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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Oct 16. 2020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시나요?

얼마 전에 친한 직장동료가 말한다.


와이프가 요즘 '나이가 드니까 나무가 좋아지네.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라는 말을 자주 한단다. 그 와이프의 성품을 알고 있는 나는 말했다. '귓등으로도 듣지 마. 절대 단독주택에 살면 안 돼. 너만 개고생 한다고. 나 고생하는 거 봐서 알지?'라고.


저렇게 말했지만, 나 역시도 '나무를 보고 싶어서' 마당 있는 집 살이를 자처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꽃과 나무로 가득 찬 정원, 그것이 나의 로망이었다. 마당 있는 집을 꿈꾸었던 커다란 이유 중 하나다. 집을 사고 몇 년 동안, '로망'을 이루기 위해 참 부지런히 꽃과 나무를 심었다. 이사 초기 우리 집 마당 사진을 보면 훵하니 비어 있는데, 지금은 꽃과 나무로 가득 차 있다.


바깥길보다 마당이 높아, 집안이 보이는 걸 막기 위해 심은 조팝나무. 역시 쑥쑥 자라 매년 2~3번씩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처음엔 그저 좋았다. 나무가 어서어서 자라 그늘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몇 년이 지나자,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무는, 자라도 너무 빨리 자란다는 사실을. 마당이 나무로 뒤덮여 사라지는 매직(?)을 보고 싶지 않다면 틈틈이 잘라주고 다듬어 줘야 한다는 사실을. 그저 꽃과 나무는 감상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던 시절에는 결코 몰랐던 사실이다(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고 대책 없었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능소화를 너무너무 좋아했다. 늦여름 우연히 길을 걷다, 담장에 능소화가 늘어선 집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저렇게 우아하게 늘어져 있는 아름다운 꽃나무가 있었다니. 이사 오고 몇 해가 지난 후 나는 드디어 꿈꾸던 능소화를 심을 수 있었다(생각보다 비싸서 좀 망설였다). 처음엔 드디어 내 집 마당에서 늘어진 능소화를 볼 수 있구나 싶어 마음이 들떴다. 저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고 능소화가 무섭게 자라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타고 올라갈 곳이 없어졌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울타리를 높였다. 높인 울타리 키도 넘어가기 시작하자 마구잡이로 늘어지기 시작한다. 통행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철사와 집에 있는 도구들을 이용해, 대충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 아마추어가 대충 땜빵한 지경이고 보니 울타리는 쓰러지기 직전이요. 구조물 또한 언제 쓰러질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정작 능소화 꽃은 별로 즐기지도 못하고, 볼 때마다 '쓰러지면 답이 없는데' 싶어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울타리 무너지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이는^^ 무성한 능소화나무

두 번째 예를 들어볼까. 내가 가진 예산으로 구입할 수 있는 집은 한계가 있었다. 무리해서 대출을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몇 가지 맘에 드는 사실만 가지고 이 집을 덜컥 사버렸다. 그중 하나가, 뒤뜰의 대나무 숲이다. 부엌 창문으로 대숲이 보이는 집이라니. 대숲에 물까치가 떼를 지어 노는 풍경이라니. 낭만도 이런 낭만이 있을까 싶었다. 바람결에 대나무 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어떤 음악보다 달콤하게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대나무에 꽂힌 나는 심지어 앞마당에는 '세죽'을 심기도 했다.


대나무에 대한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대나무 역시 자라도 너무 빨리 자란다. 그뿐 아니라, 번지기는 왜 그리 잘 번지는지. 대나무가 자라선 안 될 공간까지 뿌리를 내리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쭉쭉 길게 뻗어나간 대나무는 비나 눈이 많이 내리고 나면 축 늘어져 통행을 방해한다. 한 해에 몇 번씩 대나무를 잘라줘야 하고, 엉뚱한 곳에 번진 대나무는 약을 발라 죽여야 한다. 


대나무만 베어낸다고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베어낸 대나무는 어찌할 것인가. 태울 도리밖에 없는데, 이 작업 또한 만만치 않다. 일찍이 옆집 할머니가, 약을 발라 죽이라고 조언을 하셨다. 그때는 속으로 '아니 왜 이렇게 예쁜 대나무를 죽여. 뭔 헛소리 담' 했었는데. 지금은 할머니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 무한정 번져가는 대나무에 열심히 약을 바르고 있는 중이다. 


대나무 전지의 참혹한 현장^^

앞마당에 심은 세죽도 큰 말썽이다. 번식력이 너무 강해, 다른 나무 자리까지 치고 들어간다. 파죽지세로 자라 몇 년 후면 내가 심은 다른 식물들이 다 세죽에게 밀릴 판이다. 이제와 캐버릴 수도 없고(뿌리가 엉겨있어 완벽히 캐는 것이 불가능하다), 죽일 수도 없다(약을 치면 다른 나무도 같이 죽는다). 진퇴양난은 이럴 때 쓰는 단어 아니겠는가. 도대체 내가 왜 돈을 주고 사서 세죽을 심었는지 후회막심이지만, 뭐, 이제는 돌이킬 수도 무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험한(?) 전지작업 중인데도, 도망갈 생각이 1도 없는 예쁜이(우리 많이 친해진 거지 ㅎㅎ)

처음 대숲을 보고 사랑에 빠졌던, 감탄사를 내뱉으며 능소화를 즐기던, 아무것도 모르던(너무 무식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이제는 대숲을 보면 한숨이 먼저 나오고, 능소화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올겨울엔 엔진톱도 하나 구입할 예정이다. 울타리 바로 밖의 뽕나무가 너무 자라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그간 미니 전동톱이나, 그냥 톱으로 전지를 해왔는데 한계에 이르렀다. 하다 하다 이제 엔진 톱질까지 하게 되는구나 싶다. 예초기를 처음 돌렸을 때도 신기했다(내가 예초기를 와우~). 이제 예초기쯤은 식은 죽 먹긴데, 이러다 엔진톱까지 능숙하게 다루며 '걸 크러쉬'를 뽐내게 되지 않을는지.


빨래가 바람에 너울거리고 싸복이 남매가 망중한을 즐기는 휴일 낮 마당 풍경이 참 좋다

내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꽃과 나무를 열심히 심으라고 등 떠민 사람은 없다). 직장생활에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뒤뜰 냥이에 동네 냥이까지 돌보느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판국이다. 솔직히 때때로 힘에 부칠 때가 많다. 따지고 보면 실제 집에 머무르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하루에 단 몇 분, 마당을 바라보며 '참 좋다'라고 느끼는 저 몇 분 때문에 이런 모진 고생을 자초하는 있는 꼴이다.


평안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만 들어가고 싶은데 어멍이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니 널브러져 시위하는 중임.

그래도 누군가 내게 '그래서 후회하느냐'라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부지런히 마당을 가꾼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생기면 꽃씨를 뿌리고, 마당을 이렇게 바꿔볼까 저렇게 바꿔볼까 늘 요리조리 궁리 중이다. 시시각각 자연의 변화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인 마당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외출 냥이 뭉치와 싸복이 남매가 마당에서 함께했던,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에 간직할 수 있는 기쁨은 덤일 것이다. 


내 집 마당에서 책 읽는 풍경, 그 곁에 강아지들. 내가 꿈꾸던 대로 살고 있는데 ㅎㅎ 나는 행복한 걸까?

여기 내 집은 공을 들여 가꾼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다. 나는 여기서 일을 하고, 자연을 느끼고, 삶을 가꾼다. 체력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내 마당, 여기 나만의 공간을 잘 가꿔나가고 싶다.


앞으로도 쭈욱 나무와의 전쟁은 계속될 예정이다.


이젠 더 이상 은행을 안 거두겠다고 해놓고 올해도 저 짓을 하고 있는 중, 나는 어쩔 수 없는 마당 있는 집 체질인가 보다.

나무를 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고 있는가. 정원사를 고용할 수 있는 팔자 편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 번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길.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리는 순간, 그것은 쓰나미 일거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꼭 나무를 보고 싶다면, 내 집 마당 밖에(?) 있는 나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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