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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Oct 21. 2019

2019.10.5
혜교, 고양이 별로 돌아가다.

2019.10.5 혜교, 고양이 별로 돌아가다.

10월 어느 새벽, 평소처럼 산책을 하기 위해 싸복이 남매와 현관문을 나섰다. 그런데 싸이가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고 뒷마당 근처에서 자꾸만 맴돈다. 뭐가 있나 싶었지만, 너무 이른 새벽이라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알았다. 싸이가 맴돌았던 이유는 그 자리에 고양이가 죽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꼬물이 시절 태희의 모습(탄이와 미니몽도 함께 있네요~)

작년 5월 말, 미모의 고양이 태희는 뒷마당 대숲에 6남매를 낳았다. 자그마치 새끼가 6마리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데, 족히 한 달은 걸렸던 것 같다. 겁 많은 새끼 냥이답게 나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그놈이 그놈 같아 좀처럼 구분하기가 힘들었던 탓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도 혜교는 6남매 중에 가장 눈에 띄었다. 유일하게 엄마 태희를 닮아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혜교는 '혜교'가 되었다. 엄마 태희보다 훨씬 더 예쁘다는 의미에서.


엄마 태희의 미모를 능가하는 미모 뿜 뿜 리즈시절 혜교의 모습.

혜교는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 수컷인 것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져 나를 한참이나 민망하게 만들었다. 예쁜 아기 냥이 혜교는 점점 자라면서 씩씩하고 늠름한 사나이가 되어갔다. 혜교는 시크했다. 강이 처럼 나를 은근슬쩍 따라다니지도, 탄이 처럼 나만 보면 하악 거리지도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나를 보고 놀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마치 '너는 네 일을 봐. 나는 내 일을 볼게' 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혜교 사진이 나에게 비교적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멍 너는 사진을 찍든지 말든지 나는 그저 집을 지키련다.

태희네 6남매가 태어난지도 어언 1년 6개월이 되었다. 꼬물이 냥이들이 모두 어른이 되었다. 건이는 아기 때 고양이 별로 돌아갔고, 미니몽은 올여름부터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 남은 건 강이, 혜교, 탄이, 신비 4남매뿐이었다. 남겨진 4남매를 보는 나의 마음은 헛헛했다. 집 안에서 같이 사는 건 아니어도, 꼬물이때부터 일 년 넘게 보아 온 아이들이다. 정이 들대로 들었는데, 내 손으로 거두어 키운 거나 진배없는데, 어딘가 아파도 쉽게 알아챌 수도 도움을 주기도 어렵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늘 안타까움이 담길 수밖에 없다. 


지금 이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혜교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나는 아침마다 통조림을 하나씩 뜯어 남은 4남매에게 먹인다. 길냥이에게 통조림을 자주 주는 게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랜 시간 길냥이들을 지켜본 나의 생각은 다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게 길냥이들의 험난한 인생길이다.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 집에 있는 동안은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의 맛난 통조림이 이 아이들에게는 마지막 성찬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3남매가 통조림 한 숟가락 얻어먹어 보겠다고 보일러실 문 앞에서 대기 중입니다. 

통조림은 친해지는 데 제법 효과가 좋았다. 아침에 사료를 담으러 보일러실에 들어가면 문 앞에 4남매가 대기를 하고 있다. 평소에 내 손을 타지 않고, 다가가면 줄행랑치는 아이들이다. 4마리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그렇게 내게 출근도장을 찍는다. 남아있는 4남매가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했다. 혜교는 다른 아이들보다 통조림 앞에서 좀 더 적극적이었다. 한 숟가락씩 아이들 앞에 놓아주곤 했는데, 혜교는 유일하게 손을 이용해 다른 아이들의 통조림을 가로채곤 했다.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혜교는 적극적이고 씩씩한 사나이였다.


저 여자가(?) 통조림을 줄 시간이 되었는데 왜 안 주는 거지? 하는 눈빛이네요. 

산책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것이 고양이 시체라는 것을, 가까이 가보지 않아도 그 아이가 혜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준 통조림을 손으로 채가던 혜교였는데,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혜교는 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일까. 혜교의 배는 아직 채 굳지 않아 말랑말랑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일어날 것만 같았다. 길냥이 답게 너무 시크해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던 혜교를 나는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혜교는 떨어지는 내 눈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우리 집 뒷마당 '냥이 천국'에 묻혔다. 


다른 남매에 비해 혜교 사진이 저에게 참 많네요. 다행입니다.

혜교의 죽음은 너무도 갑작스러웠고 큰 슬픔이었지만, 한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길냥이들은 죽을 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애지중지 한 길냥이와 이별의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도,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는 현실은 캣맘들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래도 혜교는 묻어줄 수 있었고,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지 않았는가. 어쩌면 혜교는 마지막 순간에 나와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최근의 혜교의 모습, 6남매 중에 덩치도 제일 크고 씩씩한 어른 냥이로 자라났습니다.

울고 짜며 혜교를 묻어주고 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싸복이 남매가 어멍이 뭐하나 싶어 머리를 울타리에 박고 집중하고 있다. 엉엉 울다가 싸복이 남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빵 터졌다. 그 순간에 생각했다. 삶은 이런 거구나. 울다가도 웃을 수 있는 것. 슬퍼도 기쁠 수 있는 것. 고통스러워도 살아야 하는 것. 남은 사람의 일상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 혜교는 먼길을 떠났다. 남은 3남매도,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도 언제 가는 내 곁을 떠나갈 것이다. 누군가는 가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남는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를,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갈 테지.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싸복이 남매는 어멍이 오래도록 도대체 뒷마당에서 뭘 하는 건지 궁금, 또 궁금합니다.

"혜교야. 너희들 6남매 덕에 나는 참 행복했어 작년 더운 여름날, 창문 밖으로 꼬물거리는 너희들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지.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어. 너와 보냈던 1년 6개월의 시간을 결코 잊지 않을게. 네가 한때 반짝거리는 모습으로 이 지구별에 머물렀음을 영원히 기억하는 한 사람이 될게. 언젠가 우리, 무지개다리 건너는 날 다시 만나자. 사랑해. 


우리 집 뒷마당에 잠든 아이들을 위해 팻말을 만들었어요. 이렇게라도 오래오래 이 아이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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