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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Dec 17. 2019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 19

위기의 너구리, 구조되다

너구리인지 오소리인지, 이젠 우리 집에 자리를 잡았다.


여러 가지로 걱정스러운 마음도 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내가 겁을 주거나 해코지를 해서 쫓아버릴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하루 이틀 예쁜이(길냥이) 전용집에서 자는가 싶었는데, 이젠 보일러실에 자리를 잡은 듯했다. 어느 날 아침에 보일러실에서 만났는데 나를 보더니 구석으로 숨는다. 좀 살펴볼까 싶어 자세히 보니 피부가 심상치가 않다. 털이 듬성듬성 빠져있는 것이 건강한 너구리로 보이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맘이 들었지만 보일러실이 어두워서 더 이상은 살펴볼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하루 이틀 뒤의 일이다. 근무 중에 일이 있어 집에 잠깐 들렀는데 마당에서 싸복이 남매가 난리가 났다. 길냥이가 앞마당으로 진출했나 싶어 나가 봤는데, 웬걸 너구리가 나타난 것이다. 놀라 도망을 치는데, 도망치는 발걸음이 심상치가 않다.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게다가 밝은 곳에서 보니 털이 온통 다 빠졌고 흡사 피부가 거북이 껍질처럼 딱딱해져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바로 알았다. 어딘가 아프구나. 그것도 아주 많이.


너구리가 원래 이리 예쁜 것을, 털이 없으니 어찌나 딱하던지요.

이후로 고민이 시작됐다. 저걸 어쩌지.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단골병원 쌤이 너구리를 치료해 본 적이 있을까. 아니 근데 내가 들짐승 아픈 것까지 돌봐야 하나. 그렇다고 모른 척 하기에는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였다. 보일러실에 아예 살림을 차린 것 같은데, 내가 매일 보는 아픈 저 아이를 외면할 수 있을까. 다음날도 역시 보일러실 고양이집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미동조차 없다. 저러다 죽으면 어쩌지. 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같이 일하는 근로학생들에게 이야기하니, 한 학생이 '야생동물구조협회'라는 곳이 있다고 냉큼 알려준다. 아하, 아픈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해주는 협회가 있었구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막상 병든 너구리를 만났을 때는 생각을 연결시키지 못했다. 이래서 고민거리는 나누어야 하는 것일 테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행히 병든 너구리가 활동성이 떨어져 그저 보일러실 문을 잠그는 것 만으로 가둘 수 있었고, 전화 한 통에 바로 구조협회에서 달려와 너구리를 구조했다.


기력이라곤 하나도 없더라고요. 안쓰럽게도.

다 죽어간다고 생각했던 너구리는 개선충이라는 피부병에 감염된 것이라고 한다. 너구리들 사이에 흔한 병이라고. 생각보다 심각한 건 아니어서 이 정도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란다. 안쓰러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한시름 놓았다. 병이 다 나으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고. 개선충은 전염병인 데다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해, 협회에 보호하고 있는 너구리들이 아주 많다는 이야기를 보너스로 들려주며 돌아갔다.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마음이 훌쩍 가벼워졌다. 부디 건강해져서 오래오래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기를 바란다.


개선충은 고양이나 사람들에게도 전염이 된다고 해서 본의 아니게 대대적으로 보일러실을 청소했다. 혹시 고양이들에게 옮았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며칠 지켜보니 모두들 건강한 것 같다. 졸지에 너구리에게 집을 뺏긴 예쁜이도 걱정이었는데, 예쁜이는 다행히 강이,탄이 남매가 함께 자는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얘네들은 작년 겨울에도 한 집에서 자던 흐뭇한(?) 사이였는데, 다시 따뜻한 겨울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중이다.


너구리가 원래 살던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 집이 산 바로 밑에 집이긴 해도, 여기가 어떻게 동물들의 천국인 줄 알고 찾아왔을까. 너구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귀인이 아닐까.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 동안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들짐승들의 생과사에 까지 내가 관여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잠시 스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먹이를 찾아 우리 집에까지 온 것은 아마도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물을 모른 척하지 않는 일, 아마도 그게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사는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닐까.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 생긴 변화가 아주 많다. 그중 으뜸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나는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 그 사실이 가끔 묘하게 위안이 된다. 


먹이를 대 놓고 주고 있으니, 아마도 계속해서 동물들이 꼬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번에 어떤 동물을 만나게 될까. 특별한 인연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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