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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an 22. 2020

태희네 육 남매, 길냥이 신비 이야기

길냥이 태희가 뒷마당 대숲에 6마리를 새끼를 낳은 것이 벌써 2년 전 봄 이야기다.


세 마리도 네 마리도 아닌 6마리라는 사실에 기함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그 사이 건이, 미니몽, 태희가 고양이 별로 떠나고, 이제 우리 집 뒷마당에 살고 있는 건 탄이, 신비, 강이 세 마리뿐이다. 그중 신비는 6남매 중에 맏이다. 엄밀히 말하면, 태어나는 순서를 본 것이 아니니 누가 맏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나는 신비를 늘 맏이라고 생각했다. 꼬물이 아기 시절, 신비가 덩치가 제일 컸기 때문이다. 


태희와 육 남매가 온전히 한 프레임에 담긴 유일한 사진이다. 삼 남매가 고양이 별로 돌아갔기에 이 사진이 더 애틋하다.

신비가 '신비'가 된 이유는 테비 종인 엄마 태희를 전혀 닮지 않은 데다, 나머지 5남매와도 닮은 곳이 전혀 없어, '참으로 신비한 일이구나' 싶어서였다. 나머지 태희네 5남매는 엄마를 전혀 닮지 않았어도, 은근슬쩍 지들끼리 생김새가 닮아있다. 그래서일까. 유심히 지켜보면, 신비는 언제나 독립적이다. 아기 때도 5남매와 따로 떨어져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고, 성인이 다 된 지금도 좀체 다른 남매인 강이나 탄이와 어울리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의 신비 모습. 남은 삼 남매 중 덩치가 제일 작고 말라 늘 안쓰럽다

수많은 길냥이들이 우리 집 밥을 먹고 있지만, 뒷마당에 살림을 온전히 차린 건, 태희네 삼 남매 '강이, 탄이, 신비'와 새끼를 전부 잃은 비운의 어미냥 '예쁜이' 뿐이다. 강이와 탄이와 예쁜이는, 서로서로, 때로는 셋이 다 함께 어울릴 때가 많다. 잠도 같이 잔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주말에 종종 훔쳐보면, 둘 또는 셋이 몸을 기대고 쉬고 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반면 신비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강이, 탄이, 예쁜이'는 통조림을 앞에 두고도 서로 양보하며 나누어먹을 만큼 사이가 좋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2개월령의 꼬물이 시절 사진. 엄마냥 태희와 탄이, 미니몽, 신비의 모습이다. 

당연히 '강이, 탄이, 예쁜이' 보다 훨씬 나를 경계한다. 강이나 탄이는 내 손을 타진 않아도, 은근슬쩍 나를 따라다니고, 내 앞에서 통조림도 곧잘 먹는다. 반면 신비는 통조림을 따도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최소한 2미터 이상의 경계는 늘 유지한다. 아마도 나에게 2번이나 붙잡혀 병원에 다녀왔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다른 남매는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 위해 1차례 잡았을 뿐인데 신비는 어릴 적에 허피스에 심하게 걸려 한 번 더 병원에 데려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나 경계가 심한지,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 위해 덫을 놓았을 때는 좀처럼 잡히지 않아 오랜 시간 내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맨 마지막에 극적으로(?) 간신히 잡아 중성화 수술을 시켜줄 수 있었다.


허피스에 걸려 병원에 가기 직전의 사진을 찾았다. 병원에서도 어찌나 사납던지(?) 주사도 간신히 맞혔던 기억이 난다. 

태희네 육 남매는 엄마에게 내쳐지고 추운 겨울이 오자 모조리 일종의 감기라고 할 수 있는 허피스에 걸렸다. 그중에서도 신비가 가장 많이 아팠다. 결막염이 심해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해 보다 못한 내가 병원에 데려갔다. 아직 아기 때라 어이없게도 뜰채로 쉽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항생제 주사를 맞고 와서도 쉽게 낫질 않아 저러다 죽지 싶었는데, 다행히도 잘 커주었다. 


아직 어린 시절 신비, 탄이, 그리고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혜교의 모습이다.

경계가 심하고, 나에게 곁을 주지 않는대도 신비와 은근슬쩍 정이 많이 들었다. 의외로 가장 자주 마주치기 때문이다. 일단, 신비는 집순이다. 외출이 잦은 다른 남매들과 달리 신비는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다. 부엌 창문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신비의 집이 있다. 작년 겨울엔 태희네 육 남매에 예쁜이까지 모두 7마리의 냥이들이 자곤 했던 집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각각 뿔뿔이 흩어졌는데 신비는 그 집을 유독 좋아한다. 한낮에도 대개 집 안에서 '방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밥을 주는 시간이 아닌 때 뒷마당에 가면, 매번 만나는 것도 신비다. 


여러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베란다와 차양이 딸린 최고급 사양(?)으로 재탄생한 신비의 전용 집이다.

어릴 때 발육이 남달랐던 신비는 어른이 된 후에는 반대로 남매들 중 가장 체격이 작다. 허피스를 심하게 앓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항상 아웃사이더처럼 혼자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잠자는 시간이 많은 것도 걱정스럽다. 신비에게 늘 마음이 쓰이는 이유다. 육 남매 중 삼 남매를 떠나보내고 나니, 남아 있는 삼 남매에 대한 애틋함이 더 크다. 부디 남은 세 마리는 길냥이 평균수명이라는 3년을 훌쩍 남기도록 건강하게 살아남길 바라고 또 바란다.


이년 전 무더운 여름날, 어미냥 태희와 꼬물이 육 남매는 늘 부엌 창문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고 노닥거렸다. 그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 그 시절 큰 즐거움이었다. 경계가 너무 심해서 조금이라도 인기척을 내면 모두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에 나는 늘 아주 불편한 자세로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으며 오랜 시간 아이들을 지켜보곤 했다. 싱크대에 올라선 채 말이다. 가끔 이 년 전 여름을 떠올린다. 꼬물이 육 남매와 이들을 훔쳐보던 내 모습을. 태희를 만난 것, 육 남매의 성장을 지켜본 것, 그것은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 생애 반짝반짝 빛나는 수많은 순간들 중 하나가 되었다. 육 남매에게 고맙다.

 

집에 온전히 머무르는 주말 나는 종종 부엌 창문을 열어 신비의 동태(?)를 감시한다. 매번 눈이 마주 칠마다 여전히 신비는 나를 경계하며 째려(?) 본다. 반면 신비를 바라보는 내 눈에는 꿀이 흐른다. 신비를 향한 나의 짝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신비가 언제쯤 내게 마음을 열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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