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희네 육 남매, 강이 이야기
미모의 고양이 '태희'는 작년 오월 어느 날 나의 허락 없이(?) 우리 집 뒤뜰에 무단으로 6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태희는 나에게 6남매를 맡겨놓고 튀었다(어이없지만 밥은 여전히 먹으러 온다).
새끼가 자그마치 6마리라는 걸 알고 기함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 4개월이 지났고, 여차저차 해서 뒤뜰에 여전히 살고 있는 건 '강이, 신비, 혜교, 탄이' 네 마리뿐이다. 태희네 남매는 꼬물이 시절부터 나와 눈 맞추긴 했어도 오리지널 길냥이에 가깝다. 나를 알아보기도 하고, 심지어 내가 밥 주는 시간도 알긴 하는데, 손을 탈 생각은 전혀 없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라치면 도망가기 일쑤다. 물론 개중엔 내가 다가가면, 열심히 하악질을 날리는 어이없는(?) 아이도 있다.
그래도 그중에서 나를 제일 따르는 냥이가 바로 '강이'다. 다른 남매들과 달리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자주 마주치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는가 보다.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가긴 해도, 내가 나타나면 밥 달라는 건지 반갑다는 건지 요상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 온다. 아침시간에 이런 강이 만큼은 밥그릇 앞에서 반드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은근슬쩍 따라다니는 것 같기도 한데, 이 정도면 우리 사이가 제법 친밀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이는 '재투성이 털 뭉치' 연상케 하는 외모를 가졌다. 처음 봤을 때는 '어째 저런 색깔인가' 싶어 놀라울 정도였다. 태희네 육 남매는 '혜교'만 빼고 한결같이 제 어미의 미모를 물려받지 못했는데 그중에서도 아기 '건이'와 '강이'가 그 당시 내 눈에는 제일 못 생겨 보였다(얘들아~ 미안하다). 못생긴 것도 안쓰러운데 '건강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건이'와 '강이'가 된 것이다.
나의 이런 기원에도 불구하고 '건이'는 안타깝게도 4개월령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우리 집 뒤뜰에 잠들었다. '강이'가 그래도 제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꽤 멋진 어른 냥이로 자라났다. 못생겼다고 생각했던 아기 냥이 강이는 커가면서 제법 미모에 물이 올랐다. 아니, 자꾸 지켜볼수록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신비로운 털 색깔이 너무 예쁘다. 흡사 재투성이 아가씨가 신데렐라가 되는 마법을 부린 모양새랄까.
강이와 같은 묘색의 고양이를 '카오스의 혼돈'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쉽게 볼 수 없고 매력적인 묘색을 가졌기에 붙은 이름일 수도 있겠다 싶다. 강이를 지켜보면서 깨닫는다. 자꾸 보고 정이 들면 세상에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그것이 사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나태주 시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강이는 또 성격이 유순하고 정도 많다. 중성화 수술 때문에 덫에 걸렸을 때도 하악질 한 번을 하지 않았다. 태희네 육 남매라고 해서 결코 저희들끼리 다 친한 것은 아니다. 다 자란 후에는 두 마리가 함께 몸을 기대어 있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육 남매 중 다른 냥이들과 종종 몸을 기대는 것은 강이뿐이다. 특히 새끼 잃은 냥이 예쁜이와는 자주 함께 있거나, 몸을 기대고 있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참 흐뭇하다.
길냥이들로 북적이던 우리 집 뒷마당엔 이제 태희네 4남매, 그리고 새끼 잃은 어미, 예쁜이만 남았다. 마음이 많이 허전한데, 그래도 나를 어설프게나마(?) 반겨주는 강이가 있어 다행이지 싶다. 초롱한 눈망울의 강이와 삼 남매(탄이, 신비, 혜교), 예쁜이만큼은 오래오래 우리 집 뒷마당에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나의 아침은 강이의 '냐냐옹~'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오랫동안 강이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늙어가는 강이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