거 같아요~' 


손님들의 마사지(?) 서비스를 즐기고 있는 행복이스런 표정의 행복이^^.

우리 행복이가 어멍이 집에 있으니, 어멍 없이는 산책 안 가겠다고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알바 앞에서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다. 역시 우리 행복이는 어멍밖에 모르는 어멍 바보다. 반면 싸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쫄래쫄래 잘 따라오더란다. 덕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산책을 가야 했지만 마음만은 참으로 뿌듯했다. 사실 우리 행복이가 덩치만 산만큼 컸지 하는 짓은 엄마품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영락없는 아기다. 싸이는 다소 독립적이어서 나 없이도 앞가림을 잘하는 반면 행복이는 조금 과장하면 어멍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행복이는 혼자 둘 수도 없다. 언젠가 싸이가 아파서 급하게 병원에 가야 했을 때, 웹캠으로 지켜보니 안절부절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게 아닌가. 작년에 싸이가 뱀에 물려 3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행복이를 혼자 둘 수가 없어 알바를 집에 부르기도 했다. 참,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긴 한다.


자고, 자고, 그리고 또 자고. 행복이의 일상은 언제나 똑같다. 

집에 손님이 와서 화장실 문을 닫고 일을 볼 때(평소엔 싸복이 남매가 싫어해서 잘 안 닫는다), 화장실 앞에서 늘 기다리고 있는 것도 행복이다. 내가 집에 있을 땐, 눈 앞에 반드시 어멍이 있어야만 한다. 싸복이 남매를 엄청 예뻐했던 구남친과 있었던 에피소드다. 강아지 수영장에 놀러 갔는데, 내가 좀 멀리 있는 화장실에 갔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싸복이 남매가 어멍이 들어있는 화장실 문 앞에 진을 쳤다. 구남친이 불렀을 때 싸이는 냉큼 따라갔는데, 행복이는 꿈쩍도 하질 않아 구남친이 행복이에게 엄청나게 서운해했다. 나만큼, 아니 나 이상으로 싸복이남매가 구남친을 따르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역시 행복이는 어멍 바보다. 


요즘은 욕실에서 아주 산다. 입구를 막고 있어 화장실 사용이 참으로 불편하다. ㅋ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싸이, 행복이, 하늘이 내겐 모두 똑같이 소중한 가족이다. 누가 더 예쁘고 덜 예쁘고 그럴 리 없지만, 전적으로 내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행복이에게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혼자서 잘 자다가도(잘 때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엇! 어멍 어디 갔지? 하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는 행복이를 볼 때가 특히 그렇다. 그렇게 다가온 행복이가 나를 한참 응시하다, 머리를 내 다리에, 허벅지에, 가슴팍에 기대는 순간, 그 순간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침 바르려는 행복이와, 침 좀 덜 묻혀보려는 어멍 사이에 기싸움이 벌어지는 코믹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한 존재에게 온전하게 사랑받는 느낌을 알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삼 남매가 한자리에 모였다.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우리 집 가족사진 ㅎㅎ

어멍 바보 행복이에게 한없는 책임감을 느낀다. 저 책임감이 곧 사랑일 것이다. 

행복이와 어멍은 이렇게 서로에게 온전하게 기댄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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