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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ug 09. 2019

길냥이 '구름이' 이야기

길냥이 '구름이' 이야기

유월 어느 날이었다. 뒤뜰에 새로운 길냥이가 나타났다. 이젠 뭐,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까맣고 윤기 나는 털에 앞뒤로 하얀 양말을 신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내 손을 탈 수도 있겠다'싶은 감이 왔다. 길냥이들을 워낙 여러 마리 보살피고, 캣맘 역사가 제법 되다 보니, 이제 대충 보면 나와의 관계가 어찌 될지 촉이 좀 온다. 이러다 돗자리 깔아도 되지 싶을 정도로. 꼬셔볼 요량으로 통조림을 냉큼 가져다 주니, 아니나 다를까 나를 경계하면서도 내 손을 탄다. 오호라. 이 녀석과의 나와의 인연은 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구름이는 나와의 첫 만남에 주저주저하면서도 머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처음엔 샛별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샛별이는 지난겨울 우리 집 뒤뜰 냥이 '태희네 육 남매' 중성화 수술 프로젝트 수행 시에 얼떨결에 잡아 중성화 수술을 해 주려다가, '어떤 미친 X가 버린 집냥이'로 판명된 비운의 고양이다. 배를 갈랐을 때 이미 자궁이 없었다. 너무도 안쓰러워 누구보다 빛나는 아이가 되라는 의미에서 '샛별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아이다. 그 이후로 거의 본 적이 없어 얼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기에 샛별이라는 확신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그 당시에도 사실 샛별이는 몇 번 본 게 다여서 눈에 익지 않았었다. 그런데 샛별이라면 이렇게 선뜻 쉽게 내 손을 탔을까.


길냥이들 중에서도 사람 손을 타는 아이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참 신비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흘렀다. 통조림에 맛이 들렸는지 거의 매일 뒤뜰에 모습을 나타낸다. 그렇게 정을 조금씩 쌓고 있을 무렵, 문득 생김새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쿵이와 몹시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핸드폰으로 뒤져서 사진을 비교해 보니, 거의 똑같이 생겼다. 뭐지? 쿵이가 죽은 게 아니었나. 살아 돌아온 건가? 쿵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를 낳았다고 했는데, 혹시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 아무리 봐도 쿵이는 아닌 듯싶었다. 몹시 닮긴 했으나, 나를 대하는 느낌이 쿵이와는 다르다. 샛별이 일 확률보다는, 쿵이의 새끼, 즉 우리 하늘이의 누이거나 여동생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런데다 연령대도 하늘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 아이를 구름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을 상상하며, 하늘이의 남매라는 의미에서.'


좌측이 구름이, 우측이 하늘이 엄마 쿵이입니다. 정말 놀랍도록 똑같이 생겼습니다.

한동안은 구름 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가출한 하늘이를 찾아 동네를 샅샅이 뒤지던 중에 구름이를 다시 발견했다. 그 와중에 하늘이와 목소리가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하늘이의 누이일 거라는 심증을 굳혔다. 그렇게 또 며칠은 아예 우리 집 뒤뜰에서 지냈다. 지켜본 구름이는 개냥이에 가깝지만 아주 겁이 많고 경계가 심하다. 하늘이와 비슷한 성격이다. 아침저녁으로 내 손을 타는 구름이를 보며 또다시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집냥이로도 잘 지낼 수 있는 성격일 것 같은데, 구름이를 집안으로 들여야 하는 걸까. 어딘가로 입양 보낼 수는 없을까. 외출 냥이 뭉치와 함께하고, 수많은 길냥이들을 보고 겪으면서, 이제는 아이들을 보면, 저 아이가 집에 적응할 수 있는 아이인지, 아닌지가 판단이 된다. 길에 잘 적응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덜한데, 집냥이로서 제격일 듯한 아이를 만나면 안쓰러움이 배가된다. 구름이가 딱 그랬다.


털이 뽀얗고 윤기가 흐르는 것이, 길 생활이 오래되지 않은 아직은 젊은(?) 냥이로 보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구름이는 우리 집 뒤뜰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 다른 냥이들을 유난히 싫어해서(조금만 가까이 와도 하악질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 집에 정착하는 것은 포기한 것으로 짐작된다. 아마도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고는 있을 텐데, 이제 얼굴을 마주치기도 쉽지 않다. 집에서 자주 보는 동안 외부 구충을 해주고 목걸이를 걸어주었는데, 목걸이를 걸어준 것은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암컷인 구름이는 저대로 두면 임신할 것이 뻔하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 할 텐데. 그런데 만약 샛별이라면 어찌하나. 애먼 아이 배만 3번 가르는 꼴이 날 텐데. 구름이라면, 저러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뒤뜰에 새끼를 낳는 것은 아닐까. 구름이를 생각하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늘 머리가 복잡하다. 얼굴이 통 보이지 않는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 근처 어딘가에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 그럴 거라 믿어봅니다.

구름이는 어딘가에서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어본다. 어쨌든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나와의 인연은 이어질 것이라고도 믿는다. 만약에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차라리 우리 집 뒤뜰이었으면 좋겠다. 뭉치에서 시작되어 쿵이, 하늘이와 구름이 까지 3대에 걸쳐 나와 이어지는 인연이 참 묘하다. 


특별하고 아름다운 인연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묘연(猫緣)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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