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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Sep 06. 2019

반려동물 이야기 96

내겐 너무 특별했던 고양이 알록이(강군이)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알록이를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여름이다.


새끼 알콩이와 늘 함께 였기에 처음부터 눈에 확 띄었다. 그런데다 길냥이답지 않게 마주치자마자 내 손을 탔다. 당연하게 정이 듬뿍 쌓였고 친해졌다. 배가 한쪽만 불룩해서 어디가 아픈 게 아닌가 늘 신경이 쓰이던 차에,  다음 해 1월에 중성화 수술도 시켜줄 겸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탈장인 것 같다고 했는데 막상 배를 열어보니 헤어볼이 걸려 장이 썩어 며칠만 지났어도 위험했을 상태였다. 큰 수술이었고, 수술 후 회복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려를 딛고 5일간의 입원 후, 건강하게 퇴원을 했다.


알록이는 길냥이 시절에도 때깔이 참 고왔다. 그 당시 1년 조금 넘은 어린냥이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병원에 가기 전엔 수술 후 다시 길로 돌려보낼 생각이었지만, 큰 수술을 한 아이를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마침 같이 일하는 근로학생의 선배 학생이 입양을 하겠다고 해 고민 끝에 입양을 보냈다. 아직 학생인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딱히 입양 보낼 곳이 없었다. 20여 일을 데리고 있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키우자' '아니, 보내야 된다'로 갈등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는 뭉치를 집에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도저히 여력이 나질 않았다. 정이 들대로 든 알록이를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수술 후, 우리 집에 머물렀을 때의 사진이다. 싸복이 남매와 뭉치를 싫어해 안방에서 주로 지냈다.

그렇게 알록이는 '강군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한 번은 그 학생의 자취방에 찾아가기도 하고 마주칠 때마다 안부를 물으며 그렇게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얼마 전의 일이다. 그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알록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는 것이다. 아예 입에도 못 댄다면 문제가 크겠지만, 사료는 안 먹어도 통조림과 간식은 먹는다고 하니 별일 아니지 싶었다. 마침 너무 더운 기간이었기 때문에 더워서 그러려니 싶기도 했다. 계속 잘 지켜보란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도통 나오지 않다가 떠날 때가 다가오자 차츰 거실 탐험을 시작했다. 행복이와 안면을 트고 있는 중.

얼마 후 연락이 왔는데 사료를 바꿔주니 잘 먹는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면서. 그런데 며칠 전의 일이다. 토요일에 연락이 와서 하는 말이 아무래도 알록이가 심상치 않다는 거다. 괜찮은 듯하더니, 며칠 새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함께 병원을 갔다. 단골병원이 문을 닫은 시간이라 찾은 병원에서는 복수가 차고 빈혈도 심해 다소 심각해 보인다고 했다. 검사장비가 없으니 2차 병원을 가보라고 한다. 2차 병원은 진료비가 상당하다. 아직 학생 신분이라 돈 때문에 주저하는 아이를 병원비를 내겠다고 설득해 수원에 있는 병원에 데려갔다.


뭉치를 너무 싫어해서 보기만 하면 하악 댔는데, 얼떨결에 다정한 사진이 찍혔다. 뭉치와 고양이 별에서 다시 만났으려나.

복수에서 세균이 보이는데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배를 열고 어디에 염증이 생겼는지 확인해 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검사비만 수십만 원이 나왔는데 도저히 2차 병원의 수술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월요일까지 기다렸다 단골병원에 데리고 갔다. 돌아가는 상황은 알록이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술하다 잘못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수술조차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단골병원에 알록이를 함께 맡기고 직장에 돌아왔는데 그 학생에게 톡이 왔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알록이를 살릴 수가 없다고 했단다. 놀라 전화를 했더니 우느라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병원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막상 배를 열어보니 염증이 여기저기 다 퍼져 제대로 된 장기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안락사가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지금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라고.


책 읽는 어멍과 함께했던 알록이, 벽난로 위에 뭉치도 보인다.

예감이 좋지 않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손써볼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을 줄은 몰랐다. 우리는 함께 울며 알록이를 우리 집 마당에 묻어주었다. 알록이는 짧은 생을 마치고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했을 때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하지 않은 것도, 2차 병원에서 수술시켜주지 못한 것도, 화장도 못 시켜주고 그냥 마당에 묻은 것도, 알록이에게 모두 미안하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때 그냥 내가 거두었더라면 아직까지 잘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내 손으로 구조한 알록이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마음이 많이 아프다. 


길에서 태어나 힘든 삶을 살았을 알록이에게 강군이로 산 저 1년 6개월이 선물 같은 시간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알록(강군)아~ 고양이 별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해라~

길냥이 뭉치를 가족으로 들이면서, 알록이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면서 그렇게 조금씩 길냥이들과 삶이 엮였다. 길냥이들을 돌보는 삶이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일은 아이들과의 이별이다. 나의 삶을 변화시킨 계기가 된 뭉치도 알록이도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앞으로도 수많은 아이들과의 이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길이 험난할 것이 뻔하지만 나는 또 용기를 낸다. 

운명처럼, 인연처럼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앞으로 만날 길냥이들을 생각하면서.


알록이(강군이) 무덤에 팻말을 만들었습니다. 돌무덤을 쌓을 예정입니다.

다음 글은 예전에 <알록이편>에 썼던 글의 일부다. 알록이를 묻으면서 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맺은 연을, 거기서도 꼭 이어가자고


내겐 너무나도 특별한 길냥이, 알록이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알록이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너무 좋아하고, 노래를 불러주면 좋아했다. 케이지에 들어가는 걸 싫어해서 케이지에 넣기만 하면 울었는데, 어느 날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주었더니 신기하게도 울음을 멈추었다. 그 이후로는 자주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알록쓰 알록쓰 우리 알록쓰~ 착하고 예쁜 엄마의 고양이~' 나는 되지도 않는 멜로디에 이런 유치한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그렇게 둘이 함께 있을 때, 내가 노래를 불러주는 찰나의 순간, 우리 둘은 또 하나의 작은 우주였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그 과정에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기적이다. 과연 누가 이 아이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에 비해 값어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알록이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누구보다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이다.


알록이는 뭉치와 함께 잠들었습니다. 둘이 함께여서 쓸쓸하지 않을 거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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