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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Dec 27. 2019

점심 산책길의 인연,
길냥이 깜장이 이야기

나는 점심에 도시락을 싸올 때가 많다


혼자 먹어 외롭긴 하지만, 밥 먹는 시간을 줄여 산책하는 즐거움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주로 가는 산책길이 있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천변길이다. 가끔 한 번씩 그 길에서 길냥이들을 보았지만, 우리 집 길냥이들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운 나는 특별한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어떤 날엔가는 어느 집 마당에서 어미와 새끼 냥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 집에서 키우는 건 아닌 것 같았고, 그 집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예뻐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종종 그 길에서 길냥이들을 만났다.


햇볕 좋은 어느 날, 길에서 일광욕 중인 냥이들. 대체로 이 동네엔 까만 냥이들이 많다. 조상을 따져보면 다 같은 식구가 아닐까^^

어느 날, 하루아침에 천변 집들이 싹 철거가 되었다. 아마도 재개발 예정이었던 모양이다. 집들이 철거된 후, 산책길에 길냥이들이 더 많이 보인다. 아마도 그 집들 어딘가에 숨어 살던 아이들이 집이 없어진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일 거라고 짐작했다. 곧 날이 추워질 텐데 허허벌판에서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내가 뭘 해줄 수 있겠는가. 다행인 것은 이 동네에도 캣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군데군데 고양이 밥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우연히 길을 걷다. 콘크리트 하수구 같은 곳에 어미냥과 새끼 냥이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도로부터 두세 걸음쯤 떨어진 풀밭이라 사람들의 눈에 좀처럼 띄지 않는 곳이다. 호기심에 다가가 보니, 어라, 어미 냥이 내 손을 스스럼없이 탄다. 새로운 묘연(猫緣)이다. 나머지 새끼는 다 죽고 한 마리만 남은 모양이다. 부쩍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평소처럼 쉽게 외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 손을 타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게 이 아이는 다소 성의 없는 이름, 위아래로 다 까매서 '깜장이'로 불려지게 되었다.


 저 안에서 잠을 자는데, 다행히 관이 길어 깊이 들어가면 추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여요. 캣맘이 헌 옷가지도 깔아줬어요.

다행히도 집 앞에 캣맘이 놓아준 사료그릇이 있었다. 물그릇이 따로 없어 다음날 바로 안 쓰는 컵을 가져와 물그릇을 만들어 주었다. 도시락을 먹는 날엔, 물그릇을 채워주기 위해 어김없이 깜장이에게 들린다. 점심에 일이 생겨 이틀 이상 산책을 할 수 없는 날엔, 물도 못 먹을 깜장이가 걱정되어 잠깐 짬을 내어 들르기도 한다. 그렇게 만날 때마다 간식이나 통조림을 주는데, 낯가림이 심한 새끼냥도 적절한 거리만 유지하면 내가 주는 통조림을 받아먹기도 한다. 그 모습이 여간 예쁜 게 아니다.


깜장이 새끼. 처음 봤을 땐 완전 애기였는데 요사이는 제법 많이 컸더라고요^^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 하나. 예방접종도 시켜주고 싶다. 추운 겨울을 잘 날 수 있을까.' 나의 맘 속에는 또다시 깜장이를 향한 안타까움과 작은 걱정들이 피어난다. 일단은 아직 아기 냥이 어리니, 엄마와 단둘이 체온을 나누며 겨울을 무사히 나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가끔씩 산책길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가슴이 철렁하곤 한다. 이런 날은 산책길이 결코 즐겁지 않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다시 만나면 또 얼마나 반가운지.


둘이 함께 있으니, 겨울을 무사히 잘 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봅니다.

마음에 근심이 또 하나 늘었지만, 얼마 되지 않는 점심시간, 깜장이 모녀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무척 설렌다. 오늘은 깜장이와 새끼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팍팍한 직장생활 속 소소한 즐거움이다. 며칠 전 일이다. 직장일이 꼬일 대로 꼬여 오전에 나는 이미 멘탈붕괴 상태가 되었다.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고, 두뇌가 정지된 듯했다. 점심을 먹고, 깜짱이 모녀와 잠깐 노닥거리고 나니 거짓말처럼 다시 기운이 셈 솟는다. 이렇게 다시 리프레시한 후, 오후에는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었다. 깜짱이 모녀가 나에게 마법을 부린 셈이다.


처음부터 덥석 제 손을 타더군요. 깜장이 너란 냥이, 캣맘을 알아보는 똘똘한 냥이.

깜짱이 모녀와 노닥거리느라, 나의 소중한 산책시간이 확 줄어들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즐겁다. 길냥이가 사람 손 타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데, 나에게 인사를 건넨 깜장이가 예쁘고 또 예쁘다. 올봄에 그 길에서 만나 한 번 인사를 나누었던 길냥이가 있는데, 그 냥이가 깜장이가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그 당시에도 처음 보는 길냥이가 내 손을 탄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 새끼가 부쩍 자랐다. 요사이 못 만나는 날이 잦았는데 잘 지내는지 걱정이다.


4월에 이 길에서 만난 냥이 사진. 비슷한 자리에 상처가 있는데 깜장이가 맞지 싶다. 우리의 인연은 이때부터였던가 보다.

나와 타인과의 인연, 나와 동물 사이의 인연,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이 씨줄과 날줄로 교묘하게 엮어져 나의 삶을 수놓는다.
어떤 인연은 나를 떠나가고, 또 새로운 인연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난 오늘도 새로운 냥이와 인연을 맺는다. 나는 이렇게 캣맘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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