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이는 '예쁘지 않아서' 예쁜이가 되었다. 일종의 반어법 작명이다.
역설적이게도 '예쁜이'라고 이름 붙이고 보니, 예쁜이가 정말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종종 애정을 담아 '예삐'라고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어느 날 홀연히 뒷마당에 나타나 대숲에 숨어 우는 걸 한두 번 보았다.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이년 전, 옆집 창고에 세 마리의 새끼를 낳은 후부터다. 낯을 엄청 가리고 나를 경계했던 예쁜이는, 아이를 낳은 후에는 살짝 경계가 느슨해졌다.
길냥이들의 천국 우리 집 뒷마당을 두고 옆집에 새끼를 낳은 건, 그 당시 뒷마당을 태희와 새끼냥 6마리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년 전 여름 한때, 예쁜이네 식구와 태희네 식구는 뒷마당을 사이좋게 나누어 평화롭게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여쁜 꼬물이 새끼냥들로 꽉 찬 훈훈한 한여름 풍경이었다.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해 가을 예쁜이 새끼 자두, 살구, 앵두가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후 혼자 남은 예쁜이는 어미 태희로부터 버림받은(독립한) 태희 새끼들과 의좋게 지내기 시작했다. 모두 함께였던 여름 풍경만큼이나 훈훈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예쁜이가 좀 기운이 없어 보인다. 사실 손도 안 탈뿐더러, 낯도 엄청 가리는 냥이가 어딘가 아픈지 알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냥 예감이 그랬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것 같고, 잠도 너무 많이 자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마른 것도 같고. 무엇보다 가끔 통조림을 줘도 할짝거리기만 하고 먹지 않을 때가 있었다.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만 하며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내염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너무나도 위급해 보였던 신비의 구내염 수술을 마친 후, 예쁜이를 다시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신비 수술을 거치며 구내염에 대해 나름 공부하고 보니, 예삐도 구내염이 틀림없어 보인다. 신비보다 정도가 좀 덜할 뿐이지, 구내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됐다. 구내염은 어차피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발치를 해도 100% 낫는 것도 아니다. 손을 안타는 고양이의 구내염 치료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렇다고 아픈 아이를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신비처럼 상태가 나빠지면, 그때 발치 수술을 해주기로. 신비와 예삐는 지금 그래서 특별 케어 중이다. 페니실린이 나오기 전에 항생제 역할을 했다는 '콜로이드 실버'도 부지런히 먹이고, 영양제도 꾸준히 섞여 먹인다. 어떻게 하면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일까 해, 사료에 츄르를 섞어 먹이기도 하고, 통조림도 열심히 준다. 다행히도 신비는 가끔 먹을 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밥을 곧잘 먹는다. 예삐는 어떤 날은 잘 먹고, 어떤 날은 영양제를 섞은 밥을 잘 먹지 않아 나를 많이 속상하게 한다. 그래도 처음 먹어봤을 츄르는 제법 좋아해 츄르에 영양제를 섞으면 잘 먹는다. 우리 하늘이는 일주일에 한 개 얻어먹기도 힘든 츄르를 예삐에게는 아끼지 않고 물 쓰듯이 주고 있는 중이다.
신비한 것은, 예삐의 특별식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예삐가 보일러 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이다. 예삐가 좋아하는 자리, 일명 '냥이 천국'은 배식 창고인 보일러실에서 거리가 제법 된다. 그런데 보일러실 앞으로 자리를 옮기니, 매번 배식하기도 편하고, 또 배식한 후에 잘 먹는지 훔쳐보기도 좋다. 예삐가 건강해지려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 자리를 저리 옮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것은 좋은 징조라고. 온 우주가 예삐가 건강해지기를 기원하고 있는 거라고.
또 하나 신비한 것은, 예삐와 항상 어울리는 강이와 탄이가 한 번쯤은 예삐의 식사를 탐할 법도 한데, 결코 뺏어먹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강이와 탄이는 가끔 서로의 밥을 뺏어먹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역시 신기한 일이다. 아침에는 똑같이 통조림을 준다 해도, 저녁에는 예삐만 츄르를 섞은 사료를 특별식으로 주는데, 바로 옆에 있어도 한 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예삐가 남긴 음식도 손대지 않는다). 예삐가 아픈 걸 아는 걸까. 그게 강이탄이 식의 배려인 걸까. 강이탄이의 마음 씀씀이가 정말로 따뜻하다. 이런 강이 탄이 예삐 트리오의 모습이 언제 봐도 참 예쁘다.
구내염에 걸려 그루밍을 못하는 예삐는 앞발이 까맣고, 온몸이 지저분하다. 바싹 마른 것도 너무나 안쓰럽다. 나의 특별 케어가 좀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밥을 먹게 되면, 좀 더 살이 찌고 힘이 붙고, 그렇게 면역력이 강해지면, 구내염이 다소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해본다.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뒤뜰 냥이들 밥을 세팅하는 데 시간이 배가 들어간다. 가뜩이나 분주한 아침에 아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때론 안타깝고 속상하고, 또 때론 지치지만, 강이, 탄이, 신비, 예삐 뒤뜰 냥이 네 마리만큼은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해 본다.
동네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고, 길냥이들과 특별한 인연으로 엮이면서 냥이들을 위한 지출이 점점 늘어만 간다. 솔직히 부담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것보다, 훨씬 보람이 크다. 노후 걱정이 될 때마다 '돈을 좀 아껴 써야지'하고 결심한다. 그러면서도 결코 타인을 위해 쓰는 돈을 아끼고 싶진 않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는 돈, 그러니까 뒤뜰 냥이들과 동네 길냥이 들을 위해 쓰는 돈은 아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타자를 위해 쓰는 '선량한 돈'은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노후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구내염에 걸린 예삐와 신비가 하늘이 정해준 삶을 다하는 날까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덜 아프게 지냈으면 좋겠다. 저 아이들이 삶이 고통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기를. 사는 날까지 행복하기를.
아침저녁으로 주는 츄르가 삶의 큰 낙이 될 수 있기를. 예삐와 신비, 파이팅!!