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는 이년 전 이맘때 길냥이 태희가 우리 집 뒤뜰 대숲에 낳은 육 남매 중, 맏이다.
육 남매 중 우리 집에 남은 건 강이, 탄이, 신비 세 마리뿐인데, 이전에도 소개한 바 있듯 신비는 이 구역의 '아웃사이더'다. 탄이 강이는 물론 다른 냥이들과 어울리는 법이 없고, 손에 통조림을 들었을 때라도 나를 은근슬쩍 따르는 탄이 강이와는 다르게 결코 2미터 이하의 거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외출이 잦은 다른 냥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늘 뒤뜰에만 머물렀고, 한낮에도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나는 냥이 천국(뒤뜰과 앞뜰의 연결 부분)에서 오랜 시간 작업 중이었다. 당연히 뒤뜰에 계속 머무르는 신비를 오랜 시간 지켜볼 수 있었다. 그. 런. 데, 신비가 한 번씩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한다. 왜 그러나 싶어 유심히 지켜보는데 어디가 불편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유난히 삐쩍 마르고, 행색이 꼬죄죄해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늘 신경이 쓰이던 중이었다. 손을 타지 않는데, 자주 보는 길냥이가 아플 때가 가장 맘이 힘들다. 손을 타면 병원에 데려가면 되고,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가 아프다면 보이지 않는 동안에는 잊을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신비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 늘 마주치는 아이다. 나의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오후쯤 됐을까. 안쓰러운 마음에 통조림 캔을 하나 따줬는데, 통조림이 입에 닿자 온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구내염'에 걸렸구나. 오랜 시간 동안 앓고 있었는데, 가까이서 지켜보지 못하니 눈치를 못 챘구나. 제대로 먹지 못해 그렇게 바짝 말랐던 것이구나. 그걸 내가 바보같이 모르고 있었다니.
신비는 경계가 심한 편이어서, 통조림을 줄 때도 편하게 먹으라고 얼른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내가 주는 통조림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미어졌고, 동시에 근심이 몰려왔다. 신비는 경계가 심해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 위해 덫을 놓았을 때도 맨 마지막에 극적으로 잡을 수 있었던 아이다. 우리 하늘이가 가출해서 놓은 덫에 동네방네 고양이들이 다 걸렸을 때도 신비만은 영악하게 덫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신비를 잡을 수나 있을까.
밤새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솔직히 그냥 모르는 척하고 싶기도 했다. 차라리 손도 못 써보고 금방 죽는 병에 걸렸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했다. 구내염은 쉽게 죽지도 않으면서 오랜 시간 고통만 이어진다.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신비를 보면서 계속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불리할 때만 신을 찾는 평소 습관대로 하느님께 기도했다. '제발 신비를 잡을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시도조차 안 해본다면 두고두고 마음이 불편하고 후회가 될 것 같았다. 날이 밝는 대로 어떻게든 해 보기로 했다. 드디어 아침이 되었다.
늘 그렇듯 신비가 집에 콕 박혀있다. 원래는 가까이 다가가면, 집 밖으로 냉큼 도망가는데, 아파서 그런 건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도 없다. 예감이 좋다. 갑자기 드는 생각, 케이지로 입구를 막아보자. 케이지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케이지를 가져와 입구를 막아본다.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자, 이제 시작이다. 30여분의 길고 긴 사투 끝에, 정말 별의별 지랄(?)을 다한 후에 집 속에 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신비를 간신히, 아주 간신히 케이지로 옮길 수 있었다. 누구 한 사람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하는 생각이 너무 간절했고, 순간순간 하나님을 찾았고, 계속해서 신비에게 이야기했다. '잡혀야 해. 그래야 네가 살 수 있어. 제발... 신비야.....'
역시 하느님은 호인인지라 이기적인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어쨌든 좋은 일을 하고자 하면 운이 좋은 법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케이지에 있는 신비를 자세히 보니 꽤 많이 아픈 모양새다. 그동안 쭉 말랐던 걸 보면, 구내염이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닌 듯했다. 어쩌면 다른 냥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아웃사이더'처럼 보였던 것도, 성격이 까칠해서가 아니라 너무 고통스러워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사람도 아프면 만사 귀찮은 것처럼, 신비도 그래서 그렇게 계속 혼자였던 것이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신비는 전체 발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송곳니는 남겼고, 밥 먹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일주일간 입원을 했고(입원까지 하지 않아도 됐지만, 케어가 불가능해 불가피하게 입원을 했다. 의사쌤이 입원비를 별도로 받지 않으셨다.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집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놀라 영영 뒤뜰에서 도망가지 않을까 우려가 깊었지만(실제로 풀어준 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좋아하던 집에서 자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다음날 아침에 어디선가 나타나 통조림 한 캔을 다 먹었다. 먹고 싶어 하던 통조림도 못 먹을 정도로 고통에 몸부림치던 신비가, 그러면서도 배가 고파 통조림 옆을 떠나지 못하던 신비가, 통조림 한 캔을 다 먹었을 때의 환희란. 병원에 다녀온 후에는 확실히 때깔(?)도 좋아졌다. 이젠 고통 없이 마음 편히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발치 수술은 일반수술보다 더 비용이 비쌌다. 나도 사람인지라 솔직히 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냥이와 달라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길냥이에게 내가 이렇게 까지 돈을 써야 하나. 내가 금수저도 아니고, 고액 연봉자도 아닌데. 얼마 못 살고 죽으면 돈 아까워 어쩌지. 하는 속물적인 생각들. 하지만 신비를 그냥 길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이년 전 꼬물이 시절부터 지켜봤고, 계속 밥을 주었는데. 비록 말 못 하는 동물일지라도, 함께 눈 맞춘 세월이 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신비가 앞으로 단 일주일밖에 못 산다고 해도, 그 일주일의 시간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나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건이(?)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았을 텐데, 때마침 신비가 에피소드를 만들어 주었다.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고, 뒷마당의 다른 길냥이들도 무탈하다. 신비와 남은 아이들을 오래오래 지켜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아울러
단지 약하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고통을 겪는 동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 아닌 모든 생명체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