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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ug 02. 2019

하늘이와 어멍의 수난기

그 마지막 이야기

탐정이 놓은 덫에 걸린 후, 겁을 먹고 곡소리를 내던 하늘이는 집에 들어와서 방안에 풀어주니, 언제 내가 어멍을 피해 다녔냐는 듯, 배를 까뒤집고 얼굴을 부비부비, 애교가 하늘을 찌른다. 하늘이를 다시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손바닥 뒤집듯 태도가 돌변한 하늘이의 모습을 보며 완전히 어이가 상실될 지경이었다. 뿐 아니었다. 싸이와도 어찌나 애정 뿜 뿜 '러브러브 모드'를 보여주는지. '아니 그러게 문이 좀 열렸기로서니, 집은 왜 나갔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다 계속해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가 따갑도록 야옹야옹거린다. 샤워를 하러 들어갔을 때는 점입가경이었다. '어멍 어디갔나며, 빨리 나오라며' 한층 더 시끄럽게 냐옹거린다. 수건을 집기 위해 문을 빼꼼 열었을 때는 아예 샤워부스 안으로 밀고 들어올 기세였다. 


싸이와 하늘이는 이제 자는 모습도 닮아간다

하늘이의 가증스러운(?) 무한 애교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잠깐이라도 마당에 나갈 때마다 아주 곡소리가 나도록 울어댔다. 빨리 들어오라는 것이다. 나만 혼자 두고 니들끼리 무엇하냐는 거다. 하늘이는 그렇게 딱 이틀 동안 주야장천 나를 따라다니며 야옹거렸다. 내게는 그 냐옹 소리가 이렇게 들렸다. '어멍 미안해~ 속 썩여서 미안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이젠 안 그럴게~' 이번 참에 고양이를 왜 요물이라고들 하는지 뼛속 깊이 체험했다. 하늘이는 집 밖을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던 오리지널 집냥이로 금방 되돌아왔다. 이대로 길 생활에 적응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다 죽어가던 나도 다시 살아났다.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왔던 얼굴도 생기를 되찾았고, 입맛도 다시 찾게 되었다.


무릎 좋아하던 개냥이에서 일반 냥이로 진화(?)하긴 했지만 어쩌다 한번, 가뭄에 콩 나듯 무릎에 올라온다.

하늘이가 다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데는 함께 마음을 써주었던 친구들 덕이 크다. 내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모아 도와주었다.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우리 학생들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된 것 같다. 나는 이제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하늘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준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에는 가뭄에 콩 나듯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놀아줬는데, 이번 참에 반성을 많이 했다. 하늘이가 없는 동안 나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 덕에 '나이 먹어서도' 멈춰있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듯싶다. 다행이다. 

'착하게 살기로 한' 하느님과의 약속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아이러니 하지만 나는 신도 믿지 않고 종교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히 착하게 살 방법이 마땅찮아 '고양이 보호협회'에 정기적으로 일만 원씩 기부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조금씩 기부를 하고 있긴 한데, 정작 유기동물을 위한 고정적인 기부는 하지 않고 있었다. 한 달에 만원으로 저 약속을 '퉁'치기로 했다. 뭐, 어쨌든 좋은 일 아니겠는가.


뭉치가 하늘에서 내게 보내준 귀한 선물,  하늘이와 허락되는 시간이 길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고양이 탐정의 조언으로 창문마다 방묘 틀을 설치했다.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인데, 고양이가 방충망을 뜯거나 열고 도망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거금을 들여 현관 중문도 바꿨다. 그전에는 미닫이 방식이어서 싸이와 뭉치가 문을 열 수 있어 늘 불안했다. 열기 어려운 여닫이에 손잡이도 '비정상적으로(?) 똑똑한 동물이 아니고선' 열 수 없는 걸로 바꾸었다. 인테리어를 전혀 고려치 않아 '멋없는 중문'이 되었지만 마음은 지극히 편해졌다. 지출이 너무 커서 등허리가 휘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동안 벼르고만 있었던 캣타워도 주문했다. 그것도 몹시 비싼걸로다가. 


짜잔~ 새롭게 설치한 중문

이번 사건 이후로, 하늘이와 부쩍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아울러 아주 사소한 실수가 함께 사는 동물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이번 참에 몸과 맘으로 배웠다.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누군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했다. 내가 동물들에게 마음을 쓰는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라고 믿고 싶다.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뒷마당의 길냥이들과 함께 하는 나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든지 간에, 늘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하늘이는 나를 성장시키는 특별한 고양이다. 동물들 덕에 나는 진정한 '어른' 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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