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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r 20. 2020

반려동물 이야기 106

'강이, 탄이, 예쁜이 트리오'의 수난시대

우리 집 뒷마당엔 길냥이 탄이, 강이, 신비, 예쁜이가 살고 있다. 


뒷마당 대숲에서 태어난 태희네 남매 강이, 탄이, 신비와, 뒷마당에서 낳은 세 마리 새끼를 모두 잃은 비운의 어미냥 예쁜이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중 신비는 이 구역의 '아싸'인데 반해(전혀 다른 남매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이 시크하게 혼자 논다), 강이, 탄이, 예쁜이는 셋이 늘 함께 어울려 지낸다. 나는 얘들을 줄여 '강탄 예삐 트리오'라고 부른다. 


재작년 여름, 예쁜이와 새끼 살구, 자두, 앵두의 모습. 삼 남매는 모두 아기 때 고양이 별로 떠나고 우리 집엔 예쁜이만 남았다.

올 겨울 들어 얘들은 보일러실에 자리를 잡았다. 뒷마당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겨울은 보일러실에서 지내라고, 오랜 시간을 들여 드나들기 편하게 만들기도 한 터였다. 나는 보일러실에 자리를 잡은 아이들을 위해, 방석도 갖다 놓고, 스크래처도 사놓고, 나름 정성을 들여 보일러실을 꾸며 주었다. 손을 전혀 타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매일 아침이면 보일러실 앞에서 통조림을 받아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 일상은 유일하게 우리가 소통(?)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보일러실 앞에서 통조림을 기다리고 있는 탄이와 강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통조림을 주고 있는데 평소와 달리 안절부절 경계가 심하다. 보아하니 2~3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레이가 훔쳐보는 중이다. 그레이는 적어도 몸무게가 10kg 이상은 되어 보이는 회색의 자이언트(?) 수컷 고양이다. 우리 집에서 밥 먹은 지는 꽤 되었는데, 자주 볼 수 없어 그저 좀 멀리 사는 애인가보다 싶었던 냥이다. 상황이 수상쩍어 이후부터 유심히 지켜보니 그레이가 언젠가부터 '강탄예삐 트리오'를 공격하며 영역다툼을 시작한 모양새다. 그 후로 한 밤중에 보일러실에서 육탄전이 벌어지는 듯한 비명소리도 몇 차례 들었다.


사진첩을 뒤지고 뒤져 이 년 전쯤 찍은 그레이 사진을 한컷 찾았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체격이 장난이 아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가 키우는 냥이나 다름없는 우리 집 뒷마당 터줏대감 '강탄예삐 트리오'가 공격을 받기 시작하니 그레이 이넘의 거대 냥이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아침에 가보면 보일러실에 턱 하니 버티고 있는 걸 쫒아내 보기도 하고, 대숲에 숨어있을 때 돌멩이를 던져도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마침내 '강탄예삐 트리오'는 완전히 보일러실을 그레이에게 빼앗겼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제대로 빼낸 것이다. 따지고 보면 3대 1, 누가 봐도 우리 집 아이들이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데, 얘들이 순해 빠져서 인지 모두들 체격이 작아서인지 그레이에게 제대로 당한 모양새다. 어찌나 그레이가 심하게 괴롭혔던지 이제는 아예 통조림을 따도 보일러실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특히 수컷인 탄이가 더욱 심하다. 셋 중 유일한 수컷이라고 가장 심하게 공격을 한 듯 싶다.


그래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어디 멀리로 가지 않고 세 마리가 함께 뒷마당의 다른 구역 '냥이 천국'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이다. 냥이 천국은 앞마당과 뒷마당의 연결 부분으로, 장작더미가 쌓여 있고, 그동안 무지개다리를 건넌 냥이들이 잠들어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내가 '냥이 천국'으로 이름 붙인 장소다. 평소에도 햇살 좋은 날에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길 좋아했던 '강탄 예삐 트리오'는 이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문제는 유심히 지켜보니, 밤에도 그냥 그 자리에서 자고 있는 듯 싶은 것이 아닌가. 아니, 얘들이 노숙을? 추위가 조금 물러갔다고는 하나 아직은 밤에는 제법 추운 계절이 아니던가.


이날 아침엔 탄이가 일등으로 기상했다. 보통 어멍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강이다.

뒷마당에 스티로폼 집이 한두 채가 아닌데, 최대한 그레이로부터 멀찍이 도망을 가려다 보니 다른 집에는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급한 데로 집에 있는 물건(야외용 미니 식탁, 우산, 안 입는 겨울 외투 등)들을 가지고 장작더미 위에 집을 만들어주었다. 만들면서 안 들어가면 어쩌나, 괜히 부산을 떨어 다른데로 쫓는 꼴이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도 얘네들도 많이 추웠는지, 바로 집안으로 쏙 들어간다. 이젠 밤마다 이 집에서 셋이 꼭 붙어 자고, 한낮에도 종종 보면 장작더미 위에서 낮잠을 즐긴다.


삼위일체 셋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종종 셋이서 저렇게 몸을 포개고 있는데 보아도 보아도 참 예쁘다.

안 그래도 새끼 모두 잃은 예쁜이와, 형제 잃은 강이탄이 남매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안쓰러움은 배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레이도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 해코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엊그제의 일이다. 급식대 앞에서 강이에게 통조림을 먹이고 있는데, 또 강이가 눈치를 많이보고 경계를 한다. 심상치 않아 대숲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레이가 노려보고 있다. '이런 이 눔의 쉐이~ 내 새끼 통조림도 제대로 못 먹게 해~' 싶은 마음에 냅다 작은 돌멩이를 던져 내쫓았다. 에잇, 나는 아침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보일러실에 그레이를 위한 밥과 물을 챙겨준다.


지금까지 나의 뒷마당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터줏대감 격인 우리 집 냥이들은 모두 순하고 착해, 밥을 먹으러 오는 다른 냥이들을 경계하지 않았다. 모두들 사이좋게 밥을 나누어 먹었고, 밥을 먹다가도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드물게 수컷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조성되곤 했었지만, 이번처럼 아예 대놓고 집을 강탈하는 난폭한 냥이가 출현한 경우는 처음이다. 


자투리 방부목으로 만든 미니 밥상과 안 입는 겨울 외투, 우산, 비닐, 벽돌을 이용해 허접하나 급한 대로 정성껏 만들어본 냥이 집

그레이란 녀석, 동글동글 찐빵처럼 생겨서 착한 줄 알았는데 이번 참에 다시 봤다. 역시 자이언트 고양이답다. 배고픈 모든 냥이들에게 우리 집 뒷마당이 평화로운 안식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 그레이를 잡아 중성화를 시키면 좀 덜할까 고민도 하고 있는데,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 아이를 잡는 일은 또 쉽겠는가 말이다. 그냥 보일러실은 그레이에게 내주기로 했다. 옜다. 이 넘아. 너 다 가져라.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올해 겨울이 오기 전에 대대적으로 차근차근 냥이 천국을 손 볼 계획을 세웠다. 집도 새롭게 만들어 주고, 스크래처도 만들고, 강탄 예삐 트리오 만을 위한 전용 밥그릇도 만들어 볼까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거처를 냥이 천국으로 옮기니, 뒷마당에 있을 때보다 오며 가며 얼굴 볼일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일 미터 이상은 잘 허용하지 않는 아이들이라,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언제나처럼 강이가 제일 먼저 저를 반겨주네요. 기지개를 켜고 있는 중이랍니다.

강이탄이와 예쁜이와의 우정은 지켜 볼수록 참 예쁘다. 태희네 남매가 어릴 적에는 예쁜이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모양새였는데(한겨울에 아직 어린 태희네 육남매와 예쁜이까지 7마리가 한집에서 잘 적에 예쁜이가 늘 제일 추운 바깥쪽에서 자곤 했다), 지금은 몸이 많이 약해진 예쁜이를 강이탄이 남매가 지켜주는 모양새다. 아침에 보면 예쁜이는 제일 따뜻한 안쪽에서 자고 있고, 강이와 탄이는 늘 바깥쪽에 있다. 참 흐뭇한 풍경이다. 얘네들은 낮에도 서로 몸을 꼭 기대고 낮잠을 자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넋을 놓고 바라보곤 한다. 오랜 시간 동안 '강탄 예삐 트리오'가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누군가가 떠나면 남겨진 냥이들을 보는 마음이 참으로 쓸쓸할 것이므로. 


작년 겨울, 자그마치(?) 7마리가 한 집에서 자던 시절 찍은 사진. 강이와 예쁜이 그리고 신비의 모습이다.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하느님~ 강탄 예삐 트리오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게 해 주세요. 제발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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