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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ug 23. 2019

우리 학교의 마스코트 길냥이,
건빵이

우리 학교의 마스코트 길냥이, 건빵이

먼길 떠난 미유와 미니몽

올봄부터였을까. 우리 대학의 정문 근처에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요즘은 SNS로 소통하는 시대다. 우리 대학 학생들도 대개 학교 페북을 통해 학교 사정을 전해 듣는다. '에브리 타임'이라는 어플이 있다. 해당 대학 관계자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데, 페북과 달리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어 학생들이 즐겨 이용하는 편이다. 어느 날부턴가 정문 근처에 개냥이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페북'과 '에브리타임'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페북'도 '에브리타임'도 하지 않는 나에게까지도 친한 학생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대학 정문에 살고 있는 '길냥이'라니요. 다소 의아한(?) 장소에 자리를 잡은 고양이가 신비하기만 합니다.

정문 근처에 고양이가 산다고 했다. 개냥이 중에 개냥이란다. 그런데 임신을 했단다. 아, 이런. 명색이 캣맘인 나는 은근히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일부러 찾아가 보지는 않았다. 우리 집 길냥이만으로도 부담이 만만찮은 나는, 직장 내에 길냥이들에게는 의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정문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특별히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없었다.


아이가 개냥이다 보니, 학생들이 SNS에 사진을 많이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고양이를 발견했다. 임신한 것이 분명한 불룩한 배를 내 보이며, 어떤 학생에게 마사지(?)를 받는 중이었다. 들리던 소문대로 사람을 따르는 개냥이 중에 개냥이인 듯했다. 가까이 가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한참을 지켜보다 애써 모른 척하며 가던 길을 갔다.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세 마리는 엄마 판박이입니다.

하지만 귀에 들어오는 소문까지 막을 도리는 없었다.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어떤 학생이 집을 마련해 줬다고도 했다. 바로 옆에 매표소가 있는데, 매표소 사장님(아주머니)도 고양이를 챙긴다고 했다. 이름도 있었다. 누군가 '건빵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모양이었다. 멀리서 보면 매표소 옆에는 늘 밥그릇과 물그릇이 있었다.


가끔씩 생각했다. 새끼들은 어찌할 것인가. 저대로 놔두면 또 임신할 텐데, 내가 중성화 수술이라도 시켜줘야 하나. 아니다. 모른척하자. 중성화 수술을 위한 모금을 해보는 건 어떨까. 고양이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금방 돈이 모일 것도 같은데.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그런 일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늘 이런저런 생각뿐이었다. 내 새끼 챙기기도 바쁜 나는 그렇게 문득 한 번씩 건빵이를 떠올릴 뿐이었다.


다들 정말 깜찍합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우리 알바생에게 들은 이야기다. '건빵이'를 유난히 챙겼던 한 학생이 주축이 되어 SNS에서 모금활동을 벌인 모양이다. 벌써 목표액이 모였다고 했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줄 예정이란다. 이미 4마리의 새끼들도 다 분양을 보냈다고 한다. 건빵이의 외부 구충은 매표소 사장님이 해주고 계신단다. 밥과 물과 집은 아마도 그 학생과 사장님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건빵이 생각으로 조금은 무거웠던 나의 마음은 하늘을 날 듯이 가벼워졌다. 앞장서서 새끼들을 분양하고 모금활동도 벌인 학생이 너무도 대견했다. 같은 학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괜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직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눈이 파란 걸 보면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사진인가 봅니다.

정문 앞 버스정류장 매표소 근처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개냥이 '건빵이'에게는 어쩌면 안성맞춤의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대로와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아 위험했을 법도 한데, 새끼들이 다 무사했다니 그것도 기적인 듯싶다. 불쌍한 동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꺼이 손길을 내밀어 준 그 학생과 매표소 사장님, 또한 앞다투어 선뜻 기부에 참여한 학생들의 마음이 예쁘고 또 예쁘다. 가끔씩 지나갈 때 빈 물그릇과 밥그릇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던 나는 이제 한시름을 놓게 됐다.


학생들의 보살핌 덕에 모두들 건강하게 있다가 입양을 간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이런 마음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신보다 약하고 불쌍한 존재를 향한 연민과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아닐까. 건빵이가 오랜 시간 이곳에 살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진정한 학교의 마스코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그저 멀리서 건빵이의 집을 지켜본다.


교내 산책길에 발견한 길냥이입니다. 뒤에 집이 두 채나 있고 밥그릇도 있는 걸로 보아 역시 학생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가 봅니다. 학생들의 마음이 참 예쁩니다.

프롤로그. 

며칠 전 산책길에 건빵이의 집 옆에 새로 설치된 파라솔을 발견했다. 더울까 봐 누군가 마음을 쓴 모양이다. 파라솔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애정이 담긴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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